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37] 군산의 갈비 역사 ‘완주옥 떡갈비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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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37] 군산의 갈비 역사 ‘완주옥 떡갈비의 등장’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09.15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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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평양서 시작… 군산은 1940년 전후 자리 잡은 듯
‘양념 + 고기숙성’ 한 맛의 결정체…새로운 특징을 지닌 떡갈비 탄생
군산만의 갈비(?) 등장… ‘완주옥과 그 후예들’로 나눠지는 게 정설?

국민은행 군산지점 오거리에서 주변 작은 도로를 쭉 따라가면 군산 맛집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완주옥이다.

완주옥 앞을 지나는 길이 ‘큰샘길’이다.

개복교회 주변의 중앙로에서 구시장로가 연결되는 약 370m 구간을 지칭하는 곳인데, 이 도로변에는 완주옥을 비롯한 군산원협 죽성지점, 영신당 한약방, 서울 한약방, 옛날팥죽, 반야 돌솥밥, 경원 아나고 등이 있다.

국민은행 군산지점 주변 맛집 단지일대. / 사진= 투데이군산
국민은행 군산지점 주변 맛집 단지일대. / 사진= 투데이군산

완주옥은 평화길과 큰샘길이 만나는 곳에 있다면 원협 죽성지점의 뒤쪽을 잇는 길이 싸전길(옛 영동 파출소 앞 왼쪽 골목의 농방골목과 파출소 서쪽일대의 옛 싸전거리를 지칭)이다.

국민은행 군산지점 오거리의 소로인 큰샘길 주변에는 군산갈비의 원조격인 ‘완주옥’이 있다. 죽성동 청과물시장 앞 지금의 군산원협 죽성지점과 중앙동주민센터 옆 골목에 위치한 곳이다.

중앙동주민센터는 옛 위치에서 벗어나 군산원협 부지를 일부 매입한 뒤 깔끔하게 새로 지었다.(2019년 1월21일)

군산시 중앙동주민센터. / 사진= 투데이군산
군산시 중앙동주민센터. / 사진= 투데이군산

 

완주옥의 탄생이 군산갈비의 출발이라는 정설에는 큰 이의를 달지 않고 있지만 본래 완주옥의 많은 주인들이 바뀌면서  ‘원조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유는 완주옥의 원래 주인과 그 후손들에 의해 맛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주방장이나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 등에 의해 오늘의 군산 갈비가 이어졌거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군산갈비의 시작은 완주옥이라는 정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게 미식가들의 한결같은 입장이다. 그 이전의 갈빗집과 유명한 맛집이 기억에서 사라진데 따른 것이다.

완주옥의 탄생과 군산갈비의 역사를 다뤄보자.

이 길의 핵심 키워드는 맛집인 만큼 ‘군산갈비의 대명사’ 완주옥을 집중적으로 다뤄 탐미(耽味)의 세계에 빠져들어 가본다.

필자도 군산갈비 요리들은 대부분을 섭렵했지만 완주옥과 그 후예들의 차이는 크게 구분되기보다는 개별 식당의 세프들이 조금씩 새로운 맛을 내는 수준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니아층들의 기호에 따라 맛집을 선호하는 기준으로 삼는 듯하다.

◇ ‘군산갈비의 원조’ 완주옥…1940년 전후 그 당시 맛 계승

군산떡갈비 원형의 역사를 간직한 완주옥. / 사진=투데이군산
군산떡갈비 원형의 역사를 간직한 완주옥. / 사진=투데이군산

 

완주옥의 시작을 고 최영 시인은 자신의 군산풍물기에서 구시장에서 장국집을 하던 한 할머니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적고 있다. 그에 따르면 완주옥은 공부상에도 1976년에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갈빗집이고 이 음식점을 창업한 사장은 초기 군산요식업조합 간부였고 그곳의 진 할머니가 만든 떡갈비가 오늘날 ‘군산 갈비의 원조’라고 적고 있다. 물론 지역갈빗집들에는 떡갈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지역과 유사한 오래된 갈빗집도 있지만 이를 원형으로 삼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군산만의 특징을 외부에 내세울 때 완주옥과 그 후예들이 직접 만든 갈비요리는 없기 때문에 표현상 ‘군산갈비’라 지칭하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군산 토박이들은 완주옥의 출발을 한국전쟁, 즉 6.25 직후인 1950~ 1952년으로 보고 있으며 장국집과 관련이 없는 요정 등 고급음식점에서 요리했던 맛에서 시작됐다고 추론하고 있다.

완주옥이란 이름은 진 할머니의 고향인 완주(完州)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우리나라 갈비의 역사는 1920년을 지나 1940년대 이후 당시 요정 등과 같은 고급식당에서 주로 만들어진 음식이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군산에도 이 맛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왔을 것으로 보인다. 군산의 요정문화는 다른 곳에 비해 긴 역사에다 맛의 고장이란 특징 등을 고려할 때그런 흐름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말기와 해방정국 등에서 갈비의 맛이 일부 요리전문가들에 의해 전해지다 전쟁 중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이었지만 물산과 물자 등이 풍부한 군산에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과거를 꺼내 군산 갈비 맛의 원조 세프라 할 수 있는 진 할머니의 명예를 건드리고 싶지 않지만 권번과 요정 등에서 과거 일했다는 지역원로들의 증언(?) 등으로 볼 때 당시 특정인들의 전유물이었던 갈비의 맛이 다시 일반에 확산, 전파된 것은 아닐까.

진 할머니의 갈비 맛은 고기 살을 이은 갈비를 연탄불에 구워 내놓고 단순한 떡 모양이 아닌 파전과 같은 동그란 모양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즉, 제사상에 오르는 시루떡 모양이거나 치댄 흔적이 없이 갈빗살에 다른 소고기 부위를 섞어서 만든 것이다.

이는 담양과 광주 송정 등지의 떡갈비와도 다른 모양이어서 같은 호남권에서도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싱거우면서도 개운하고 감칠 맛 나는 백동치미가 완전히 차별화된 별미다. 이런 특징은 완주옥과 그 후예들에게 나타난 공통된 내용이다.

이런 맛은 원조 진모 할머니(1세대)가 돌아가시고 그녀의 딸 홍모 할머니(2세대: 작고)가 갈빗집을 이어 받았는데 이 시기에 초가집이었던 완주옥을 지금의 모습으로 바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 할머니의 아들인 김우태 사장이 1990년대 중반까지 영업을 하다 호주로 이민한 후 지금의 사장인 최영수(70)씨와 그 가족들이 1996년께부터 완주옥을 운영하고 있다. 완주옥 원래 주인이었던 김 사장은 호주로 이민갔다가 몇 년 후에 다시 국내로 돌아와서 경기도 이천에서 한정식을 운영하는 것으로 지인들은 전하고 있다.

60년대 이후 수십 년 동안 완주옥의 갈비 맛을 보기 위해선 그 지역의 유지와 사업가, 관가 사람들만 가능했을 정도다.

대중화된 것은 경제발전으로 소득이 높아졌던 1990년대에 들어서다. 이 시기를 군산갈비의 3세대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2세대급인 군산갈비가 오늘날의 갈비 맛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완주옥과 그 후예들이 크게 분화 발전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사이에 원조격인 완주옥은 주인들이 몇 차례 바뀌었고 이곳에서 일했던 주방장이나 찬모들이 1990년대 들어 하나둘씩 독립, 군산만의 갈비가 새롭게 입지를 굳히면서 오늘의 갈비 맛을 진화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완주옥의 후예들

완주옥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이모씨가 독립, 88맨션 부근에 ‘내갈비’를 차렸고 시청이 조촌동으로 이전하자 나운동 유원아파트 근처로 다시 옮겨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우리떡갈비도 문화동에서 독립해 영업 중에 있고, 이들 갈비맛과 유사한 영화동소재 진갈비가 최근 시설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한 뒤 활발하게 영업하고 있다.

# 문화동 우리떡갈비(93년 4월)는

옛 완주옥 할머니가 외손주를 도와 개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옛 완주옥의 홍 할머니가 그의 외손주 조모씨를 도와 기술전수와 함께 음식점을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산 떡갈비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완주옥에서 독립한 ‘내갈비’보다 덜 달다는 평도 있다.

# 영화동 진갈비(91년 4월 영업)는

원도심이 있는 영화동의 갈빗집으로 다른 군산의 갈비처럼 시루떡 형태를 닮아 가는 모양이다. 파무침과 백김치 등은 수준급이고 갈빗살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덧살과 양짓살 등을 섞어서 사용해 약간 달달한 느낌을 주고 있다. 다만 미리 재워 두지 않아 연탄불에 10분가량 굽는 뒤 갈비가 나온다. 전주 등에도 진갈비란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한 것을 볼 때 일종의 체인점으로 탄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나운동 내갈비(94년 4월 영업)는

완주옥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이모씨가 독립, 88맨션 부근에서 영업하다 2000년대 나운동 유원아파트 부근으로 이사했고 우리 떡갈비보다 더 달달한 맛이다.

완주옥 주방에서 일하던 분이어서 옛 원조 할머니들의 대를 이은 것도 아니지만 우리떡갈비와 4촌지간이라 할 만큼 유사한 맛을 자랑한다.

한편 월명동의 명월갈비(84년 3월 영업)는 70년대 문을 열어 2대째 영업 중인 군산 숯불갈비의 좌장이자 원조격. 물론 완주옥이나 그 후예들과 전혀 다른 맛을 지닌 갈비 맛이다. 어떤 의미에선 완주옥 사단과 달리 제대로 가업을 이은 정통 숯불갈비의 맛을 자랑하는 지역 유명 맛집이다. 최근 코로나 19 상황 속에 내부시설을 개선하고 과거와 다른 외형을 갖추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후발주자격인 군산떡갈비는 2014년 9월 미장동에서 문을 열고 신도심 주민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그후 다양한 갈비집들이 문을 열고 영업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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