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기자의 DJ 취재기] 김대중 마지막 고향방문 동행 취재기(2)

2025-06-28     조종안
지금은 볼 수 없는 옛 하의도 모습(2009)/사진=조종안

아침에 일어나 샤워부터 하고 휴식 취했다. 문득 ‘DJ 지지모임’ 회원들과 답사 다녀왔던 6년 전 하의도 풍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섬’ 임에도 평화로운 농촌을 떠올리게 했던 하의도, 지금은 ‘천사(1004)의 섬’ 중 하나로 소개되기도 한다. 함께 활동했던 디제이로드, 후광사랑 회원들 모습도 영화 필름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창밖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시계는 6시 10분을 지나고 있었다. 모닝콜 부탁하고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한 시간이나 빨리 깬 걸 보면 무척 긴장돼 있었던 모양이었다. 자리에서 뒤척이다가 시계를 보니 7시 25분. 모닝콜 울리기 직전이었다. 하의도행 객선 출발 시각은 오전 9시, 시간이 넉넉하기에 샤워도 하고 면도도 하는 등 여유 부리면서 움직였다.

챙기지 못한 소지품은 없는지 확인하고 8시쯤 여관에서 나왔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상쾌한 아침 공기 마시며 걷다가 사람들이 웅성대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부산에서 홍도와 흑산도로 관광 왔다는 아주머니 30여 명이 각자 구입한 김과 미역을 자랑하느라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평소 좋아하는 육회비빔밥 주문했다. 파김치와 미나리무침 등 밑반찬 퀄리티가 훌륭했다. 그릇을 비우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70대로 보이는 주인과 대화가 이뤄졌다. 아저씨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서운한 감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재임 5년 동안 목포에 해놓은 게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안기부 얘기도 꺼냈다.

"여그요, 바로 여그에 안기부가 있었어요. 여그가 목포 관문 아닙니까. 그란디 대통령 시절에 그 안기부 하나를 없애지 못 허고 임기를 마감했다 이겁니다. 올 봄에사 건물을 뜯어냈어요. 그라니 쓰겄어요. 그 양반 땜이 나도 군대에서 피 본 사람입니다. 그란디···."

아저씨는 원망은 해도 욕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식당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맛있게 먹었음에도 뒷맛은 씁쓸했다. 마음을 다잡으며 비안개 자욱한 바닷가에서 심호흡 몇 차례 반복했더니 기분이 전환되는 것 같았다. 활기 넘치는 부둣가 풍경과 시원한 공기는 언짢았던 기분을 전환하기에 충분했다.

하의도행 남해 페리호 선실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사진=조종안

하의도행 승선권 구입하기 위해 여객선터미널 대합실에 갔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아저씨가 하의도에 가려 하느냐고 묻더니 옆 건물, 이 층으로 올라가시라고 안내했다.

조금 있으니 대통령 내외가 탄 승용차가 도착했고 일행이 배에 오르자 곧 출발했다. 배가 6년 전 다녀갈 때와 달라 선원에게 물어보니 좌석이 350석이 넘는 쾌속선(남해 페리호)으로, 홍도와 흑산도를 왕복하는 데 처음으로 하의도에 들어가는 거라고 했다.

# 하의도에서

환영나온 주민들에게 손들어 답례하는 김대중 대통령/사진=조종안

페리호가 웅곡포구(하의도 선착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주민들은 함성을 지르며 환영했다. 14년 만에 고향땅을 밟은 대통령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답했다. 이희호 여사와 승용차에 오른 대통령은 환영인파를 어렵게 뚫고 선영을 참배한 뒤 하의 3도 농민운동기념관 개관식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대통령 일행이 도착하자 행사장 앞마당은 시골 잔칫집 분위기로 바뀌었다. 차에서 내린 대통령이 휠체어를 타고 단상 쪽으로 향하자 삼삼오오 모여 대화 나누던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한 아주머니는 "본 사람은 일로 나오랑께, 그래야 뒷사람도 조까 보제!"라며 고함을 질러대기도 했다.

하의도 대리에 산다는 장남기(65) 씨는 "우리 면민들은 대통령 재임 때 오시기를 원했꼬, 또 그때 왔어야 머든 지대로 바까지고(제대로 바꿔지고), 신경도 지대로 써지고 그랐을틴디, 대통령 그만두고 옹께 무슨 힘을 쓰겄소. 신안군에서 하의도가 가장 빈촌이고, 빈집도 젤 많다.”라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한 할머니는 “하의도가 생겨난 뒤로 사람이 제일 많이 모였다”며 기뻐하였고, 다른 할머니는 “우리 대통령이 늙기는 혔지만, 옛날처럼 미남”이라며 부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사회자가 참석 인사를 소개할 때마다 꽹과리와 박수 소리가 비안개 자욱한 하의도 앞바다로 퍼져 나갔다.

하의 3도 농민운동 개관식에서 축사하는 김대중 대통령/사진=조종안

농민운동기념관 개관식은 우중에 치러졌다. 하얀 비옷을 입은 노인이 대부분으로 빗방울이 굵어져도 자리를 뜨지 않고 대통령 축사를 경청했다. 일부는 숙연한 표정을 짓기도 했는데, 행사 마치고 떠나려는 대통령에게 다가가 "김대중! 김대중!"을 외치기도 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저는 하의면 후광리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까지 살았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덕봉서당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가 여기에 초등학교가 들어서니까 구경하러 가자해서 웅곡리에 있는 초등학교 2학년으로 월반해서 들어갔습니다. 그 뒤 목포로 와서 북초등학교, 또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두 분이 상의해가지고 나를 목포로 유학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저의 아버지가 2학년으로 월반시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아마 지금 신안군 군수나 돼가지고.. 그런 생각이 듭니다.(아래 줄임)”-2009년 4월 24일 마지막 고향방문 녹취록

비가 그치지 않아 기념행사는 대통령 축사로 마무리했다. 장소를 옮겨 기념식수 마치고 전시관 내부 돌아본 대통령은 방명록에 ‘사람을 하늘처럼 모시라’는 뜻이 담긴 '사인여천'(事人如天)이란 글귀를 남겼다. 대통령 일행이 자리를 뜬 후에도 주민들은 천막에 차려놓은 음식을 먹으면서 대통령 내외의 고향 방문을 화제로 담소를 나눴다.

꽃다발 걸어준 화동을 가슴에 품는 이희호 여사와 김대중 대통령/사진=조종안
하드모양 그리며 어린 후배들과 기념사진 찍는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사진=조종안

김 전 대통령은 해안도로를 돌아 유명한 ‘얼굴바위’ 배경으로 기념 촬영하고, 덕봉강당과 생가에 들렀다가 4학년 1학기까지 다녔던 하의초등학교 방문했다.

정문에는 대통령 친필 '새천년의 꿈' 글귀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손자·손녀뻘 되는 후배들과 기념 촬영했는데, 학생들은 두 팔을 머리꼭지로 모으고 하드 모양을 그리며 "할아버지 사랑해요!"를 연거푸 외쳤다.

대통령 내외는 강당에서 지역 주민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담백한 미역국에 지역 특산물인 김, 홍어 등이 적당히 삶아진 돼지고기와 잘 익은 김치가 차려졌다. 특히 천일염을 생산하는 지역답게 모든 음식이 개운하고 맛깔스러웠다.

하의초등학교 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님 내외분을 모시고 오찬을 하는 것을 하의초등학교의 거룩한 행사이고 평생의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민주화의 화신이고 세계 평화의 전도사인 대통령님과 이희호 여사님의 만수무강과 우리나라 평화와 번영을 위해 건배"하자며 잔을 높이 들었다.

# 29시간 만에 대통령 일행과 헤어지다

하의도 일정 마치고 오후 3시 웅곡포구를 출발한 쾌속선은 4시경 목포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대통령 일행은 호텔에 들렀다가 6시 KTX로 올라간다고 했다. 일정을 모두 마쳤는데, 더 따라갈 이유가 없을 것 같아 목포역으로 갔더니 4시 50분에 출발하는 KTX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승차권(익산-함평) 구입할 때도 예감이 좋았는데, 오늘도 익산행 기차표를 쉽게 구입했다.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차에 오르니, 옆 좌석 주인은 없고 하의도에 관한 책자 두 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눈감고 휴식 취하고 있는데 옆자리 주인이 나타났다. 하의도 행사에 다녀오느냐고 물으며 관련 책자가 두 권인데 특별히 쓸 곳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며 한 권을 주기에 고맙게 받았다.

대화가 진전되면서 그가 김대중 대통령 막냇동생 큰아들이고 필자보다 연하인 것도 알았다. 명함을 주고받으며 신상 문제를 얘기할 정도로 이내 가까워졌다. 일산에서 커피숍 운영한다는 그는 어렸을 때 경찰들에게 가택수색 당하고 놀라던 추억들을 스스럼없이 말해주었다.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것은 그의 사촌 형인 김홍일 전 의원이 병세가 악화되어 보좌관이 수저로 떠 넣어주는 죽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검찰 조사를 몇 차례 받기도 했지만, 고문 후유증이라는 생각에 착잡한 심정을 가누기 어려웠다.

대화는 익산 도착 때까지 1시간 30분가량 이어졌는데, 다음 기회에 또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짧았지만 반가운 만남이었고, 유익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기뻤다.

23일 오전 11시경 KTX 고속열차에서 만나 24일 오후 4시 조금 넘어 헤어졌으니, 김대중 대통령 일행과 함께한 시간은 얼추 30시간 가까이 됐다,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값진 추억들을 10%도 표현하지 못했지만, 나머지는 추억의 앨범에 영원히 소중하게 보관될 것이다.

덧붙임: 기록에 따르면 DJ의 마지막 국내 여행은 2009년 4월 고향(하의도) 방문이었다. 그는 <마지막 일기장>에 “14년 만의 고향방문. 선산에 가서 배례. 하의대리 덕봉서원 방문. 하의초등학교 방문, 내가 3년간 배우던 곳이다. 어린이들의 활달하고 기쁨에 찬 태도에 감동했다. 여기저기 도는 동안 부슬비가 와서 매우 걱정했으나 무사히 마쳤다. 하의도민의 환영의 열기가 너무도 대단하였다. 행복한 고향 방문이었다.”라고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