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160] ‘충절의 혼’ 간직한 성산면

오성인묘 전설‧ 오성산봉수대지 등 역사 담은 금강의 길목 ‘聖山’의 지명연원… ‘호구총수’의 북일면 성산리에 첫 등장 ‘오성산’ 해발 227m…금강 조망할 수 있는 ‘군산 最高의 산’

2026-03-17     정영욱 기자
오성산 정상에서 본 금강과 그 주변. / 사진= 군산시 제공

‘도도하게 서해로 흐르는 금강’의 길목, 백제의 망국의 한을 담은 전설과 설화들이 즐비한 곳, 전북을 빛낸 정치와 경제계 인사들의 고장…

전북과 충남의 젖줄인 금강을 가까이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성산면 소재 오성산. 해발 227m로 군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몰라도 과거 과거 국가비상상황을 알리거나 대비한 오성산봉수대터가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충절과 관련된 오성인의 전설을 간직한 지역이다.

성산면에는 교육시설로 성산초등학교, 창오초등학교, 중앙중과 중앙고, 그리고 군장대학교가 위치해 있다. 초·중·고와 함께 대학교가 있는 몇 안되는 면소재지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교육의 요람으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과거 세계철새축제 행사 개최 때문에 철새전망대를 건립했지만 그 기능이 상실되면서 수년 전부터 금강미래체험관이란 이름으로 비뀌어 관광 및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때 전국 최초이자 국내 최고의 매머드급 360도 회전식 조망센터로 금강 일대의 철새를 쉽고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조망시설 외에도 조류공원과 철새신체탐험관, 부화체험장 등이 설치되어 있어 가족 단위 생태교육장소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인근에는 금강하구둑과 금강시민공원 등이 있어 시민들의 휴식공원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근교에 농업이 발달했고 지역 특산품으로 울외장아찌를 생산하고 있다.

시에 인접한 지역으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인근의 성산농공단지에 입주한 기업들이 왕성하게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 성산면의 유래

성산면사무소. / 사진= 성산면사무소 제공

성산면은 동쪽은 나포면과 임피면, 남쪽은 대야면과 개정면, 서쪽은 군산 도심권, 북쪽은 나포면과 충남 서천군 화양‧ 마서면에 닿아 있는 지역이다.

오성산(五聖山) 이름을 따서 성산으로 부르게 되었고 오성산은 ‘오성안장의 전설’에서 연유됐단다.

본래 임피군(臨陂郡)의 지역으로서 임피읍 내 북쪽이 되므로 북일면(北一面)이라 칭했다. 거척(居尺), 내정(內鼎), 사옥(沙玉), 내흥(內興), 중흥(中興), 석포(石浦), 성동(聖洞), 요동(堯洞), 상흥(上興), 둔덕(屯德), 만동(晩洞), 구이(龜耳), 고봉(高峰), 식천(食川), 마동(麻洞), 도암(桃岩)의 16개 동리를 관할했다.

1914년 일제의 군면폐합에 따라 상북면(上北面)의 남전(南田), 동요(東堯), 여방(余方), 기린(麒隣), 옥곡(玉谷), 우곡(牛谷), 신기(新基), 창동(倉洞), 중오(中梧), 상작(上鵲), 하작(下鵲), 상동(上洞), 예점(芮店), 구억(九億)의 14개 동리와 남산면(南山面)의 덕봉리(德奉里) 일부를 병합하여 ‘성산면’이라 했다.

옥구군에 편입되어 내흥, 성덕, 둔덕, 고봉, 도암, 여방, 대명, 창오, 산곡의 9개리로 개편돼 관할했는데 1973년 7월 1일 내흥리를 군산시에 넘겨주었다가 1995년 1월 1일 군산시와 옥구군의 도농통합으로 오늘날의 군산시 성산면이 된 것이다.

# 오성산의 유래 이야기… 오성인의 전설 vs ‘오성안장’ 전설 한뿌리(?)

오성산 정상. / 사진= 군산시 제공

성산면 등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오성산이 ‘오성안장의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군산시 공식페이지의 ‘구불길’ 소개 글에서도 오성산이 ‘전설과 역사’를 품은 곳으로 언급되지만 ‘오성안장’ 전설의 구체적 서사는 제시되지 않다.

다만 오성안장은 오성인 묘의 전설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란 추론은 가능하다.

당나라 주요 침략루트였다는 점에서 당시 전세를 전하려는 다양한 전설들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군산과 서천 주변의 전설과 설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천방사 전설(千方寺 傳說)’이나 오성인 전설 등은 나당연합군의 소정방이 백제를 침공하던 과정 중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나당연합군의 백제 침공과 관련한 이야기와 지명은 군산지역부터 충청남도 서북부로 이어지는 지역에 걸쳐 전하고 있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여 사비성(泗沘城)을 점거하기까지의 과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천방사의 전설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안개·풍랑을 끌고 가는 신비한 현상과 제사·절 건축을 통해 길이 열리는 내용과 다른 하나는 천일제·천 칸의 방을 만들어 제사를 올려 난관을 넘는 내용이 전해진다.
그러면 오성인 묘의 전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금강을 낀 오성인 전설 1- 당의 소정방은 군대를 이끌고 금강을 거슬러 오르자 다시 안개가 끼어서 한 치 앞도 나갈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배를 연안에 정박해두고 산에 올라가 보니, 다섯 사람의 신선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소정방은 선인들에게 달려들어 너희들이 도술을 부려서 안개를 끼게 한 게 아니냐면서 칼을 뽑아 들고 목을 치기 전에 안개가 걷히게 하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윽박을 했지만 끝내는 묵묵부답으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때 괘씸하게 여긴 소정방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내려치자 다섯 성인은 장렬하게 죽고 말았다. 인근 성산 주민들은 시신을 거두어 묘를 써주고 그 넋을 위로해 주는 뜻에서 추모비를 세우고 춘추로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 그 이름을 일러서 오성묘라고 한다.

*금강 주변 전설 2- 서천면 마산면 벽오리의 안장바위 전설에는 백제가 멸망할 때 퇴각하던 한 백제장수와 그가 탄 말이 등장한다. 장수를 태우고 가던 말이 지금의 벽오리 마을 어귀에 이르러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울부짖자, 장수가 어쩔 수 없이 말의 목을 칠 수밖에 없었다. 말이 죽은 자리에서는 큰 바위가 솟아올랐는데, 사람들이 이 바위를 안장바위라고 불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