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희의 예술문화+] 미국 대공황이후 공공미술의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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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의 예술문화+] 미국 대공황이후 공공미술의 부흥
  • 송진희 서해환경 이사
  • 승인 2021.04.12 17:36
  • 기사수정 2021-05-11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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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송진희
사진=송진희

 

최근 필자가 살고 있는 군산에서 15명의 지역 화가들이 군산시라는 지역에 녹아 있는 역사성을 공공미술 조형물에 표현했다.

군산이라는 일제 쌀 수탈의 애환과 특색을 잘 살려 사람들의 마음 속에 햇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쌀가게, 헌책방 등의 이미지를 형상화시켜 ‘해맞이길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약 100여년전, 미국에서도 1913년 ‘아모리쇼’를 통해 유럽 아방가르드 미술이 미국에 소개되면서 미국 미술계가 활기를 띠었다.

특히 뉴욕에 1929년 근대미술관(MoMA)과 1930년 휘트니뮤지엄 등의 모더니즘 미술관이 설립된다.

홍익대 미술사학과 전영백 교수의 저서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에서 그 당시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MoMA에서는 1936년을 기점으로 후기인상주의, 큐비즘, 바우하우스, 다다, 초현실주의 등 유럽의 모더니즘을 탐색하는 주요 전시가 개최되었다"

|구겐하임미술관의 전신인 ‘비대상 회화미술관’에는 1930년대 후반부터 칸딘스키, 몬드리안, 들로네, 피카소 등의 전시를 대거 개최하였다”

 

이 시기는 미국이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시기였다.

실업률은 3%대에서 25%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미국의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인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New Deal) 정책을 추진하면서 미술가들이 뉴딜의 주요한 수혜자가 되었다고 한다.

서울대 미술사학과 신정훈 교수는 ACP 특강에서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으로 연방정부는 미국공공미술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당시 공공사업진흥국, 농업안정청 등의 기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국의 미술가들을 구제했고, 이는 대규모 미술생산으로 이어졌다.

루즈벨트 대통령 재임기간인 1933년부터 1945년까지 3,300여개의 벽화, 1만9,000개의 조각, 10만점의 이젤화, 25만점의 판화, 50만점의 사진, 200만점의 포스터가 생산되었다.

이러한 전례 없는 지원은 기성 미술가들이 그들의 창조적 스킬을 유지할 수 있게 하고 떠오르는 미술가들에게는 훈련의 장을 제공했다고 한다.

유럽미술에 대한 ‘미국미술의 승리’로 대표되는 1940년대의 추상표현주의 미술가들의 등장과 이후 미국 미술의 새로운 르네상스도 미국 공공미술의 부흥의 공헌자다.

이런 점에서 공공미술은 여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예술가와 시민들이 함께 공공미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역의 이미지를 공공미술에 접목시키는 노력들이 더 요구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송진희 이사는?

ㆍ군산동고와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졸

ㆍ현 ㈜서해환경 대외협력이사 재직

ㆍ현 기업경제신문 편집인(국회 출입기자)

ㆍ커피 감별사(Genie's 더치&드립백 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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