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31 ] 옛 군산의 대동맥 ‘중앙로’… 살아있는 박물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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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31 ] 옛 군산의 대동맥 ‘중앙로’… 살아있는 박물관 역할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08.04 11:39
  • 기사수정 2022-01-17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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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중앙초’…김판술(작고) 전 의원‧ 강현욱 전 도지사 등 유명인사 배출
지역 최초의 교회‧ 성당… ‘개복교회(1894년 3월 설립)’ ‧ 둔율동성당(1929년 건립)
영광여고 출신 스타… 한국 테니스 여왕 전미라‧ 배우 진희경‧ 이은주(작고)

옛 군산 도심의 대동맥이라면 아무래도 중앙로가 아닐까 싶다.

극장가에서 내려오면 오밀조밀한 골목길이 있고 좌우에는 한 시대의 최고 상권이었을 점포들이 수놓아져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인근에 논밭이 있었다지만 1900년대 초반 즈음에는 주변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근대교육, 근대적인 철도 및 도로망 구축, 상가 번창 등도 이곳에서 비롯됐다.

구한말 향교와 서당만 있었던 군산.

이곳에 교육과 사상, 종교 등 근대문화문물이 물밀듯 들어오면서부터 교육제도에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이 시기가 1900년대 전후다.

물론 전통교육제도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인 교육제도의 변화는 선교사의 서구문물 전래와 대한제국의 근대교육제도 본격 도입 등에 기인한다.

초등교육을 담당하는 곳은 ‘옥구항 공립보통학교’을 비롯한 군산의숙, 금호학교, 사립 진명의숙과 군산공립보통학교 등이 있었다. 지금의 중· 고등교육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지역 최초의 학교는 영명학교와 군산여학교(멜볼딘 여학교)였다.

결과적인 의미에서 지역 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이자 최고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군산중앙초, 군산 첫 교회와 성당도 이곳과 근접해 있다.

그 핵심공간이 개복교회와 둔율동성당.

이 교회와 성당은 많은 후예들을 탄생하게 하는 동력이었고 엄청난 교세 확장 등에도 크게 기여해왔다. 이곳과 인접한 곳에 있는 군산노인종합복지관은 한때는 옥구군청이었지만 2000년부터 노인들의 휴식공간으로 입지를 굳혀오고 있다

이 공간을 군산의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라 칭할 만큼 지역 학교와 종교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해왔음은 더 말해 뭐하겠는가.

극장가에서 막 빠져나와 옛 군산역 쪽으로 내려오면 지역 최초의 교회인 개복교회와 인접해 있는 군산의 여학교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영광학원(영광여고와 영광중학교)이 나온다. 어떤 의미에서 서양선교사와 근대학교, 교회는 흐름상 한 줄기다.

 

첫 여학교 멜볼딘여학교→ 영광학원의 탄생… 예‧체능 대명사

군산영광학원 전경. / 사진=군산영광여고 제공
군산영광학원 전경. / 사진=군산영광여고 제공

 

미국 예수교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 전킨 (한국명 전위렴 1865~ 1908년)은 1903년 영명학교와 군산여학교(후에 멜볼딘여학교로 개칭)를 설립했다.

전킨 선교사가 자신의 사랑채에서 열었던 미션 스쿨이 바로 영명학교(군산제일고의 전신)와 군산여학교다. 이 여학교가 오늘날의 영광학원의 모태.

하지만 군산여학교는 초기에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 학교설립 후 새로 부임한 W.F 불(한국명 부위렴: 1876~ 1941) 선교사의 부인 앨비(1869~ 1957) 여사가 자신의 모교인 미국 메리 볼드윈(여자)대학 등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 대학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모금 운동에 나서 모은 기금으로 교사(校舍)를 신축하게 된 것. 이런 이유로 기존의 이름 대신 멜볼딘여학교라고 불렸다.

멜볼딘여학교는 영명학교와 같은 재단의 기독교 계열 학교로서 처음에는 궁멀(3.1 구암동산)의 영명학교 건물 반대편인 금강 변에 위치했다.

1913년 3월 사립 멜볼딘여학교로 설립인가를 내고 이듬해 3월 제1회 졸업생 5명을 배출했는데 사범과 여자학교의 교육제가 1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학교는 또 군산의 3.5 독립만세운동 당시 영명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주도한 자랑스러운 항일전통을 갖게 된 것이다.

1935년 당시 1개 학급에 교사 4명․ 학생 25명의 규모였는데 신사참배를 거부, 폐교되던 1937년까지 모두 24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런 전통을 간직한 군산영광 여 중‧․고는 군산시 둔배미길 21(중앙로2가 135)에 위치해 있다.

해방 후 19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군산노회가 군산영명중‧ 고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1965년 4월 21일 군산영명중‧ 고에서 분리 독립한 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이렇게 설립된 학교법인 영광학원은 1965년 6월1일 설립자 고(故) 손재덕 이사장의 투자로 군산멜볼딘여자중‧고로 개교했다. 선교사들과 깊은 역사적 배경 때문에 학교설립 이후 상당기간 동안 교명을 유지해왔다.

그러다 1980년에 들어서 교명을 군산영광여중, 군산영광여고로 바꿨고 중학교의 경우 2010년 남녀공학으로 전환돼 군산영광중으로 다시 변경,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학교설립 이후 지금까지 전체 졸업생수는 약 2만명.

학교설립 이후 테니스와 합창단 창단 등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특히 1972년 창단된 테니스부는 제58회 전국체전 단체전 우승(77년)을 비롯한 20년간 132회의 우승을 기록할 정도로 명실상부한 고교 최강의 테니스부로 성장했다.

영광여고 테니스부 전성기 때인 1994년 당시 전미라 선수가 윔블던 주니어 여자단식 준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전미라는 주니어 대표선수시절 라이벌 마르티나 힝기스와 함께 캐나다 오픈과 US오픈에서 복식조로 짝을 이뤄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1997년 선수층의 고갈과 재정문제 등으로 인해 팀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또 비운의 스타였던 영화배우 이은주도 이 학교 출신 대표적인 유명인사 중 한 사람이었다. 가수 박윤경과 1995년 대종상 영화제 신인여우상을 받은 배우 진희경 등도 이곳 출신이다.

이 학교의 또다른 자랑인 영광선교합창단은 1967년 창단 이래 44회의 정기연주회와 전국 순회 연주회, 군부대 위문공연, 해외순회연주 등을 통해 군산을 세계에 알리는 민간문화사절의 역할과 함께 문화예술분야를 한차원 더 끌어올렸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축하예배 초청연주와 2002 한일 월드컵 초청연주, 해비타트를 만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방문 환영공연 등 유명 공연과 전국 합창경연대회 대상 및 각종 합창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학교 합창단 출신 음악가로는 소프라노 최인하, 신진희, 장은희씨 등이 있다.

최근 10여 년 동안 학생과 교사로 이뤄진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협연은 군산영광여고만의 자랑이다.

한편 독립유공자(건국훈장 애족장) 황현숙(1902~ 64) 선생은 1929년 이 여학교에서 교원으로 재직하던 중 광주지역학생들의 동맹휴학운동으로 배후로 지목돼 구류되자 옥중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광복 후엔 조선여자국민당 창당, 백범 김구선생 등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남조선대학국민대표민주위원으로도 활동했고 1948년 11월 경무관으로 특채돼 내무부 치안국 여자경찰과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 최초의 여성경무관이기도 하다.

 

군산 첫 교회 탄생… 개복교회 설립

개복교회/사진=투데이 군산 DB
개복교회/사진=투데이 군산 DB

 

1894년 3월 30일에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에서 파송한 7명의 선교사 중 W.D.레이놀즈(한국명 이눌서:1867~ 1951) 선교사와 A. 드루(한국명 유대모: 1859~ 1924) 의료 선교사가 인천에서 배로 군산에 상륙, 순회 전도를 시작했다.

이것이 군산의 첫 번째 교회 ‘개복교회’다. 당시에는 군산교회라 칭했다.

W.M.전킨(한국명 전위렴) ‧드루 선교사, 한국인 장인택 등은 1895년 3월 군산에 상륙하여 선교 활동을 하다가 동년 8월에는 군산 현 수덕산에 집 두 채를 마련하고 복음과 의술로써 적극적으로 선교 활동을 전개했다.

1896년 7월 송영도와 김봉래가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니 이것이 호남의 최초의 세례식이었다.

군산 교인들은 최홍서 조사를 중심으로 홍종익 등과 한국 성도들이 구복동(오늘날 개복동) 77번지에 예배당을 건축, 1906년에 현 개복동 13-1번지에 이전했다. 이때부터 군산교회는 군산 개복동 교회라고 불렀다.

이 교회는 지역 최고 역사만큼이나 교회사적으로나 항일운동사에서 엄청난 역할을 했다.

1911년에 3대 목사로 부임한 김필수 목사는 1915년 제4대 총회장[한국인 최초 총회장]으로 피선되었다.

이런 역사성 때문에 항일운동에도 앞장서왔다.

한강 이남 최초의 3·5 만세운동에 앞장선 이들도 이 교회 출신들이었다. 김성은, 정자손, 홍종익, 전종식, 유희순 등이 그들이다.

1915년 김필수 3대 목사( 한국인 최초 총회장)에 이어 제5대 홍종필 목사(1930년)도 총회장을 역임했을 정도다.

이 교회에서 분립 개척한 교회는 수두룩하다. 개복교회에서 분립 개척한 교회들은 모교회 못지 않게 지역에서 엄청난 성장을 했다.

 

군산 최초의 성당 ‘둔율동성당’

둔율동성당. / 사진= 투데이군산
둔율동성당. / 사진= 투데이군산

 

둔율동성당은 일제강점기였던 1915년에 군산 영동에 설립된 공소(公所)로 시작, 1929년에 익산 나바위성당에서 분리되어 군산 본당으로 설립된 군산 최초의 근대적 성당이다.

1931년에 본당으로 승격됐다.

1929년에 천주교 대구교구장을 역임하고 있던 플로리안 드망즈 주교로부터 성당 보좌 신부로 임명된 김영구 신부에 의해 성당 건립이 본격화됐다.

1938년에 목조 성당 건물이 설립되었으나 광복 이후에 일본군이 버리고 간 폭발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미군의 실수로 저지른 화재로 인해 소실됐으나 1955년에 신축(현 성당 건물)했다.

신축 당시에는 붉은 벽돌을 마감재로 사용했으나 나중에 벽돌 외부에 인조석을 덧대가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것. 1961년 11월 행정 구역명에 따라 둔율동 본당으로 개칭됐다.

이곳은 인근 장항제련소에서 나온 슬러지 벽돌을 건축 재료로 사용했다는 점과 당시 성당 신축의 역사(役事)를 하나하나 수기(手記)로 작성한 성전신축기(국가등록문화재 제677-2호 군산 둔율동성당 성전신축기 및 건축 허가 신청서)라는 기록을 남겼다는 의미도 크다.

책으로 제작된 성전신축기에는 건축 계획부터 소요 예산 및 각종 인허가 신청서에 이르기까지 공사 전반에 걸친 다양한 내용이 정리돼 있어 한국전쟁 직후 건축 활동에 관한 시대상과 함께 행정 사항까지 기록되어 있어 그 가치가 적지않다.

예로부터 건축 역사(役事)를 기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국가 차원의 궁궐 건축 기록인 ‘영건의궤’는 물론 일반 백성 살림집의 ‘상량’ 기록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역사(役事)의 기록이 훗날 역사(歷史)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역사적인 성당이라 할 수 있는 서울 명동성당, 약현성당, 계산성당, 전주 전동성당 등에서 그랬듯이 일찍이 이 땅에 세워진 서양식 성당 건축물들은 최초 계획 단계부터 준공 공사에 이르기까지 외국인 신부들이 전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알빈 슈미트(Alwin Schmidt: 1904~1978) 신부는 전문적인 성당 건축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둔율동 본당은 군산 시내의 9개 본당의 모태 본당으로서 자리를 지키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한편 6·25 전쟁 중이었던 1951년 6월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분원이 설치되어 수녀들이 부임했다. 수녀들은 본당 사목에 참여하면서 전쟁고아들을 수용하여 돌보았다.

전쟁이 끝난 후 1953년 10월 고아원 건물을 신축하여 본격적인 사회사업으로 전환했다. 본당은 1952년 헌 창고를 개조하여 성심 유치원을 개원, 지역유아 교육을 선도했다.

 

지역최초의 군산중앙초…

군산의숙‧ 금호학교 등 흡수 명실상부한 역사 자랑

중앙초 전경/사진=투데이 군산 DB
중앙초 전경/사진=투데이 군산 DB

 

군산개항 이전 전국적으로 서당과 향교가 교육기관이었으나 이 시기 들어 지역에도 근대식 초등학교가 설립됐다.

지역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기관은 1899년 옥구향교 양사재에 설립됐던 ‘옥구항 공립보통학교’였다.

이후 군산에도 사립학교 설립 운동 붐이 일어나 다수의 학교들이 생겨났다.

군산중앙초등학교 연원은 이렇다.

일제의 침탈로 옥구항 공립보통학교가 폐쇄됐고 군산항민들이 운영하던 개항장 인근의 군산의숙까지 흡수한 후 공립군산보통학교란 이름으로 1907년 5월(4월1일은 인가) 개교됐는데 이 학교가 군산중앙초등학교다. 일제 통감부는 식민지 교육의 일환으로 그들의 교육제도를 강제이식한 것이다.

또한, 근대기 지역 대표적 중등교육기관인 금호학교도 1910년 국권 상실과 함께 강제 폐쇄됐고 학교재산은 군산보통학교로 흡수됐다. 금호학교와 관련된 내용은 아무래도 다음편에서 정리하고자 한다.

군산중앙초는 1911년 4월 1일 군산 공립 보통학교로 개칭했다.

1921년 4월 수업 연한이 4년제에서 6년제로 연장됐다.

1929년 군산 제2공립 보통학교설립 운동이 결실을 맺어 개교하게 되자 군산제1공립 보통학교로 개칭하게 된다. 1934년 군산 제2 공립 보통 학교가 운영난으로 폐교가 결정되자 합병, 다시 군산공립보통학교가 됐다.

1938년 군산소화공립심상소학교로, 1941년엔 군산소화공립소학교로 재개칭되는 과정을 거쳤다.

해방 후인 1946년 군산중앙공립국민학교(중앙국민학교)로 개편됐고 이후 1996년 3월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개명, 군산중앙초등학교로 바뀌었다.

또 병설유치원은 1984년 3월 설립인가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11학급(특수학급 1학급)으로 운영되고 있고 졸업생은 지난해 말 약 3만2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군산초등학교는 다소 출발이 다르지만 군산 최초 초등학교라 할 수 있는 옥구항 공립보통학교를 기반으로 시작했다는 점에서 자주적인 측면에서 개교 역사를 좀 더 심도있게 다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선례를 들면 옥구초등학교가 조선인들에 의한 설립됐던 ‘사립 진명의숙(1906년 개교)’을 역사(학교 연혁)에 넣어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은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학교는 오랜 초등학교답게 정치와 스포츠 등에서 수많은 전국적인 인물들을 배출했다.

이 학교 출신으로는 작고한 김판술(10회) 전 보건사회부장관(장면 내각 당시)과 강현욱 전지사(43회), 신상규(54회) 전 광주고검장 등이 있다.

또한, 1963년 야구부가 창당됐는데 역전의 명수 신화와 해태 타이거즈 왕조를 만든 김성한(63회)과 정대현, 이대수 등 모두 30여명이 한때 프로와 대학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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