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동 연립 3부: 민정이의 세계 #10] 도망치지 않는 법
영동 가구거리의 ‘자이언트 롤라장’. 눅눅한 공기 위로 팝송이 떠다녔다. 롤러스케이트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음은 학교나 연립주택의 침묵과는 결이 달랐다. 여기는 철저히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조금 더 정직한 정글이었다.
민정이는 벽 쪽에 붙어 서 있었다. 같이 다니는 아이들이 주변에 흩어져 스케이트를 타는 걸 지켜보았다. 코너 쪽이 소란스러웠다. “야, 너 오늘 돈 안 가져왔냐?” 롤라장을 한 번씩 공포에 떨게 하는 ‘칠공주’ 무리였다. 면도칼로 아이들을 위협한다는 여깡이라 불리는 아이가 침을 뱉으며 누군가를 툭툭 쳤다. 함께 온 친구인 걸 발견한 민정이는 스케이트를 굴려 그들 앞까지 다가갔다.
여깡이 민정이는 발견하고는 비릿하게 웃었다. “너 뭐야? 꺼져!” 민정이는 그 아이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시끄러워.” 민정이의 목소리에 감정 따위는 없었다. 여깡이 당황해 미간을 찌푸렸다. “뭐? 야, 너 지금 누구한테….”
여깡이 민정이의 어깨를 팍 밀쳤다. 하지만 민정이는 흔들리지 않고 계속 노려보았다 그 순간, 롤라장의 음악 소리가 멈춘 듯 묘한 정적이 흘렀다. 여깡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무리 중 하나가 소곤댔다. “쟤네 삼촌…. 백악관파….” 말이 띄엄띄엄 들렸다. 아이들은 민정이를 바라봤다.
여자애가 한발 물러섰다. 사실 민정이는 될 대로 되라였다. 소문대로 그 아이가 면도칼로 얼굴을 긋는다고 해도 지금보다는 낫겟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차라리 죽으면 다행이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자신이나 친구가 이유 없이 모욕당하는 것만은 참을 수 없었다.
민정이의 살기 어린 눈을 마주한 여깡은 찜찜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재수 없는 년….” 민정이에게 그 욕설은 들리지 않았다. 집에서의 수모보다 더한 건 없으니까. 다만, 친구가 당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돌아서서 친구들과 함께 롤라장을 빠져나왔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민정이는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쇼윈도 앞에 섰다. 조금 전, 그 아이와 마주쳤던 눈. 독기 가득한 눈동자는 공허했다. 민정이는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