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152] ‘금강’ 배경으로 한 문인들의 작품 속 ‘문학’

일제강점기 채만식의 탁류… 출생 당시 고향 임피현의 작은 동네 최고 민족시인 신동엽의 ‘금강’… 동학- 4.19혁명 등 아픔 담아내 박범신의 ‘소금’ 등 금강과 얽힌 강경포구 사람들의 이야기 고은· 안도현 시인 등 작품 속에 남겨… 고 이광웅 선생 시비

2025-10-21     정영욱 기자
드론으로 촬영한 나포지역의 금강. / 사진= 독자제공

충청과 전북의 커다란 들판을 가로지르는 금강을 소재로 한 유명문학작품들이 다수가 탄생한 것은 우연한 결과물일까, 아니면 그곳의 역사적인 의미를 함축한 작품들을 썼기 때문이었을까.

금강문화권이든지, 금강네트워크라 부르든지 간에 작품 속의 모태는 금강이었다.

그 첫 작품이 일제강점기에 탄생한 채만식의 ‘탁류(1938)’는 금강의 물결을 역사에 빗대어 식민지 시대의 삶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약 30년 후에 나온 신동엽 시인의 ‘금강(1967)’은 부여를 배경으로 한 자연과 역사, 그리고 열망을 담은 걸작으로 오늘까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여기에다 소설가 박범신은 고향 강경의 쇠락을 얘기한 소설 ‘소금’이란 작품을 통해 전북과 충남의 젖줄 금강 변 도시의 영화와 옛 이야기들을 잘 풀어냈다.

강경으로 낙향한 박범신은 한 충청권 신문과 인터뷰에서 그의 고향을 이렇게 말했단다.

“금강문화권은 역사의 중심에 서는 날을 꿈꿔온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고 본다. 역사적 사이클을 보면 이른바 금강문화권이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할 수 있는 좋은 찬스가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시인 고은을 비롯한 소설가 조정래와 김훈, 안도현 시인 등도 금강과 관련된 내용들을 그들의 작품세계에 수려한 글로 수놓았다.

물론 조선시대의 선비들 역시 금강과 그 주변의 정자에서 그곳의 아름다움을 작품 속에서 노래했었다.
금강 유역은 마한과 백제의 역사 속의 공간이었을 뿐 선사시대의 문화 유입통로였다. 고려와 조선시대는 거대한 ‘금강 네트워크’로서 상업과 농업의 중심지로서 그 위용을 떨쳤다. 군산과 강경 등이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금강의 위용과 포구들을 보면 좀 더 재미난 역사적인 사실과 실체들로 가득하다.

서해바다와 금강 입구인 군산포 및 경포(오늘날 군산), 장항(기벌포), 웅포의 곰개나루, 조선 후기 3대시장인 강경포구, 백제의 고도 부여 및 공주 등으로 이어지는 금강네트워크의 주요공간이었다.

그 인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조선말 천주교 해상루트 중 하나였던 망성면 화산의 나바위성당(익산시: 1907년 완공)이다. 납작한 바위가 널려 있다고 해서 ‘나바위’로 불린 이곳은 한국 천주교의 성지로 불린다. 1845년 한국인 최초로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가 귀국한 후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이곳의 유명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옥과 고딕 양식이 조화를 이룬 건축물이어서 그렇다.
금강 네트워크의 조선시대 중심지는 강경이었고 일제강점기 이후엔 단연 군산이었다.

이곳은 예전에 육로와 수로가 이어지는 내륙항으로 유명했다. 배는 육지 생산물을 싣고 충청도와 전라도, 인천항까지 갔다고 한다. 그중에는 소금도 있었다.

‘강아지도 생조기를 먹는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생선도 풍족한 동네였다. 생선염장법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강경 젓갈의 시작이다.

강경은 1911년 호남선 개통 등 철도가 발달하면서 조선의 운명처럼 서서히 퇴락해갔다. 1930년대에 강경시장은 평양, 대구와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고려와 조선시대엔 전북 및 충청권 평야지대에서 수확한 쌀은 조운을 통해 개경과 서울로 흘러들어갔다. (아래 작가들과 관련한 내용들은 한국현대문학대사전과 새만금 愛 빠지다, 나무 위키, 오마이뉴스 등과 같은 언론매체들을 참조했다.)

ㆍ백릉 채만식(1902∼1950)

채만식 문학관

‘ 금강(錦江) …….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 가지고는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그리고 북쪽 줄기는…….

예서부터 올게 금강이다. 향은 서서남으로, 빗밋이 충청, 전라양도의 접경을 골타고 흐른다.’ - 채만식 탁류의 도입부 -

채만식(蔡萬植·1902∼1950)의 대표적인 장편소설 ‘탁류(濁流)’ 첫머리다.

조선일보에 연재(1937.10~1938.5)됐다가 1939년 단행본으로 출판된 ‘탁류’는 도도히 흐르는 금강의 물결을 역사에 빗대어 식민지 시대의 삶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금강하구의 항구도시’ 군산에서 태어난 채만식은 풍부한 어휘와 풍자, 반어, 역설, 새로운 구성 방식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사용해 우리 민족의 역사적 현실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백릉은 장·단편 소설만 해도 200여 편에 이르며 기타 동화나 수필 등 다양한 장르까지 포함하면 생전에 1,0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금강하굿둑 옆 2층 규모의 채만식문학관에서는 파노라마식으로 다룬 채만식의 치열한 삶의 여정을 살펴볼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ㆍ전주사범 출신 신동엽 시인(1930∼69)

1962년 ‘서둘고 싶지 않다’라는 글에서 “언젠가 부우연 호밀이 팰 무렵 나는 사범학교 교복 교모로 금강 줄기 거슬러 올라가는 조그만 발동선 갑판 위에서… 넓은 벌판과 먼 산들을 바라보며 ‘시’와 ‘사랑’과 ‘혁명’을 생각했다”고 적고 있다.

부여에서 태어난 신동엽 시인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그의 시는 해방 이후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며 경험한 고통과 희망, 그리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이해를 담고 있다.
신 시인의 문학적인 저력은 금강이 유장하게 흐르는 고향인 ‘백제의 고도(古都)’ 충남 부여로부터 잉태된 듯하다.

금강은 동학혁명을 소재로 한 ‘이야기 시(詩)’로서 신동엽의 시 세계를 대변하는 주는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 ‘금강’은 서화(序話)와 모두 26장으로 된 본시, 그리고 후화(後話)로 구성된 총 4,800여 행으로 짜여진 장편 서사시의 성격을 지닌다.

이 작품은 전봉준(全琫準)을 주인물로 하고, 동학농민운동을 중심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영웅서사시이자 민족 · 민중 서사시적인 범주에 속한다.

금강은 크게 세 토막으로 전개된다.

서사는 7장까지로, 각종 민란의 발생과 동학의 태동, 그리고 우리 역사에 대한 화자의 소감과 60년대 현실에 대한 비판 등이 얽혀 있다.

전주사범 입학 전까지 그는 부여초등학교를 다니며 고향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단다.
그는 부여의 자연과 사람을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금강변의 야산은 숲이 울창해 산토끼와 다람쥐가 뛰어놀고 원추리 등 꽃이 만발했다고 한다. 특히 금강 본류의 한 구간인 백마강변을 거닐며 사색하기를 좋아했다고 그의 지인들을 기억한다.

ㆍ원광대 출신 유명소설가 박범신 작가(1946~ )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박범신은 원광대 국문과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 단편소설을 주로 발표, 문제 작가로 주목을 받았으며,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독자들에게 미학적 감동을 전하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그는 인터뷰 등에서 “강경역과 금강 주변은 내 문학의 자궁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표현하면서 금강과 자신의 고향 등을 노래하거나 소설 등에서 배경으로 삼았단다.

1993년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가, 1996년 계간 문학동네에 중편 ‘흰 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재개했다.

1981년 장편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신인 부문)과 2001년 김동리 문학상을, 2003년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7년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한 뒤 강경으로 낙향했다.

그의 작품으로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겨울강 하늬바람>, <불꽃놀이>, <우리들 뜨거운 노래>, <불의 나라>, <물의 나라>, <잠들면 타인>, <수요일은 모차르트를 듣는다> 등이 있다.

ㆍ시조시인 이병기(익산)· 고은 시인· 소설가 조정래(아리랑)· 안도현 시인

고은 시인

금강의 도시라 할 수 있는 군산, 부여, 공주, 강경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적지 않다.

군산이 낳는 민족시인 고은은 ‘금강에 살어리랏다’와 ‘내 고향 군산은’ 등을 통해 금강과 군산의 옛 얘기들을 노래했다.

‘금강 천리 물과/ 아득히 조상 대대 계시옵고/ 아득히 자손 대대 계시오리라//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 온갖 갈래/ 한줄기/ 한줄기 모여들어// 저 보청천으로/ 저 미호천으로/ 또 저 초강 갑천으로/ 저 봉황천으로/ 또 저 무슨 천으로// 한줄기/ 한줄기 모여들어/ 우리 금강 이루어 나가는 도다// ~중략~ ’ - 고은 금강에 살어리랏다-

조정래 아리랑에는 강경포구 등이 생생하게 다뤄졌고 안도현 시인은 ‘금강하구에서’와 ‘군산 앞바다’란 시에서 금강과 군산, 서해바다 등을 시속에 녹여냈다.

금강을 노래하지 않았지만 빼놓을수 없는 이가 있다.

금강하구에 있는 고 이광웅(1940~ 1992) 시인.

그는 금강변에 있는 익산의 어느 마을에서 태어나 익남성고와 군산제일고 등에서 교직에 몸을 담았다. 그는 80년대 대표적인 용공조작을 했던 오송회 사건의 후유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작고한 후 그를 기리기 위해 금강하굿둑에 시비를 세웠다. 이 시비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 아닌 신동엽 시인이 노래한 대작시 ‘금강’속의 역사를 초연하게 지켜보는 듯 홀로 서 있다.

이외에도 금강을 그린 문학작품들은 숱하게 많다.

금강과 관련한 작품들은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역사적인 사건의 배경으로 삼거나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 등을 서정적으로 표현해 명작대열에 올랐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