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71] 신풍초등학교와 한화생명빌딩
상태바
[군산을 걷다 #71] 신풍초등학교와 한화생명빌딩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2.05.11 08: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산지역 4번째 역사 자랑한 신풍초… 어느덧 101년 위풍당당
광동학원 설립자 학창 이종록 박사(작고) 등 유명인사 동문 즐비
대한생명 빌딩 93년 준공… 한화생명이란 이름으로 역사 이어가

군산의 맛집과 술집 골목 중 한시대를 풍미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오늘날처럼 수송동과 조촌동시대가 열리기 전에는 대한생명(한화생명) 빌딩 뒷골목에는 아기자기한 음식점과 선술집 등이 즐비했다. 이곳의 유명세는 아마도 나운주공3단지와 나운동 지역에 있는 대단위 아파트촌과 인접한 까닭이었으리라.

이곳이 들어서기 전에는 가장 유명한 공간이 군산에서 4번째 오래된 초등학교인 신풍초등학교다.

이곳의 역사는 오랜 지역 명칭과 학교의 유래가 보증하고 있는 듯하다.

신풍동주민센터는 월명산 자락의 중심자리에 위치한다.

신풍동은 3개의 법정동(신풍‧ 송풍‧ 문화동)으로 이뤄진 동(洞)으로서 위치적으로 보면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동이다. 대학로변의 번화가와 석치산 밑자락에 300년을 버티고 있는 팽나무와 묘한 조화를 이루는 현대와 고전이 살아있는 동네다.

신풍동의 유래를 살펴보면 옥구군 북면의 지역으로서 서낭당이 있었으며 서낭당이 뜨는 새로 풍성해진 마을이라는 뜻으로 ‘신풍’이라 명명됐다.

1910년 10월1일 군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옥구군 미면 신풍리로 편입되는 과정을 거쳤다.

1932년 10월1일 일부가 군산부에 편입되어 해망, 천장, 송산, 신풍, 풍남의 5정(町)으로 됐다. 1946년 동 이름 변경에 의해 해망, 송산, 신풍의 3동으로 고쳤으며 1952년 7월 14일 송산동을 문화동으로 변경했다.

또한, 1954년 9월 10일 문화동을 나눠 문화‧ 송산‧ 금풍의 3동으로 만들었고 1973년 7월 옥구군 미면의 신풍리 전역을 마저 편입하여 나운동‧ 소룡동을 신설하는 동시에 송산동과 금풍동을 통합해 ‘송풍동’으로 만들었다.

이런 흐름이 오늘날 신풍동, 문화동, 송풍동 등 3개의 동을 낳게 한 것이다.

# 신풍초등학교의 개교와 현재

1921년 5월 10일 신풍공립보통학교(4년제) 개교설립인가 3월 21일

1928년 4월 1일 6년제 개편인가

1938년 4월 1일 신풍공립심상소학교로 개칭

1941년 4월 1일 신풍공립국민학교로 개칭

1949년 12월 31일 신풍국민학교로 명칭 변경

1973년 7월 1일 옥구군에서 군산시로 편입

1984년 3월 12일 병설유치원 개원

2005년 4월 1일 야구부 창단

2006년 3월 1일 군산신풍초등학교로 개명

2022년 2월 제98회 졸업식(총 졸업생 1만1,846명)

신풍초등학교는 지난 1921년 5월 10일 신풍공립보통학교란 이름으로 개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올해 2월 8일 제97회 졸업식을 치르고 졸업생 1만1,846명을 배출했으며 최대 60학급까지 운영했던 100년 역사의 전통 학교.

특히 2005년 창단한 야구부는 전북교육감배 야구선수권대회 우승, 전북도협회장배 야구대회 우승 등 괄목할만한 수상 경력과 SK 임석진 선수 등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한 야구 명문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 학창(學創) 이종록 선생은 군산에서 출생 신풍초, 이리농림학교, 일본 가나가와 대학 법학과, 동지사 대학 법문학부,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와 대학원 등을 졸업했다.

20대의 나이에 군산중학교 교사로 임용돼 교육자의 길을 걸은 그는 문교부 고등교육국장을 역임했다. 또 옥구중학교 교장, 전북대 상과대학 전신인 군산대학 학장을 지내면서 전북대학교 상과대학 설립에 힘썼다.

불우한 청소년들을 모아 가르치며 학교법인 광동학원을 설립한 그는 국제사이버대, 군장대학교, 군산중앙중・고등학교를 두고 교육학자와 교육행정가로, 후학 양성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며,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고 이종덕 덕실학원 초대이사장이 그의 친제였다.

시인 이상비도 이곳 출신이다.

옥구군 미면 출생인 그는 신풍초‧ 군산사범‧ 원광대 국문과‧ 중앙대 대학원을 수료했다. 이후 정읍 배영중 및 호남고 교사를 거쳐 원광대 교무처장을 역임했다.

시집 파종기와 역저 한국문학사의 재평가(1997년)를 간행한 그는 한국 고전문학 →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사를 재검토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구국문학‧ 관리문학사를 중심으로 새 자료들을 추가 소개했으며, 학계의 정설이라고 하는 몇몇 고전문학의 오류를 수정 보완하여 문학사를 바로잡기도 했다.

이 학교 출신 중 유명인사는 프로야구 임석진(SSG 랜더스 내야수) 선수와 황대인(기아타이거즈 1루수) 선수.

서울 이수중‧ 서울고를 졸업한 그는 2016년 2차 1라운드로 SK와이번스에 입단한 후 SSG 랜더스로 이적, 우타자 거포로 자리를 잡았다.

프로야구 황대인 (기아타이거즈) 선수는 자양중과 경기고를 졸업한 뒤 2015년 기아타이거즈에 입단, 군 복무(상무)를 마치고 최근 맹활약하고 있다.

이밖에 이 학교 출신 중 군산시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찬석 수송동장과 고영숙 정보통신과장, 김상윤 전 시청노조위원장과 그 형제 남매, 홍종철 시청인사계장 등 1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한화생명빌딩의 유래… 준공 30년 앞둔 옛 대한생명 빌딩

한화생명빌딩과 그 주변은 다양한 음식점들과 선술집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한화생명빌딩과 그 주변은 다양한 음식점들과 선술집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한생명빌딩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지금의 한화생명빌딩은 어느덧 나운동을 대표하는 복합빌딩의 대명사였다. 이곳이 준공된 때는 1993년 8월이었다.

군산을 대표하는 공간이었지만 회사가 다른 곳으로 매각되면서 새로운 이름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 시기가 대한생명은 2013년 10월 9일(한화그룹 창립기념일)이다.

최근 중소기업에 정책자금, 컨설팅, 기술지원을 해주는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 전북 서부지부가 2012년 2월 군산에 둥지를 틀었다. 앞으로 직원 6명이 상주한 서부지부는 군산시, 부안군, 고창군 등 3개 시ㆍ군의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전북지역은 14개 전 시‧ 군을 전주에 있는 ‘전북지역본부’에서 담당해 서부권 기업의 접근이 쉽지 못했다.

옛 대한생명과 작은 인연… 이길여 가천대총장의 친구 인터뷰(2000년 1월 어느 날)

도내 J사에서 근무하던 2000년 초 ‘20세기 전북인물 50인’이란 책자를 만들던 때였다.

‘전북50인’으로 선정된 이길여 가천대 총장의 옛 친구를 찾아 학창시절의 얘기를 듣고 인터뷰하란 취재 지시가 내려왔다.

그때 만났던 분이 이 총장의 죽마고우였던 정덕임 할머니였다.

2000년 초반엔 60대가 넘은 여성이 일하리라 생각하기 어려웠는데, 정정한 분이 나왔다. 영업으로 단련된 직업적인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생생하게 그 시절을 기억해내 깜짝 놀랐다.

당시 대한생명 군산지점의 지도장인 정 할머니는 당시 경원대 이사장이었던 이길여 총장의 어린 시절에 대해 전해들었다.

이 총장과의 그녀와 인연은 1947년 무렵. 이리여중(오늘날의 이리여고) 4학년 때(이땐 중‧ 고 통합과정: 지금의 고 1년)였단다. 빼어난 머리와 엄청난 노력을 다한 이 총장은 2년이나 월반하는 바람에 (정 할머니)자신과 같은 반이 됐던 기억을 풀어갔다.

정 할머니와도 취재 당시까지 30년 이상을 교류하고 있었고 그 친구들은 그녀를 ‘이사장’이라 지칭하고 있다고 술회했다.

전국 최고령 맹렬 보험설계사로 활동하던 정 할머니는 과거 이 총장의 삶을 기억해낸 내용이다.

해방 전후 교통여건이 열악한 시절이었다.

이 총장은 통학열차를 타는 와중에도 치열하게 공부했던 기억들과 (그녀 자신의) 12세 때 병환으로 돌아가신 선친과 농촌지역에서 인술을 편 고 이영춘 박사의 삶에 감화를 받아 의학분야에 투신하게 됐을 것이라고 이 총장의 인생 얘기를 풀어냈다.

정 할머니 역시 홀로 4남매를 훌륭히 키운 억척 어머니로 삶을 살아왔던 이 시대의 장한 어머니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때 만남을 가진 곳이 대한생명빌딩의 회의실에서 만났던 기억들 때문에 이 빌딩을 지나칠 때마다 그 시절 취재 기억들이 새록새록 난다.

한편 한화생명 빌딩 주변은 유명 맛집들이 적지 않다.

단골들만 아는 섬마을과 부대찌개로 유명한 비행장 정문 부대찌개는 물론 찰보리 오리향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섬마을의 여주인이 어느 섬 출신이어서 싱싱한 횟감과 해산물 등을 내놓아 오랜 고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의 친우가 그곳의 단골이어서 그 친구와 동석해서 이곳을 자주 찾곤 한다.

또 선술집 등도 오랜 단골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여전히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