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36] 국내 정상급 작곡가 고 박판길 충남대 교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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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36] 국내 정상급 작곡가 고 박판길 충남대 교수 고향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09.07 11:39
  • 기사수정 2022-01-17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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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상임지휘자로 시향의 첫 연주회 등 군산시립교향악단 창단 역할 톡톡
충남대 음대 교수 활동… 산노을, 어머니, 골짜기의 불빛, 풀피리, 도라지꽃 등 20여 곡도
초등학교 밴드부 전국적인 명성… 고 정회갑 서울대 교수, 군산중앙초 재직
군중 출신 주축 해군군악대 창단… 구심체로 활약

사람이 많으면 볼거리도, 얘깃거리도 많다고 했던가.

옛 영동파출소 앞 왼쪽의 농방골목과 싸전거리, 약전안길 등의 골목길 주변에는 구시장과 각양각색의 가게 등이 즐비하게 있었던 왁자지껄한 시장통, 그 자체였다.

시장은 사람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공간이자, 이를 통해 사람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는 장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몰려들어 군산을 대표하는 상권의 메카같은 성격 때문인지 몰라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중앙초등학교와 한때 전국 최고의 초등학교 밴드부가 있었고 국내 정상급  작곡가 등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던 공간이었다.

영동상가에서 나와 몇 십 미터만 옛 역전 쪽으로 향하는 평화길로 가면 아리울 스포츠 건물이 있는 곳이 영화배우 고 이은주씨가 태어나 고교까지 자랐던 곳이고, 인근에 있는 중앙로 5가의 어느 골목의 작은 집에서 ‘산노을’의 작곡가인 고 박판길 충남대 음대교수가 초‧ 중‧ 고를 다녔던 곳이다.

이들 예술인들로 인해 군산은 예향이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중앙동 5가 출신 고 박판길 충남대교수, 군산시향의 탄생 주역

<1절>

먼 산을 호젓이 바라보면 누군가 부르네

산 넘어 노을에 젖는 내 눈썹에 잊었던 목소린가

산울림이 외로이 산 넘고 행여나 또 들릴 듯한 마음

아- 아 산울림이 내 마음을 울리네

다가왔던 봉우리 물러서면 산 그림자 슬며시 지나가네.

<2절>

나무에 가만히 기대보면 누군가 숨었네

언젠가 꿈속에 와서 내 마음에 던져진 그림잔가

돌아서며 수줍게 눈 감고 가지에 또 숨어버린 모습

아-아 산울림이 그 모습 더듬네

다가섰던 그리움 바람되어 긴 가지만 어둠에 흔들리네

- 산노을(유경환 작시‧ 박판길 작곡‧ 신영조 노래) -

고 박판길 전 충남대교수는 중앙로 5가 주변 어느 골목에서 초 중고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 사진=투데이군산
고 박판길 전 충남대교수는 중앙로 5가 주변 어느 골목에서 초 중고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 사진=투데이군산

 

‘산노을’으로 잘 알려진 고 박판길(1929~ 1998) 전 충남대 교수는 군산시 중앙로 5가 33번지에서 태어났고 해방 직후 중앙초의 밴드반(부) 반장을 지냈는데 이때 중앙초의 음악교사가 고 정회갑(1923~ 2013) 서울대 음대 교수였다.

고 박판길 전 충남대 교수
고 박판길 전 충남대 교수

그는 개복교회에 어려서 출석하면서부터 피아노를 쳤고 성가대원으로서 피아노 반주를 맡으면서 음악과 가까워졌단다. 어려운 생활을 꿋꿋이 이겨낸 그는 군산중에 진학해서도 밴드부를 지휘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6학년 때 ‘나뭇잎 배’와 군중 3년 ‘밤의 노래’를 작곡했을 정도다. 그는 대학 진학과 함께 고향 군산을 떠났다.

그는 서울대 음대(작곡과)를 졸업한 후 1962년 경복고 등에서 음악교사와 대학에서 강사생활을 했다.

1968년 도미, 미국 시카고 음악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귀국 세종대 교수를 거쳐 충남대 (1981년)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 퇴임했다.

산노을은 본래 제자 유경환 시인의 작품이었는데 여기에 음을 넣은 것이 작품의 탄생 배경이다. 또한 어머니, 골짜기의 불빛, 풀피리, 도라지꽃 등 20여 곡도 유경환 시인의 작품들을 편곡한 것이다.

그는 고향을 떠났지만 이곳에서 산 경험과 추억 등을 자신의 음악적인 자양분으로 삼아 작곡했고 군산시향의 탄생에도 기여했다.

군산시향의 탄생 비화는 이렇다.

약 8년쯤 김병남(작고) 전 서해방송 보도국장과 대화를 하던 중 그 시절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박판길 전 교수는 1979년 당시 김 서해방송 보도국장을 비롯한 지역예술인 등을 만나 시향 창단의 당위성을 역설했었단다.

이에 지역음악계 인사들이 뜻을 모았으나 곧바로 결실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1989년 충남대 예술대학장이었던 박 교수가 다시 고향을 방문, 당시 김인식 군산시장을 만나 지역 음악인들과 시민들의 음악에 대한 열망을 들어 시향 창단 필요성을 강력하게 역설했다. 이에 당시 김 시장도 시향 창단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화답을 했다.

이렇게 해서 그의 뜻이 10여 년 만에 이뤄졌다.

그때가 1990년 8월29일이다.

박 전 교수는 초대 지휘자로 군산시향의 창단기념연주회를 여는 등 오늘의 시립교향악단의 뿌리를 내리는데 헌신했다. 전국에서 16번째의 시립교향악단 창단이었다.

 

전국 최고의 초등학교 밴드부 탄생

고 정회갑 교수 등 제자 육성에 열정

군산은 근대기에는 외국 선교사들로부터 서양음악을 빠르게 받아들였고 해방 직후엔 미군 진주라는 독특한 환경이 조성돼 다른 도시와 달리 앞서 밴드부가 창단됐다.

이 내용 일부는 8년 전 김병남 전 언론인의 술회 내용을 중심으로 담았다.

미 군정청이 주관하는 전국밴드경연대회에서 초등부 우승을 차지, 미 주둔군사령관인 하지 중장으로부터 부상으로 당시로선 최신식 브라스 밴드 일체를 받았단다.

그 주역들이 중앙초(당시 보통학교)와 부설초등학교 전신인 팔마초등학교 출신이었다.

중앙초에는 김제(혹은 전주로 표기: 당시 제자들은 김제출신으로 기억) 출신 정회갑 교사(후에 서울대 음대교수)가 경성음악전문학교 졸업과 함께 부임한 후 지도, 박판길 교수 등 제자들을 가르쳤다.

경성음악전문학교 1회 졸업생인 고 정회갑 교수는 교사 등을 거쳐 나중에 서울대를 졸업했고 1961년부터 모교 교수로 재직, 국악기와 서양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과 변주곡을 시도했다. 즉 서양음악의 토대 위에 한국적 정체성을 구현해 나갔다.

세계적인 거장 윤이상(작고), 이상근과 더불어 우리나라 진보적 성향의 작곡가로 잘 알려졌으며 서양창작음악계의 동향을 파악해 국내 현실에 맞게 재해석했다.

그는 1989년부터 1991년까지는 한국음악협회 이사장을, 1990년에는 난파음악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는 대한민국 예술원 부회장을 맡았고,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장도 거쳤다.

대표작으로는 가곡 '진달래꽃'과 '그리움', 독주곡 '가요고소곡', '인성(人聲)과 5개의 악기를 위한 시나위', '피아노를 위한 한국무곡' 등이 있다. 창작오페라 '산불'도 그의 작품이며 1977년에는 '정회갑 가곡집: 출범의 노래'를 냈다.

그는 그동안 공로로 1982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89년 국민훈장모란장, 1990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95년 예술문화대상 등을 받았다.

고 정회갑 교수의 중앙초 교사 시절에 함께 활동하던 팔마초(부설초 전신)의 최동옥 교사가 지도에 나서면서 중앙초와 쌍벽을 이뤘단다.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해방정국이 지나면서 월북, 북한에서 상당한 지위에 오른 음악가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도철 전 군산고 교장이 오래 전, 일본에 갔을 때 NHK 방송국에서 우연 기회에 그를 만났으나 끝까지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는 게 2013년 필자와 인터뷰 당시 고 김병남 전 보도국장의 회고다.

중앙초와 팔마초 밴드부 졸업생들은 대부분 상급학교로 진학, 군산중의 밴드부를 만드는 주역으로 활동했고 이들이 졸업한 후에는 해군군악대의 창설 대원으로 참여했단다.

해군군악대는 1946년 서울에서 군중 밴드부 출신이 주축이 돼 민간인 20명에 의해 조직(해군본부군악대)됐다. 같은 해 진해해안경비대(진해사령부)에도 민간인 16명이 합류, 해군군악대가 어느 정도 진용을 갖추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 박판길 전 교수와 함께 밴드부 생활을 같이했던 조종렬씨(작고)는 해군군악대와 미8군 등에서 수십 년 동안 음악인생을 이어갔고, 다른 밴드부원들은 다수가 6.25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최전선에서 산화하는 아픔도 겪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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