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이용일 전 KBO 총재대행의 야구인생 ①

2020-06-08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군산상고의 오랜 숙원사업이던 인조 잔디 구장이 2013년 봄 준공됐다.

군산상고 총동문회는 그해 4월 21일 학교 운동장에서 준공식 및 체육대회를 개최하였다.

‘군산 야구의 아버지’로 알려지는 이용일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권한대행도 참석해 기쁨을 함께 나눴다.

행사장에서 이용일 전 KBO 총재 대행을 만나 그의 야구 인생을 들어봤다. /조종안 記者

경동고 야구부 시절 동료들과(뒷줄 맨 오른쪽 이용일)/사진 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를 탄생시킨 이용일(1931~) 전 KBO 총재 대행(아래 존칭생략).

그는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중학교 1학년 마치고 가족을 따라 상경한다.

서울 경동중학교(6년제) 2학년 때 야구를 시작, 서울상대 야구부, 육군야구단 등에서 내야수로 활약한다.

그의 선수 생활은 고작 7년.

국가대표 출신 매부(유복룡: 경동중학교 야구부 창설자) 권유로 야구를 시작한 이용일은 1950년 서울대학교 상대에 진학, 야구부에 들어간다.

동료 선수는 장태영·박정표(이상 경남중)·이호헌(마산중)·김의석(광주서중)·김재복(인천중)·김홍일·문명채(대구상) 등 각지에서 올라온 야구 준재들이었다.

평소 성격이 활달했던 이용일은 훗날 한국 야구계를 이끌어갈 그들과 친분을 쌓는다.

이용일은 1950년 6월 23일 동대문야구장에서 개최된 전국 학도호국단 체육대회에 출전, 24일 성균관대를 누르고 25일 연세대와 준결승전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대회가 중지되고 특과장교로 입대한다.

그해 10월 육군 소위로 임관하고, 1952년 육군 정훈감 김천경 장군으로부터 육군 야구단에서 선수로 뛰라는 명령을 받아 야구와의 인연을 이어간다.

 

고향에 초중고 야구팀 6개 창단

1956년 소령으로 예편한 이용일은 고향으로 내려온다.

이듬해 3월에는 스물일곱 나이에 경성고무(주) 상무이사로 취임, 경영 일선에 뛰어든다.

그러나 공장과 사무실만 오가다 보니 체중이 100kg이 넘어가고 몸이 둔해졌다.

안 되겠다 싶어 동호인들을 모아 야구를 시작한다.

순전히 살을 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텅 빈 운동장을 보면서 마음이 달라진다.

이용일 KBO총재 대행./사진 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열서너 명이 주로 캐치볼, 배팅 연습을 했어. 전북 대표로 전국대회에 출전도 했으니까 대단했지"

"동호인 중에는 훗날 군산상고 초대 감독을 지낸 최동현도 있었고, 내가 육군 야구부 장태영 감독에게 추천해서 정식으로 야구를 시작, 프로야구 청보팀 코치를 지낸 김금현도 있었어"

"1960년 육군 야구부에 입단한 김금현은 1963년 국가대표로 발탁돼 김응용·박현식 등과 함께 제5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을 꺾고 우승하는 쾌거를 이뤘지"

"연습은 주로 군산중학교 운동장에서 했는데 이상한 걸 느꼈어"

"서울은 럭비·야구·축구팀들이 운동장을 서로 사용하려고 경쟁했거든"

"'장껨뽕'(가위바위보)을 해서 한 시간씩 운동장을 사용했단 말이야"

"그런데 군산은 방과 후가 되면 운동장에 파리 한 마리 없는 거야"

"혹시나 해서 여학교를 가봐도 마찬가지로 썰렁해"

"운동부가 없어서 그런지 교내에 활력도 없고, 시내에는 깡패학생 천지고 말이야... 그래서 '야구를 육성해야겠다!'고 결심했지.”

가난과 낙후된 경제로 상급학교 진학률이 바닥을 헤매는 군산을 야구로 살리겠다고 다짐한 이용일은 꿈나무를 육성, 중·고교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형식의 야구단을 구상한다.

자기 뜻을 몇몇 야구인에게 전하고, 초등학교 교장들을 만나 설득하면서 지도자를 물색한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1962년 2월 군산초등학교, 남초등학교, 중앙초등학교, 금광초등학교가 야구부를 창단한 것.

이용일은 야구용품은 물론 코치들 월급까지 부담한다.

매년 2회씩 초등학교 대항 리그전도 개최한다.

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리자 학생들이 흥미를 두기 시작한다.

중학교 입시경쟁이 치열할 때여서 학부모들 관심도 더욱 높아진다.

이용일은 초등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군산중학교 교장을 찾아가 성실한 선수를 추천할 터이니 특기생으로 받아달라고 설득한다.

그리고 1964년부터 추천받은 졸업생들이 진학하게 된다.

동아리 수준이었던 군산중 야구부도 이때부터 골격을 제대로 갖추기 시작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