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중미에 던져지다 ⑤] 카리브해의 진주, 콜롬비아 카르타헤나 여행기

2026-01-27     Young(필명)

문득 그럴 때가 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인데, 괜히 지루하고 하루가 길게 느껴질 때. 그럴 때는 일상을 흔들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로 지금이다. 여행 갈 타이밍. 

항공권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면 도착지에는 늘 ‘어디로든’ 옵션을 선택한다. 보통 가깝고 가격이 낮은 나라들부터 상위에 뜬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도시 하나. 콜롬비아의 작은 항구 도시이자 ‘카리브해의 진주’라 불리는 곳, 카르타헤나였다. 

카르타헤나의 市깃발(Flag of Cartagena)

​​​​#이 친절한 낯선 도시

카르타헤나 공항을 나오자마자 나를 맞이한 건 숨 막히는 더위와, 먹통이 되어버린 유심이었다. 공항 택시를 이용해 바로 숙소로 갈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이 낯선 동네를 조금 걷고 싶었다. 번역기도, 구글 지도도 없었지만 대신 설레임과 호기심은 충분했다.

처음 마주한 카르타헤나의 거리는 꽃으로 가득했고, 높지 않은 건물들은 햇빛을 받아 더 선명해 보였다. 그렇게 걷다 보니 하천 하나가 나타났고, 다리 아래에서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해맑은 웃음소리를 뒤로한 채 다리를 건너 그쪽 동네로 향하던 중, 길거리 어딘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청년 여럿이 공터에 모여 불을 피우고, 커다란 솥단지 같은 것을 올려 요리같은 걸 하고 있는 듯했다. 또다시 발동한 호기심에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그 중 한 청년이 길을 건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스페인어로 무언가를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지만, 문제는 세 달이 지나도 그대로이던 내 스페인어 실력이었다. 답답했는지 그는 곧바로 번역기를 켜 대화를 시작했다. 왜 여기 있느냐고 물었고, 여행을 왔는데 그냥 궁금해서 걷고 있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조금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곳은 위험해서 혼자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왜 위험하냐고 묻자, 누군가 네 물건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겁이 없는 나지만, 낯선 현지인의 충고는 나를 움찔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숙소가 어디냐고 묻고는 빨리 안전한 동네로 가라며 택시를 불러주었고,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며 곁에 있으라고 했다. 택시를 기다리는 잠깐동안, 허락 없이 그들의 하루에 섞여 본다. 이미 오후 네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돼지고기를 튀겨 먹는 치차론(Chicharrón)을 점심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언어는 서툴렀지만, 그 자리에 있는 데에는 큰 설명이 필요 없었다. 간단한 스페인어와 서로에 대한 약간의 관심. 그 정도면 낯설지 않기엔 충분했다.

나는 어쩌면 위험할 뻔했던,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를 하나 얻은 채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카르타헤나에서의 첫 장면은 낯선 도시가 아니라, 낯선 사람들의 친절로 시작됐다.

공터에서 점심을 준비하던 콜롬비아 청년들
쨍한 색감의 건물들이 이어진 거리

​​​​​​#뜻밖의 동행

다음 날 아침, 룸메이트들의 대화 소리에 눈이 떠졌다. 7시쯤 되는 이른 시간이었는데, 반쯤 잠든 귀에 또렷하게 꽂힌 단어, China. 그 소리에 눈이 떠져 커튼을 걷자, 방 안에 있던 아시안 두 명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나와 꽤 비슷한 얼굴을 가진, 중국인쯤 되어 보이는 남자 둘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놀랐다기보다는 조금 웃긴 장면이었다. 여긴 동남아도 유럽도 아닌, 한국의 정확히 반대편에 가까운 도시였으니까. 

알고 보니 그들은 중국계 미국인과 홍콩계 영국인이었고, 그 둘도 이 방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다. 우리는 모두 아시안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국적도 억양도 살아온 환경도 제각각이었고, 공통 언어는 영어였다.  4인실 도미토리 방 안에 우연히 모인 우리 셋. 그것도 콜롬비아의 카리브해 연안, 중미 한복판에서. 방 안에 흐르던 묘한 동질감과 어색함이 상황을 더 흥미롭게 만들었다. 이 낯선 도시에서 우리가 같은 방에 들어오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는데, 그 우연이 꽤 잘 맞아떨어진 날이었다. 

그날의 시작은 특별할 게 없었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같이 나갈래?”라는 말이 오갔고, 우리는 그렇게 하루를 함께 보내게 됐다.

우리는 먼저 구시가지의 중심부, 시계탑이 있는 입구로 향했다. 이 시계탑은 단순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한때 도시의 안과 밖을 구분하던 경계였다. 탑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순식간에 분위기가 달라진다. 좁은 골목 사이로 이어진 낮은 스페인풍 건물들이, 강한 햇빛 아래 더욱 선명한 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계탑의 낮
시계탑의 밤 

카르타헤나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신대륙과 유럽을 잇는 핵심 항구 도시였다. 금과 은, 향신료와 같은 물자가 이곳을 통해 오갔고, 동시에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이 땅에 끌려왔다. 그 역사는 도시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벽을 채운 대담한 색감과 흑인들의 얼굴, 거리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음악의 리듬에는 아프리카 문화의 영향이 깊게 배어 있다. 이 도시가 오랜 시간 걸쳐 만들어온 삶의 모습이었다.

구시가지를 따라 더 걸어 나가자, 도시를 둘러싼 성곽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항구를 지키기 위해 쌓은 두꺼운 성벽 위에는 대포가 바다를 향해 놓여 있었다. 성곽 안쪽에는 우리가 방금 지나온 도시가 있고, 그 너머로는 카리브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성곽 위를 줄지어 걸으며 풍경을 나눴다. 사실 내 머릿속은 하루 종일 꽤 바쁜 상태였다. 둘 다 영어 네이티브라 말은 빠르게 오갔고, 특히 영국식 억양은 만만치 않았다. 솔직히 대화의 절반쯤은 놓쳤지만, 괜찮았다. 이해하려 애쓰는 머리와 달리 마음은 전혀 조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한 쪽에 가까웠다.

그날의 기억은 말보다 장면으로 남았다. 처음 만났지만 묘하게 편안했던 사람들, 성벽의 거친 질감, 햇빛을 머금은 바다의 색. 계획도,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그저 걷고, 앉고, 다시 걷는 하루였다. 그 날 하루에만 23,000보를 걸었다. 내가 가져간 신발은 쪼리 하나였는데 말이다. 전날에는 길 위에서 낯선 청년들의 친절을 만났고, 다음 날에는 호스텔 방 안에서 뜻밖의 동행을 얻었다. 카르타헤나는 내가 혼자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을 보내주는 도시였다.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
성곽위에서 마주친 카리브해와 낚시하는 사람
도시곳곳에 녹아 있는 아프로-콜롬비안(Afro-Colombian)문화
도심 곳곳에 녹아 있는 아프로-콜롬비안(Afro-Colombian)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