[군산을 걷다 #163] ‘초‧중‧고교, 상아탑’ 품은 인물의 보고 ‘성산면’

정계‧ 경찰… 고 강근호 전 시장, 고 황호항 전 경무관 등 언론‧ 학계… 채정룡 전군산대총장, 황이택 전 전북일보 편집국장 재계… 고 고판남 전세풍그룹회장, 조시영 대창그룹 명예회장 등

2026-05-04     정영욱 기자

성산면 사람들은 오성산과 그 주변의 평양지대가 있어 그런지 교육열이 강했을 뿐 아니라 많은 인물들을 키워냈다.

옛 임피현 지역에는 ‘심· 황· 채’씨의 집성촌들이 다수 존재했었단다.

이들 성씨 이외에 군산의 대표 성씨인 고씨와 강씨에 비해 다소 적었지만 다른 성씨도 군산은 물론 전주, 수도권 등으로 기반을 넓혀갔다. 이중에는 도내를 넘어 전국적인 명사로 우뚝 선 이들이 적지 않다.

옛 임피현에 소속된 성산면 출신 유명인사들이 그렇다.

고 고판남 세풍그룹 회장, 고 강근호 국회의원, 고 채의석 전 익산시장(과거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 고 황호항 전 경무관 등이 그들이다. 또한, 조시영 대창 명예회장, 채정룡 전 군산대 총장(채의석 전시장의 아들) 등도 널리 알려진 인사들이다.

# 성산면의 대명리

나포면과 경계지역인 성산면 일대에는 우주 황씨의 집성촌들이 적지 않다. 성산면 동북쪽 끝 마을인 대명리는 17세기 초반에 형성된 전형적인 농촌 마을 중 하나다.

이 마을의 형성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조선조 인조· 숙종조의 명신 황유후 선생이 이곳으로 옮겨와 살면서 시작됐다. 물론 그 이전부터 사람이 거주한 기록은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이 마을의 유래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기 전에는 상대적으로 오지마을이었기 때문에 선비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었다는 기록이 곳곳에서 나올 뿐이다.

이곳은 채씨 도시조의 제당이 있고 평강 채씨의 총본부가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려말 군기소감을 거친 채양생 선생이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의 마음으로 이곳에 이주, 은둔 생활을 했다는 기록이 평강 채씨의 족보에 나올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대명마을은 1930년대 대명산 기슭의 옥실과 살구쟁이· 도롱골· 향림· 배암골· 작은애 고개 등의 작은 재와 구릉지대에 흩어진 민가들이 통합되면서 형성됐다. 과거 이곳은 산간마을의 특성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숫골돗자리를 상납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단다.해방 이후 대밭이 있어 죽세공이 발달했을 뿐 아니라 옥실대나무가 전국적으로 유명해 1955년 해방 10주년 기념 박람회에서 특등으로 뽑히기도 했다.

대명리 일대는 우주 황씨의 집성촌이지만 조선시대 옛 임피현의 ‘심’ ‘황’ ‘채’씨의 집성촌의 대표 마을 중 한 곳. 이농현상으로 지금은 작은 마을이지만 70년대까지는 1백여호를 자랑하는 대촌으로 일제강점기 때 간이학교가 설립됐을 정도였다.

임피에서 군산으로 향하는 역마의 길목에 있는 이곳은 역마가 오갈 수 있도록 도로를 개설하려고 했으나 완고한 마을의 양반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창오와 성산으로 이전, 한때 교통의 오지가 되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우주 황씨들이 임피현의 대성씨로 발돋움한 것은 조선시대의 근간산업인 논농사를 지을 공간, 즉 옥토 때문이다. 마을이 번성하면서 이곳의 선주민들은 관개시설을 갖추는 한편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저수지를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식농사에 힘써 많은 인물을 길러낸 고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저수지가 옥실방죽. 이 마을 주민들은 긴 세월 동안 조금씩 방죽을 개축하고 늘려 인근 농토를 옥답으로 만들었으나 주변의 농사를 짓는데 불편을 느낀 주민들이 해방 후 대규모 확장공사에 나서 오늘날은 수만평이 훨씬 넘을 정도로 확대된 큰 저수지로 변모하게 된 것.

# 성산면 출신 유명인사 …대명리 출신들 눈길

이곳 출신으로 전국 또는 지역사회를 빛낸 인사들이 상당수 서울과 전주 등지에서 고향의 명예를 위해 맹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고향일이라면 앞다퉈 일할 정도로 애향심이 남다르고 고향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찰에서 청렴도와 지역인물들을 널리 후원해왔던 고 황호항 경무관(전 해양청 경무부장)과 황이택 전 전북일보 편집국장, 황민영 전농어민신문사장 등은 이 마을 출신.

과거 공직자로는 시 노인회장 등을 연임한 황긍택 전 군산시 국장과 황호종 전 군산시 국장 등도 있다. 이밖에 황 전 편집국장의 장형인 황우택 전 건강보험관리공단 군산지사장 등도 있다.

오늘날은 퇴직했지만 교육계에서 활동했던 교육계 인사들이 상당했다. 대표적인 이들이 황순예 전 전주대교수, 황호섭 전 전주초등학교장, 황대택 전 고창초등교장 등이 있었다. 의료계 인사로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에 합격한 황수택씨가 미국 시애틀에서 병원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산에서 개업한 황경택 태창한의원 원장과 서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황병철씨 등도 있다. 법조계로는 사법고시를 합격한 황성택 변호사가 있다.
# 전국적인 재계인사

전국적인 재계 거물은 고인이 된 고판남 전 세풍그룹 명예회장과 조시영 대창명예회장이 이곳 출신이다.

*고판남 전 세풍그룹 명예회장

고려제지 군산공장을 인수한 고판남(1912~ 98) 전 세풍그룹 명예회장은 한국합판 창업주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당시 옥구군 성산면에서 태어난 고 전 세풍 명예회장은 군산제일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30년 2월 2년제 군산상업보습학교를 졸업한 뒤 그해 5월 일본인이 경영하는 무역업체인 화강상사에 입사해 11년간 경리직에 근무했다.

상업보습학교에서 상업에 관한 기초이론을 배운 그는 무역회사 근무를 통해 상업의 진리를 터득하면서 사업가로서의 수업을 쌓았다. 사업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은 그는 1940년 9월부터 군산에서 삼남정미소를 운영하면서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정미업에서 밑천을 마련한 뒤 1945년 2월 전북수산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수산업에 진출했다.

또 청구목림공업주식회사 사장을 역임하며 나무와 인연을 처음 맺었다. 사업이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1962년 11월 한국합판주식회사를 창립하고 합판업계에 진출했다. 한국합판은 1963년부터 수출을 시작, 해마다 높은 실적을 올리며 국가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에 정부는 1968년 그에게 철탑산업훈장을, 1969년에는 대통령 표창 등을 수여했다.

이후에도 한국합판은 수출에 주력, 1970년에는 합판수출업계에서 국내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업가로 성공한 그는 1967년 군산상공회의소 회장, 1971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1972년에는 고려제지를 인수할 당시 이미 합판업계 뿐 아니라 경제계에서 막강한 존재로 주목받고 있었다. 군산교육발전에도 지대한 기여를 했다,

사회환원사업을 통해 군산제일고와 제일중학교를 인수했을 뿐 아니라 군산간호대를 굴지의 사학으로 키운 그는 그곳에서 장학사업에 심혈을 기울여 수많은 인물들을 길러내 오늘날까지 귀감이 되고 있다.

1985년 합판 산업이 사양화되자 한국합판과 세대제지를 합병, 세풍을 설립한다. 한 때 신문 용지 사업에서 2위를 기록하는 등 사세를 확장시켜 세풍 그룹으로 발전시켰다.

그 후에도 영진주철(후에 우민 주철로 개칭)과 내장산 관광호텔도 인수하였으나 흑자를 내지 못해 그룹 채산성 악화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1990년대 이후 제지 부문을 제외하고는 다른 업종은 고전했지만 1996년 그룹 활성화의 차원에서 전라북도 지역 민방인 전주방송을 인수하기도 했으며 F1 그랑프리 유치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IMF체제 동안 워크아웃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만다. 전주방송 등은 계열 분리되고 나머지 회사들은 모두 파산 및 워크아웃 상태로 그룹은 공중 분해됐지만 제일중고와 군산간호대 등을 전국적인 명문학교로 만든 공로만은 누구도 따를 수 없다 하겠다.
다욱 아쉬운 것은 1994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후계 체제로 전환했지만 기업 회생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한편 세풍그룹의 위세는 대단했다. 전성기의 세풍은 군산에 기반을 둔 기업으로 53년 성냥제조업체로 출발, 합판사업에 주력하다가 73년 제지업에 뛰어들어 사세를 확장해 한국견직공업, 내장산관광호텔, 우민주철, 전주방송, 세풍월드 등의 계열사를 뒀다.

*조시영 대창그룹 명예회장

성산면이 고향인 조시영(1944~ )은 대창의 창업주이자 명예회장이다.
대창그룹 회장이며, 계열사인 서원, 태우, 에쎈테크의 대표이사도 맡기도 했다.
1964년 서울로 상경해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공업소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74년 대창의 전신인 대창공업사를 창업해 매출 1조 원대 중견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경영인이다.
환경친화적 신소재 연구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대창은 경기도 시흥시에 소재한 비철금속 중 황동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로, 황동봉 분야 국내 1위, 아시아 1위, 세계 3위의 글로벌 중견기업이다.

1974년 대창공업사로 사업을 시작한 그는 이 같은 위기극복 능력으로 2004년 1억 달러, 2008년 3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며 기업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현재는 ㈜대창을 포함한 4개 회사와 미국·중국에 3개 해외지사를 두고 있다.

대창그룹의 계열사는 대창과 서원을 비롯해 모두 10개사(국내 6, 해외 4)다. 이 중 상장회사는 대창과 서원, 에쎈테크 등 3개사다.

대창의 연결대상 종속회사는 6개(국내 3, 해외 3개사)다. 국내 종속회사는 태우, 에쎈테크, 아이엔스틸인더스트리 등이다.
핵심 제품은 반도체, 전기, 전자부품, 자동차, 선박, 산업용 기계류 등에 첨단 기초소재로 활용되는 황동봉이다. 황동봉은 구리와 아연의 합금인 황동을 기다란 막대 형태로 제조한 것을 말한다. 소재의 가공성이 좋고 열·전기 전도율이 높아 다양하게 사용된다.
대창은 약 47%(2023년 9월 말 기준)의 시장점유율로 황동봉 국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5위에 올라 있다.
이밖에 재경 군산향우회장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도 펼쳤던 그는 10여 년 전부터 매년 고향인 군산에 교육지원사업을 위한 장학금을 기탁하는 등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2016년에는 재경전북도민회의 자랑스런 전북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