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찬 교수 칼럼] 보편적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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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찬 교수 칼럼] 보편적 기본소득
  • 투데이 군산
  • 승인 2021.08.03 18:43
  • 기사수정 2021-08-04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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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찬
채수찬

보편적 기본소득은 한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일정 소득을 분배하는 보조금이다. 여기서 보편적이란 말은 개개인이 처한 경제적 상황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동일한 액수를 적용한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똑 같은 세금을 부과하는 보편적 세금인 인두세(head tax)의 역 개념, 곧 역인두세(negative head tax)라 할 수 있다.

개인에게 돌아가는 실제 혜택은 보조금에서 세금을 뺀 액수다. 보조금의 액수가 세금의 액수와 같으면 그 개인이 받는 실제 혜택은 제로가 되고, 보조금보다 세금이 더 많으면 실제 혜택은 마이너스가 된다.

보편적 기본소득이 의미가 있으려면 세금이 개인의 소득과 환경에 따라 달라야 한다. 다시 말하여 인두세가 없어야 한다. 보편적 세금인 인두세가 있으면 인두세만큼 보편적 기본소득이 상 쇄되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세금은 인두세로 매기고, 보조금을 소득과 환경에 따라 달리 지급해도 보편적 기본소득과 마찬가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현실 사회에서는 보조금도 세금도 개인의 소득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일시적 예외는 있다. 작년에 코로나 감염병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를 맞아 한국정부와 미국 정부는 모든 가구에 일률적으로 일정액의 보조금을 긴급 지출하였다.

사람들은 소득이 높아지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가시간을 많이 가지고자 한다. 기본소득이 생활에 충분한 소득이라면 일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최소생계비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최소생계비 보장도 일할 인센티브를 줄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장점이 단점보다 크다.

문제는 재원이다. 세금과 보조금 체계를 단순화해서 여기에 집중하면 가능하겠지만 현재의 체계는 나름대로 필요가 있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이를 테면 나이든 사람들을 위한 연금, 의료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공공 건강보험 등을 모두 없애고,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단일화하자고 하면 찬성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현재 많은 국가와 지방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본 틀은 일정한 최저소득 제공과 소득에 따른 차등 세율이다. 일정 소득 이하인 사람들은 세금을 내지 않고 오히려 보조금을 받는다. 그 보조 금 액수는 소득에 따라 다르다.

내년 대통령 선거의 예비후보 중 하나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본소득을 제안하였다. 제안 된 기본소득 액수는 최저생계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이어서 정책 방향을 정하고 한 걸음 내딛는 시험적 정책 정도 밖에 안된다.

그래도 나름대로 정책논쟁을 유발한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니 재원 대책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추가적인 토지세는 급격한 종부세와 재산세 인상으로 막대한 조세저항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탄소세는 온실가스 배출억제 등 지구환경개선에 쓰여야 하므로 기본소득에 들어갈 여지가 없다.

재정낭비를 줄이고 이익집단을 위한 조세감면을 줄여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말은 대책이 없다는 말이다. 낭비를 줄이는 것이 모두의 희망이지만 낭비는 없어지지 않는다. 이익집단에 대한 조세감면은 각론에 들어가면 이익집단의 힘이 세서 항상 연장되기 마련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일 때 TV 토론에서 똑같은 얘기를 하는 걸 보고 복지정책 공약이 허구인 걸 알았다. 알고도 저런 말을 하는 걸까, 몰라서 그러는 걸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제안이 실행가능한 재원대책이 없어 정책논쟁 아닌 정치논쟁으로 격하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허경영 후보의 국민배당금, 앤드루 양 후보의 자유배당금 처럼 한 때의 선거 구호로 기억될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개념 자체는 살아 있다. 지식산업의 발전으로 고정비용이 늘어나고 가변비용이 줄어들어, 자본, 노동 등 생산요소들 간의 소득 배분이 경쟁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 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개별적인 또는 사회적인 협상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효율적이고 공정한 분배를 지향하는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한다.

<채 수 찬 • 경제학자 •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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