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大選 이야기 #_8] 2000년 미국 대선의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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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大選 이야기 #_8] 2000년 미국 대선의 트라우마
  • 박선춘 前 국회 국방위 수석 전문위원
  • 승인 2022.03.15 14:18
  • 기사수정 2022-03-15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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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인단 제도 폐지 미국인의 생각

#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의 트라우마

"사람들은 나더러 2000년 선거와 재검표의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고 자주 말하지만, 난 아직 극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 론 클레인의 2019년 9월 7일 트윗 내용(출처: 트위터 캡처)
▲ 론 클레인의 2019년 9월 7일 트윗 내용(출처: 트위터 캡처)

 

바이든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론 클레인의 2019년 트윗 내용이다. 클레인은 앨 고어 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고, 2000년 대선에선 ‘고어 재검표 위원회’의 법률팀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유권자 투표에서 54만 여표를 앞서고도 연방대법원의 재검표 중단 결정으로 선거인단 수(271대 267)에서 밀려 공화당의 부시 후보에게 백악관을 넘겨주고 말았다. 클레인에게 이러한 2000년의 쓰라린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을 악몽과도 같았을 것이다.

<RECOUNT>의 실제 주인공 론 클레인

<리카운트>(2008년)는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사건의 막전막후를 실감있게 그린 드라마 영화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지만 정치드라마 특유의 박진감있는 전개와 배우들의 수준 높은 연기로 지루하다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프랜시스 언더우드 역을 맡았던 케빈 스페이시가 실제의 론 클레인을 연기했다

플로리다 재검표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2000년 11월 7일 선거 당일, 민주당의 고어 후보는 선거에서 졌다는 판단을 내리고 부시 후보에게 축하 전화를 한다. 그로부터 2시간 후 고어 후보는 25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플로리다에서 점차 표 차이가 줄어들어 플로리다 주법(州法)에 따라 자동으로 재검표를 실시하게 될 것이라는 참모의 보고를 받는다. 고어 후보는 부시 후보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승복을 번복했고, 방송사는 이 사실을 긴급 속보로 내보냈다. 미국 역사상 승복을 철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 새벽 4시에 앨 고어의 승복 철회를 속보로 전하고 있는 모습(출처: 게티이미지)
▲ 새벽 4시에 앨 고어의 승복 철회를 속보로 전하고 있는 모습(출처: 게티이미지)

 

선거 다음 날인 11월 8일, 플로리다 주의 최종 개표 결과는 1784표 차이(0.01%)로 부시 후보의 승리였다. 그러나 플로리다 주법은 후보 간 표차가 0.5% 이하일 경우 기계를 이용한 재검표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11월 10일 기계 재검표를 실시했고, 두 후보의 표 차이는 327표로 크게 줄어들었다. 고어 진영은 민주당의 텃밭인 4개 카운티의 표에 대해 수작업 재검표를 요구하고, 민주당이 파견한 변호사 입회하에 수작업 판독에 돌입했다. 문제는 수작업 재검표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2000년 당시 플로리다의 많은 카운티가 펀치카드를 투표지로 사용했는데, 펀치카드의 구멍이 제대로 뚫리지 않은 경우 무효표로 분류되었다. 따라서 무효표 하나하나에 대해 어느 후보의 표로 분류할 것인지를 판독하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 팜비치(Palm Beach) 카운티의 수작업으로 재검표를 진행하는 모습(출처: PALM BEACH POST)
▲ 팜비치(Palm Beach) 카운티의 수작업으로 재검표를 진행하는 모습(출처: PALM BEACH POST)

 

플로리다 주법에 따르면, 선거 후 7일 이내에 투표 집계 결과를 국무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따라서 11월 14일이 수작업 재검표 마감일이었는데, 기한 내에 재검표를 마치지 못했다. 결국 재검표를 실시한 4개 카운티 중 3개 카운티가 마감일 연장을 주정부에 요구했지만, 해리스 주 국무장관은 이를 불허했다. 당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부시 후보의 친동생인 젭 부시였고, 국무장관인 캐더린 해리스는 플로리다주 공화당 선거캠프의 공동의장이었다.

재검표 마감일 연장 불허에 민주당은 즉각 플로리다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11월 26일 오후 5시까지로 마감일을 연장했다. 하지만, 마감일 연장에도 불구하고, 팜비치 카운티와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는 연장일까지 재검표를 마치지 못했다. 그리고 11월 27일 해리스 국무장관과 주 선거위원회는 537표 차로 부시 후보의 승리를 공식 선언했다.

민주당과 고어 후보는 주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했고, 12월 8일 플로리다 대법원은 수작업을 진행했던 4개 카운티를 포함하여 주 전체에서 무효표(undervotes)로 분류된 61000여 표에 대해 모두 수작업 재검표를 실시할 것을 다시 결정했다. 이에 공화당과 부시 후보는 즉시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연방대법원은 12월 12일 모든 무효표의 수작업 재검표를 허용한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결정은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리며 재검표를 중단시켰다. 연방대법원은 재검표를 위한 동일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카운티마다 제각기 다른 기준으로 무효표를 판별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취지였다. 고어 후보는 연방대법원의 재검표 중단 판결 다음날인 12월 13일 승복연설을 했고, 36일간이나 진행되었던 교착상태는 비로소 해결되었다.

선거인단 제도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

“죄송합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와 지키고자 했던 비전을 위한 이번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번 패배는 매우 고통스럽고 오랫동안 그럴 것입니다.”

2016년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힐러리 클린턴의 승복연설의 한 대목이다. 1억 3천500만 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개표 결과 힐러리 클린턴은 도널드 트럼프(6천120만 표)보다 132만 표나 많은 6천252만 표를 얻었지만 낙선했다. 선거인단 확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에 필요한 270명을 훌쩍 넘긴 306명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일반유권자 투표와 선거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일이 16년만에 다시 벌어진 것이다. 그 이유는 승자독식제(winner takes all)를 기반으로 한 선거인단 제도(the electoral college system) 때문이다(간접선거 방식인 선거인단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지구 상에서 미국이 유일하다). 1824년 이후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하고서도 낙선한 사례는 2016년을 포함해 총 5번이나 있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국민의 선거인지, 538명의 선거인단에 의한 선거인지”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기에 충분하다.

미국인들은 선거인단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2000년 이후 매 2년마다 실시한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설문은 “당신은 헌법을 개정하여 일반투표를 통해 최다 득표를 얻은 후 보가 선출되는 것을 선호합니까? 아니면 기존의 선거인단 제도를 통한 대통령 선출방법을 유지하기를 원합니까?”였다.

헌법을 개정하여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응답 비율이 6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6년에만 헌법 개정(49%)과 현행 선거인단 제도 유지(47%)가 비슷한 응답을 보였을 뿐이다.

조사 결과를 정치 성향별로 보면 미국 정치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000년 조사 결과에서는 선거인단 제도 폐지를 찬성하는 비율이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이 각각 60%와 42%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2020년에는 선거인단 제도의 폐지를 찬성하는 비율이 민주당원 89%로 크게 높아진 반면, 공화당원은 불과 23%로 조사되었다.

선거인단 제도의 미래

헌법제정회의 당시 제임스 윌슨은 선거인단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정부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 정부는 인민(people)을 위한 것입니까, 주(state)라는 상상의 존재를 위한 것입니까?”

헌법제정 이후 2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선거인단 제도는 수많은 비판과 선거인단 폐지를 위한 헌법 개정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 지위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실례로, 1989년 선거인단 제도를 폐지하고 그 대신 국민의 직접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하는 개정안이 하원에서 338대 70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부결되고 말았다.

선거인단 제도를 개선하거나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미국 헌법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개정이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헌법의 개정안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상하 양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거나, 전체 50개 주의 3분의 2가 찬성해야만 한다. 설사 개정안이 제안되더라도 전체 50개 주의 4분의 3이 승인하거나 헌법개정 의회에서 상하 양원 4분의 3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사실상 헌법 개정에 만장일치에 가까운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선거를 거듭할수록 양당의 지지자들이 더욱 심화된 양극화 현상을 보이면서 선거인단 제도는 앞으로도 내구성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

<참 고>

2000년 대선 당시 플로리다 주의 투표용지를 자세히 보면 좌측 첫 번째에 공화당 부시 후보의 이름이, 두 번째에 민주당 고어 후보의 이름이 인쇄되어있고 우측 첫 번째에 개혁당 뷰캐넌 후보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다. 그런데, 가운데에 위치한 구멍을 뚫는 기표란은 부시 후보가 첫 번째, 뷰캐넌 후보가 두 번째, 고어 후보가 세 번째로 되어 있다. 고어를 찍으려던 많은 유권자들이 두 번째에 구멍을 뚫었다가 실수한 것을 깨닫고 다시 세 번째 구멍을 뚫어, 구멍이 두 개인 무효표가 19,000개가 나왔다. 그리고 두 번째 기표란에 구멍을 뚫어 놓고선 고어 후보를 선택했다고 착각한 유권자도 적지 않은 숫자였을 것이다.

※이 원고는 저자의 저서 '미드보다 재미있는 미국 대선이야기'를 참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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