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大選 이야기 #_4] 민주주의는 과대평가 되어 있다
상태바
[미국 大選 이야기 #_4] 민주주의는 과대평가 되어 있다
  • 박선춘 前 국회 국방위 수석 전문위원
  • 승인 2022.02.14 10:41
  • 기사수정 2022-03-15 14: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웨스트 윙'과 '하우스 오브 카드'의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웨스트 윙'과 '하우스 오브 카드'의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민주주의는 과대평가되어 있다.”

미국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의 독백이다.

필자에게 미국 정치 드라마 중 2개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웨스트 윙>과 <하우스 오브 카드>를 꼽는다.

지난 2015년 워싱턴D.C.의 주미대사관에 입법관으로 부임하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웨스트 윙> 다시보기였다. <하우스 오브 카드>도 빼놓지 않고 챙겨보았다.

미국 대선제도 공부하기의 일환이었다. 지금의 우리나라 대선 정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둘 중 어느 드라마가 미국 대선제도를 더 충실히 설명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단연 <웨스트 윙>이다. 출마를 고심하는 것부터 출마선언, 대선 캠프를 꾸리고 공약을 만들어내며, 예비선거와 전당대회, 본선거 등에 이르는 선거의 모든 과정을 사실에 가깝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드라마는 미국과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서 많은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의 댓글부대(troll factory) 요원들이 미국 정치를 배우기 위해 <하우스 오브 카드>를 교재처럼 의무적으로 시청했을 정도다.<하우스 오브 카드>는 오바마 대통령, 시진핑 주석, 힐러리 국무장관 등 유력 정치인들이 열광적 팬임을 자처하고 나서기도 했다.

반면 <웨스트 윙>은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즐겨보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웨스트 윙> 속의 대통령이 비서의 책상에 걸터앉아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백악관의 역동적인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하며 참모들에게 드라마 시청을 권유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웨스트 윙>에 대해 “<웨스트 윙>을 보면 (대통령이) 국정 현안에 대한 국민의 반응을 그때그때 비서들과 의논하고 소통하는 모습이 지금 미국 민주주의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을 듣는 이유입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웨스트 윙>과 <하우스 오브 카드>는 미국의 현실 정치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미국의 대선 과정을 매우 실감 나게 다루면서 대중의 사랑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받았다. 현실 정치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과 철학이 묵직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에 처음 전파를 탄 <웨스트 윙>은 2000년부터 4년 연속 에미상 최우수 TV 시리즈상을 수상했고, 주연급 배우들이 연이어 주연상과 조연상을 독차지했다.

2013년 처음 방영된 <하우스 오브 카드> 역시 52차례나 에미상 후보에 선정되었고 6개의 에미상과 2개의 골든 글로브를 차지했다. 흥행 면에서도 2013년 Netflix의 순이익은 이 드라마 덕분에 37억 5000만 달러로 1997년 회사 설립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적 부진으로 나스닥 퇴출을 걱정했던 Netflix가 이때부터 미디어 공룡으로 급부상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두 드라마는 상반된 특징을 갖고 있다. <웨스트 윙>이 백악관의 빛을 다뤘다면,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뤘다는 차이점이 있다. 시즌 7까지 방영된 <웨스트 윙>은 대통령과 참모진,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이들이 선한 의지로 정치를 이끌어간다. 정책적으로 아무리 첨예하게 대립해도 협상과 토론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웨스트 윙>의 주인공인 바틀렛 대통령은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지만, 이 약점을 참모진과 함께 슬기롭게 극복해 나간다. 여소야대 정국, 총기 규제와 의료보험 개혁과 같은 숱한 난제에도 불구하고, 권력분립, 대의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 안에서 난제들을 풀어나간다.

<웨스트 윙>의 매력은 딱딱하고 단조로울 수 있는 백악관의 이야기를 일반 대중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뜩이는 재미와 잔잔한 감동으로 잘 풀어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웨스트 윙>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현실 정치에 뛰어들기도 했다. 예를 들면, 바틀렛 대통령 역을 맡은 배우 마틴 쉰은 대선과 총선에서 오바마의 선거자금 모금에 참여했고, 조쉬 라이먼 역을 맡은 브래들리 윗포드는 2004년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을 비난하는 광고를 찍은 바 있다. C.J 크렉 역을 맡은 앨리슨 제니 역시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유세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래서 민주당이 차지한 백악관을 그린 탓에 ‘웨스트 윙’이 아니라 ‘레프트 윙’이라고 비판하거나, 권력에 대한 진보들의 판타지라며 평가절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비정한 권력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웨스트 윙>과는 결이 전혀 다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욕망의 화신들이 권력의 꼭짓점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가는 느낌을 갖는다. 한 줌의 인간미도 없는 정치인들의 극한 대결과 사악

한 음모, 지저분한 스캔들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성악설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정치인이 법을 만드는 과정과 소시지를 만드는 과정은 모르는 게 낫다”라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촌철살인이 마치 이 드라마를 설명하는 듯하다. “민주주의는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 분)의 비정한 독백처럼 말이다. 백악관을 차지하기 위해 거짓말, 성추문, 뒷거래, 살인은 물론 무고한 전쟁까지도 불사하는 현실 속 미국 정치의 어두운 면을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 정치는 <웨스트 윙>에 가까울까, 아니면 <하우스 오브 카드>에 더 가까울까? 대의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큰 틀 안에서 국민을 바라보며 선한 의지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정치가 우리의 현실 정치에서도 꽃 피울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이 원고는 저자의 저서 '미드보다 재미있는 미국 대선이야기'를 참고한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