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희의 예술문화+] 문화·예술을 잉태한 공간, '커피하우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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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의 예술문화+] 문화·예술을 잉태한 공간, '커피하우스' #1
  • 투데이 군산
  • 승인 2020.03.2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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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당시 런던의 커피 하우스
17세기 당시 런던의 커피 하우스
유럽의 커피하우스 거리
유럽의 커피하우스 거리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오스만 제국(현재의 터키)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1475년 개점한 ‘키바 한(Kiva Han)’이다.

커피 문화가 유럽에 전래된 것은 17세기이다.

아랍과 이슬람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커피를 마셨던 탓에, 기독교 문화가 지배했던 유럽인들은 커피를 '이교도들이나 마시는 음료'라고 생각했으며, 커피는 실제로 ‘이슬람교도의 와인’이라고 불렸다.

이탈리아의 무역상들이 커피를 유럽으로 들여왔지만 문화적 거부감이 너무 커서, 원래는 유럽 전역에 전파되기는 어려웠다.

커피에 대한 편견을 깨뜨린 것은 교황 클레멘트 8세였다.

클레멘트 8세의 측근들이 “커피를 사탄의 음료라고 선포해달라”고 청원했지만 커피를 마셔본 교황은 “악마의 음료라기에 이건 너무 맛있으니 커피에게 세례를 주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 시기를 즈음해서 커피가 유럽에 퍼지기 시작한다. 1629년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유럽 최초로 커피하우스가 탄생한다.

영국 런던에는 1650년, 프랑스 파리에는 1672년 첫 커피하우스가 생겼다.

커피하우스는 이후 유럽 문화와 예술과 정치와 혁명의 중심지가 되게된다.

커피하우스가 생겨나기 전 사람들은 선술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과도한 음주로 인한 질병과 다툼이 자주 발생한다.

그런데 커피와 커피하우스가 등장한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음료를 파는 건전한 공간. 커피하우스에서 런던의 신사와 파리의 부르주아들은 가십과 패션과 시사와 정치와 스캔들, 철학과 자연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가 고흐와 고갱은 카페와 카페 주인의 초상화를 그렸고, 그들의 그림은 카페에 전시되었으며, 철학자 루소는 오후 세 시면 어김없이 커피하우스를 찾았다.

이처럼 수많은 문학가, 음악가, 화가, 철학가들은 카페라는 공간에 모여 교류하며 각자 자신의 분야에 영감을 받았고, 이는 근대문화의 폭발적 성장을 불러왔다.

영국 기준으로 커피값 1페니만 있으면, 누구나 커피하우스에 입장해 정치와 사회적 논쟁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커피하우스 정치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하루 종일 커피하우스에 죽치고 앉아서, 비현실적인 정치적 견해를 퍼뜨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커피하우스는 근현대 유럽의 경제와 정치, 학문이 탄생한 곳이다. 영국 과학자로서 최고의 영광이라고 하는 과학자들의 모임인 ‘왕립학회’도 커피하우스에서 탄생했다. 왕립학회 초기 회원이었던 아이작 뉴턴과 로버트 보일, 로버트 훅 등이 커피하우스에 모여 토론한 내용은 근대과학의 토대가 된다.

그리고, ‘로이드’라는 이름의 커피하우스에는 상인들과 선원들, 해운업계 사람들이 모였다. 영국 대형 보험사 로이드의 시초가 이렇게 시작이 된다. 또한 세계적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도 커피하우스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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