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동 연립 3부: 민정이의 세계 #5] 아무도 묻지 않는 밤
사촌 동생이 태어났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장지동 연립의 정적을 깨뜨렸다. 집안은 경사로 들떴다. 친척과 이웃들의 방문이 문턱을 넘나들었고, 막내 삼촌은 이제 민정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관심이 아기에게 쏟아질수록 민정이는 점점 더 고립되었다.
거실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문틈을 타고 흘러온 소리는 안방까지 번졌다. 우유병, 기저귀, 장난감. 작고 부드러운 것들이 집안을 채웠다. 분유냄새는 따뜻하게 감돌았지만, 그 온기는 민정이에게 닿지 않았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졌다.
이제 민정이가 집에 늦게 들어와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걱정하는 목소리도, 화를 내는 기척도 사라졌다. 오히려 일찍 들어가는 날이면 등 뒤가 잔화살을 맞은 듯 따끔거렸다. 공기 중에 무언가 날 선 것들이 부유하며 민정이를 겨누고 있었다. 숙모의 무표정한 침묵이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민정이는 그저 없었으면 하는 존재가 되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안방에 홀로 누워 있던 민정이는 쓰레기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났다. 탁, 탁탁. 엄마 화장대에 있던 라이터를 켰다. 작은 불씨가 쓰레기 더미 하나를 물었다. 붉은빛이 쓰레기를 집어삼키며 몸집을 키웠다. 타오르는 불길은 플라스틱 쓰레기통을 촛농처럼 녹이며 기어올랐다. 방 안을 가득 채운 불빛 앞에서 민정은 오랜만에 웃었다.
불길은 커튼 자락을 향했다. 방 안이 찰나의 환희처럼 밝아졌다. 하지만 엄마가 아끼던 방화 커튼이 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제야 매캐한 냄새와 열기가 느껴졌다. 정신없이 불을 끄고 나니 온몸이 후들거리고, 데인 손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그 소란 속에서 누구도 안방 문을 열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방 안에는 눌어붙은 쓰레기통과 그을린 커튼, 흩뿌려진 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괜찮으냐고. 그 무관심은 어젯밤의 불길보다 잔인했다. 화상의 통증보다 더 따갑게 파고들었다.
이 집에서 민정을 반기는 건 마당의 흰둥이뿐이었다. 하지만 그 유일한 환대조차 민정이에겐 가시방석이었다. 개가 기척을 낼 때마다 숙모의 서늘한 얼굴을 마주칠까봐 숨이 막혔다. 저녁이 되면 거실에 세 식구의 웃음이 모였다. 민정이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멈칫했다. 그들 앞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가는 거리를 몇 걸음 되지 않았지만, 매번 숨이 조여오고 진땀이 났다.
민정이에게 더 이상 집은 없었다. 삼촌네 가족이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 잠들 때까지 민정이는 밖을 배회했다. 어두운 골목과 텅 빈 학교 운동장, 시내 밤거리를 유령처럼 떠돌았다. 무서워도 어둠 속에 섞여 있을 때가 밝은 거실을 통과할 때보다 마음이 놓였다. 모두가 잠든 뒤에야 돌아왔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 시간, 도둑처럼. 아무도 살지 않는 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