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갈만한 곳이 월명동 뿐이더냐?"…또 다른 보물창고 '開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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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갈만한 곳이 월명동 뿐이더냐?"…또 다른 보물창고 '開井'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04.2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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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산초 유적- 이영춘 가옥- 옛 개정역 부지 등 연계 관광도 고민해야
100여 년 된 ‘근대행정 공간’ 옛 개정면사무소 문화재 지정 검토를
간호대‧ 제일고 학생‧ 개정병원 근무자 등의 통근공간 의미 되살여야
이영춘 가옥/사진=군산시
이영춘 가옥/사진=군산시

 

각종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로 떠오르고 있는 개정지역에 대한 관광자원 활용 여론이 적지 않다.

이곳은 지금 개정면과 개정동으로 나뉘어 있지만 고유문화유산과 근대문화재 등 각종 문화유산이 즐비, 숨겨진 관광지로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이곳의 주요 문화유산은 이영춘 가옥을 비롯한 발산초 유물군(群), 최호 장군 유적, 옛 개정면사무소 건물 등이다.

시는 이에 따라 우리문화유산과 근대를 연결하는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왔고 개정지역을 새로운 관광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숙고를 거듭해오고 있다.

개정권 대표 문화유산 중 하나는 개정면소재 발산초등학교 내 유물군(群).

이곳의 유물군은 본래 완주군 고산면의 봉림사지에 있었던 여러 석조문화재들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 시마타니에 의해 강제 반출돼 석등(보물 제234호)과 5층석탑(보물 제176호)이 발산초등학교로 옮겨졌다. 이후 유적의 명칭도 ‘봉림사지’가 아닌 ‘발산리 5층석탑’, ‘발산리 석등’이란 이름으로 지정됐다.

또 이곳에 남아 있는 시마타니 금고도 근대유물 중 하나다.

이곳 못지않게 외지 관광객들의 가장 사랑받고 있는 것은 고(故) 이영춘 박사 스토리와 가옥이다.

이영춘(1903~ 1980) 박사는 한국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이자 한국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인물. 이 박사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개정지역은 그야말로 전북 대표적인 대학 및 보건 중심지였다.

평남 용강군이 고향인 이 박사는 1935년 옥구군 개정면(현 개정동) 구마모토 농장 부속 자혜 진료소 소장으로 초빙된 이후 일생을 우리나라 농촌 보건 사업에 헌신했다.

해방 후 개정병원, 개정 농촌 위생 연구소, 개정 간호 전문 대학(현 군산간호대학), 화호여자 중·고등학교, 개정 뇌병원, 시그레이브 기념 병원 등 수많은 학교와 의료 시설을 설립하고 의료 활동에 힘을 쏟아왔다.

해방 후 그가 오래 살았던 일본인 농장주의 집은 ‘이영춘 가옥’으로 명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전북도 유형문화재 200호로 지정돼 있다.

이 가옥은 일제강점기 전국 최대 농장주인 구마모토가 건축했으며 한식과 양식, 일식의 건축 양식이 복합된 근대 주거양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이용됐다. 특히 대하드라마 ‘모래시계’ 등의 주된 촬영공간으로 이용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구마모토 농장 부속 자혜진료소 및 농장 관계자들과 주변 면민 등이 이용할 수 있게 군산선 기존 간이역들과 달리 가장 늦게 만들어진 것이 ‘개정역’이었다.

물론 이곳에 오랫동안 근무하고 살았던 이 박사는 자전거를 타고 멀리까지 왕진을 했거나 기차를 이용하며 출타했을 것은 분명하다.

1924년 6월 개설됐다가 2008년 1월1일 여객영업 중단과 함께 철거됐다. 역이 존치된 시간동안 옛 개정병원 근무자들은 물론 군산간호대학생과 군산제일고생들은 통학(근)열차를 타고 이용하던 추억의 공간이었다.

물론 이 공간은 최근 과거를 회상할 수 없을 정도로 버려져 있어 아쉬움을 더해주고 있다.

전라북도 기념물인 최호 장군 유지는 최호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무장으로서 여러 관직을 거치고 정유재란 때 전사한 장군과 관련된 유품과 군산시 향토 문화유산인 삼인보검 등이 보관되어 있다.
역사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눈길이 가는 곳이 옛 개정면사무소 건물이다.

옛 개정면사무소의 개청 시기는 물론 청사의 기록물이 미흡, 일제강점기 때의 건물 가능성이 높은데도 기본 이력이 없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옛 개정면사무소의 건축물 대장에 따르면 이 건물은 현재 민간소유이지만 오랫동안 공공건축물로 이용되어왔었다. 공식적으로 본채는 1988년에 건축됐고 부속건물은 1977년인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지역촌로와 50년 전 이곳에서 근무했던 인사들은 “이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한 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것만은 분명하다고 못 박고 있다.

본래 개정면은 임피읍의 서쪽이어서 서사면으로 불렸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서삼면· 북일면· 남삼면 일부 등을 통폐합해 만들어졌다.

이 건물은 1973년 7월1일 개정면과 개정동으로 분리될 때까지 통합 청사로 이용됐고 1986년 10월 현재의 개정면사무소로 이전한 뒤 민간에 매각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근대 또는 일제강점기의 면사무소의 원형’을 지닌 만큼 지방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향이자 이곳에서 10년을 근무했던 이종예 전 군산시국장은 “이영춘 박사와 관련된 역사적인 공간인데다 개정면민 및 군산간호대 학생 등의 통학 루트였다는 점에서 옛 개정역 부지에 이정표라도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옛 개정면사무소 건물의 공식 건축년도 이전에 이곳에서 근무했을 뿐 아니라 어린 시절에도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그 역사는 훨씬 오래된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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