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그의 잔은 그에게 족하다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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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그의 잔은 그에게 족하다 6-2
  • 김선옥
  • 승인 2022.09.16 07:43
  • 기사수정 2022-09-16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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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도심의 시계탑/사진=투데이 군산
옛도심의 시계탑/사진=투데이 군산

(…6-1에 이어) 두툼한 옷에 모자까지 꺼내어 썼다. 집을 나서는 그에게 아내는 언제나처럼 행선지를 묻지 않았다. 밤에 어딜 가느냐고 잔소리라도 해 주기를 기대했지만 끝내 묻지 않았다. 그가 야심한 밤에 외출해도, 며칠을 술에 취해 떡이 되어 들어와도 아내는 무관심했다. 그가 어떻게 행동하건 보지 않은 척 지나쳤고, 이제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서로 신경을 끄고 산 지 이미 오래였다. 그가 말없이 외박하더라도 아내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지나칠 사람이었다. 그 역시 아내가 누구를 만나건 무슨 짓을 하건 모른 척 눈감아야만 했다.

차를 몰고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개봉관이 있는 건물은 건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인터넷에서 미리 건물의 위치를 확인했고, 덕분에 비교적 쉽게 찾았다.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춘 영화관은 9관까지 있었다. 그가 보려는 영화의 상영은 1관이었고, 1관은 7층에 위치했다. 매점과 매표소도 같은 층에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고개를 숙인 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매표소에서 예매를 확인한 후에 티켓을 받았다.

시간에 맞춰서 왔는데도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속이 탔고, 가슴이 후끈거렸으므로 매점에서 얼음을 채운 음료와 포테이토칩을 샀다. 주위를 둘러보니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관람객이 꽤 있었다. 매스컴에서 떠들어 대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불빛이 흐린 후미진 구석에 숨듯이 서 있었다. 극장에서 안면이 있는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혼자 영화를 보러왔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몸을 사렸다. 들키고 싶지 않은 것들은 그것 외에도 많았다.

한참을 기다리자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뒷줄에 서있다가 사람들이 들어간 다음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어두웠다. 다행스럽게 H열 4번 좌석인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개봉하기 전부터 화제를 몰고 온 영화는 개봉 이후 연일 매진이었지만 한 달을 넘어서인지 빈자리가 드문드문 보였다. 그는 영화가 시작될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기를 바랐다. 영화를 보는 동안이라도 깊숙이 묻어 온 감정을 타인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가 보려는 영화의 제목은 ‘왕의 남자' 였다.

그동안 그는 언론과 인터넷에서 영화에 관해 쓴 논평들을 찾아 읽었다. 사람들은 작가나 연출가의 의도가 아닌 이유들을 행간에서 유추해낸다. 그도 원하는 문구들을 찾았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이야기들, 그런 논제들이 나올 때면 가끔씩 정체성에 회의를 느꼈지만 눈을 뗄수는 없었다. 그가 사춘기 이후로 줄곧 갈등해 온 문제였고 아직도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명료하게 구분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성에 눈뜰 나이에 이르렀을 때 그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당황했다. 그의 리비도는 비정상적이었다. 남자로 태어났으니 여자에게 끌려야 당연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는 이성에게보다 동성에게 마음이 쏠렸다. 남자가 더 매력적으로 보였으며 멋진 남자의 앞에 선 가슴이 설레었다. 그는 자신이 지닌 성의 정체성이 의심스러웠다. 그는 자신을 흥분시키고, 떨리게 만드는 동성에 대한 감정이 불편했다. 미묘한 울림을 주는 남자들이 밑바닥에 깔린 그의 욕망을 강하게 자극한다는 의문점은 리비도가 대다수의 사회적 구성원과 다르다는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경악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모든 감정들을 강하게 부정했다. 그럴수록 감정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 자주 발생했다.

해부생리학적 구조와 본능적 욕구가 일치하지 않는 반응은 삶의 위기였다. 그는 자신의 모순된 성적 취향을 수없이 부정하고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합당하지 않은 일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할 수만 있다면 그에게 주어진 쓴잔을 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신에게 울부짖으며 간절히 기도했다. 고통스러우리 만큼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기도하는 짓을 멈추었다. 대신 깊게 신을 저주했으며 용서하지 않을 다짐을 쌓았다.

심리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유혹에 빠진 경우는 드물었다. 그는 누구보다 자제력이 강한 편이었고, 매사에 조심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건 나약한 의지 탓이라고 날마다 자신을 채찍질하며 엄격하게 생활했다. 욕망을 관리하지 못하면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았다. 그는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스스로에게 경고하며 긴장의 나날을 보냈다. 젊은 시절은 그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항상 먼저였다. 바닥으로 추락시킬 위험한 요소를 누군가 알게 될까 봐 그는 두려웠다.신의 형벌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조심했으므로 친하게 지내던 주위의 사람들조차 그의 동성애적 성향을 짐작하지 못했다.

그는 진즉부터 영화를 보고 싶은 강렬한 욕구에 휘말렸다. 광고에 실린 사진에서 더욱 마음이 설레었다. 눈에 띄는 배우의 사진이 있었는데 그 한 장의 사진이 그를 들뜨게 만들었다. 알려진 이름은 아니었으나 사진 속의 배우가 보고 싶었다. 그 배우를 보기 위해 필히 영화를 보러가야 했다.

한참 주가가 치솟은 영화는 관객이 넘쳐나서 연일 매진이었다. 그는인파에 휩쓸리는 일이 힘들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스렸다. 매진 사태가 끝나고 좌석이 생긴 다음에도 시간이 없다든가 재미가 없으면 돈이 아까울 거라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관람을 미루었다. 인터넷으로 예매하려다가 확인 버튼을 누르지 않고 나오기도 했다. 욕구를 억제하는 인내심이 급기야 한계에 이르렀다. 거센 욕구가 그를 견디기 힘들게 몰아갔다.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로 치달았다.더 이상 망설일 수 없게 되자 그는, 결국 심야 프로의 티켓을 예매했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금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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