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열두번째 이야기: 상권 영화동시대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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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열두번째 이야기: 상권 영화동시대 활짝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03.22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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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중심지이자 맛의 거리… 오랜 역사의 영화통닭, 안젤라분식 등 즐비
목욕탕이 변신한 ‘이당미술관’… 강암 선생의 막내딸(송하진 도지사의 누나) 운영
근‧ 현대기 상권 중심지 영화동거리… 당시 최고 미국산 소비재 판매점 즐비
한때 최고의 상권을 자랑했던 영화동 거리가 코로나 19 등으로 한적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사진= 투데이군산
한때 최고의 상권을 자랑했던 영화동 거리가 코로나 19 등으로 한적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사진= 투데이군산

 

중앙로에서 구영4길인 영화동소재 미다원과 동남슈퍼를 거쳐 삿갓다방, 영화시장, 구화당한약방 등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구영4길에서 눈길을 끌고 있는 곳은 영화시장과 그 주변 유명 맛집.

한때 이곳은 맛의 거리요, 멋의 거리였다. 여고생 등 청소년과 분식 애호가들로 왁자지껄했던 거리였단다. 주변 30여 곳이 뭉친 영화시장은 80년대까지 만도 상당한 상권을 유지할 정도로 대단했지만 행정타운 이전과 미군 감축 등이 이어지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중앙로에 있는 기업은행과 인접한 건너편에 있는 미다원. 전통문화체험장인 이곳은 1935년 1월 사용승인인 난 일본 건축양식이다. 1961년 12월 국가보존등기가 됐던 점을 고려해볼 때 이 건물은 적산가옥인 일본식 건축물로 추정되지만 여러 사람을 거쳐 약 10년 전, 송미숙 시의원이 인수해 전통문화체험장으로 탈바꿈했다.

아쉬운 것은 아직도 영화시장의 유래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란다.

이곳은 각종 탕이나 일반 음식 등 정통 맛의 거리보다는 중국요리, 분식과 야식에 관한한 최고였던 골목 중 하나다. 외식업계에 널리 알려진 곳들이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곳이 영화원, 국제반점, 용문각 등 중화요리집과 군산의 최고 통닭 중 하나인 영화통닭(1974년),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분식집인 안젤라분식, 곰집 등이다.

특히 군산을 대표하는 중국집이 이곳 주변에는 여럿 존재한다. 한때 맛으로 유명했었지만 수년 전, 군산화교역사관으로 변신한 용문각과 영화원, 국제반점 등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폐업한 용문각이 근대화교역사관으로 바뀌었다. / 군산= 투데이군산
폐업한 용문각이 근대화교역사관으로 바뀌었다. / 군산= 투데이군산

 

인상적인 곳은 용문각.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용문각은 2017년 11월20일 제1호 군산근대시민전시장으로 개관됐다. 이곳은 여건방씨(전 군산화교학교장)가 1969년부터 2005년까지 이 중화요리집을 운영했다. 용문각 내부는 중국집 느낌이 나는 빨간색의 강렬함에다 주방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여 전 교장은 보통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복(福)’자에 대한 의미를 재미있게 설명해준단다. ‘복(福)’이라는 한자는 중국어로 ‘도착했다’와 ‘뒤집어졌다’의 발음이 같아서 ‘복(福)’자를 뒤집으면 복이 돌아온다고.

영화시장의 인근에 있는 중국음식점인 영화원의 주메뉴는 물짜장과 짬뽕. 채소와 해물을 넣고 춘장 대신 녹말과 고추기름을 사용한 물짜장은 칼칼하고 얼큰한 맛을 자랑한다. 짬뽕 역시 해물과 고기를 넣어 만든 얼큰한 음식으로 주변 식도락가들의 입을 여전히 자극하고 있다.

타짜 등 필름 느와르 장르에 자주 등장한 국제반점. / 사진= 투데이군산
타짜 등 필름 느와르 장르에 자주 등장한 국제반점. / 사진= 투데이군산

 

국제반점의 물짜장 등도 단골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국제반점은 영화 ‘타짜’와 같은 필름느와르 쟝르에서 자주 등장한 곳이다.

군산 최고의 영화통닭은 동네통닭 혹은 시장통닭을 만든 통닭집으로 수십 년 동안 검은 비닐봉지 대신 종이봉투로 포장돼 통닭 애호가들의 야식을 책임졌단다. 본래 주인 O(작고)씨는 친척에 넘겼다가 다시 바뀐 뒤 지금의 주인장이 그 뒤를 잇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군산에서 현존 가장 오래된 통닭집인 것만은 분명하다. 장터 왕족발(1989년 3월 영업) 등은 독특한 맛을 자랑하며 지역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시장에는 건어물 등의 가게 10여 곳이 옹기종기 모여 영업하고 있으나 과거의 영광은 사라진 준 상설시장이다. 그중 단연 기억을 살리는 대표적인 공간이 안젤라 분식.

영화시장(타운)보다 더 유명한 안젤라 분식이 세대융합의 파워음식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 사진= 투데이군산
영화시장(타운)보다 더 유명한 안젤라 분식이 세대융합의 파워음식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 사진= 투데이군산

 

이 추억을 살려 시로 쓴 이도 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영화동 시장이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이 있는 날이면, 짧은 쉬는 시간에도/ 다녀올 수 있는 거리였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달려가 우리가 주로 찾는 메뉴는/ 빨간 고추장으로 버무린 매콤매콤한 떡볶이었다.

거기다가 구수한 어묵 국물까지 곁들이면/ 이 세상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우리가 자주 찾은 가게는 안젤라분식이었다.

안젤라가 세례명인 천주교 신자인 아주머니는/ 후덕하게 생긴 몸매에 단골들의 이름까지도

잘 기억을 해주어 우리를 감동케 해 주었다.

중략/ 중략

추억의 자리를 지켜 주신 아주머니 덕분에 영화동에 가면, 분식점 탁자위에 앉아 있는 단발머리에 새라복을 입은/ 소녀 시절의 내 모습이 보인다.

중략/ 중략

나는 서슴없이 영화동 시장엘 가서/ 떡볶이를 함께 먹고 싶다.

- 노서운 수필집  ‘영화동 떡볶이’중에서-

 

안젤라 분식은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분식집으로 여중‧고생들의 입맛을 녹인 대표 분식집이다. 이곳의 여주인은 수십 년간 장사를 해와 30~ 50대 여성층까지 단골로 삼고 있는 파워음식점이다. 학생시절 이곳을 다녀간 C씨는 당시의 맛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라면서 자녀와도 다시 찾았을 정도로 세대 융합적인 추억의 공간이다.

이 아주머니가 이제 할머니가 됐지만 그분의 자녀 중에는 신부가 됐다는 것이 한때 자랑이었단다. 요즘은 외부에도 알려져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로 잘 알려졌을 정도란다.

이와 함께 영화시장 주변에는 영화방앗간 등 다양한 가게와 음식점 등이 여전히 즐비하다.

또 구영5길은 김내과의원, 하나로약국, 홍콩양장점, 군산기독외국어학원, 군산시사회복지장학회, 장외과, 구화당 한약방, 세창당한약방 등이 오늘날까지 그곳에서 옛 영화를 지키고 있다.

지금도 장외과와 뽀빠이 감자탕과 또다른 뽀빠이 음식점 등의 주변 벽에는  ‘까치만화’ 상호가 옛 담장에 수십년간 붙어 있어 70‧80년대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이당 미술관과 이당 송현숙 서예가… 고 강암 송성용 선생의 막내딸

옛 영화영화목욕탕이 변신한 이당미술관이 군산의 젊은 작가들의 창작열을 북돋고 있다. / 사진= 투데이군산​
옛 영화영화목욕탕이 변신한 이당미술관이 군산의 젊은 작가들의 창작열을 북돋고 있다. / 사진= 투데이군산​

 

이곳에서 기억해야 할 곳 중 하나는 영화빌딩. 영화빌딩은 본래 개항 이후 줄곧 여관과 목욕탕이 있었던 자리로 1969년 오늘날의 현대식 4층 빌딩으로 모습을 갖췄단다.

1층에는 남녀 목욕탕이 있었고, 2층부터 4층까지는 20여 개의 객실이 있었단다. 한때 최신식 건물이어서 외국 선원들까지 손님으로 맞았던 공간이었다. 이곳에 살았던 주민들에게는 ‘영화목욕탕’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2008년 이후 상당 기간 빈 건물로 남아 있다가 2015년 현대식 미술관 및 예술가를 위한 작업공간으로 변신했다. 이곳은 정태균 교수(선문대)가 사들여 어머니 이당 송현숙 서예가의 호를 따서 사단법인 이당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최근에는 코로나 19로 잠정적으로 문을 닫아 애호가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있다.

이곳과 관련이 있는 이가 전북을 대표하는 이당 송현숙 서예가(73)다.

이당은 서예의 대가 강암 송성용(작고) 선생의 막내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유명한 만큼 더 겸손하고 오롯하게 자신 만의 길을 닦으며 걷고 있다.

강암 선생의 제자들로 결성된 연묵회 활동을 계기로 1969년부터 본격적인 서예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당. 그는 1971년 국전에 입상하면서 해마다 각종 전시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서울, 익산, 전주, 군산 등 국내에서 개인전도 열었다. 해외초대전(10여회)과 단체전 등만도 모두 300여회에 참여했다.

1970년대 강암 선생의 추천으로 찾아온 여학생들을 신혼집에서 가르친 것이 시초가 돼 익산 이당서실에서는 물론 대학 강단, 청소년회관, 여성회관 등에서 40여 년간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이 밖에도 구영6~7길 주변에는 수십 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정초밥(초밥)과 과거의 옛 경산옥( 각종 생선) 등은 맛이 대단해 오랜 단골과 한번 다녀간 미식가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할 정도다. 코로나 19 속에서도 지인들과 이곳을 여러 차례 다녀온 바 있다.

한편 거의 60년 역사의 영화동의 군산중화교회 예배당에 대한 이야기도 필요할 것 같다.

해방 후 군산의 화교들 중 한국인 신자들의 권유로 기독교로 개종한 이가 차오 궤이즈 집사였는데 군산의 중앙교회에 출석했단다. 1954년 입국한 헬렌 매클레이 선교사와 차오 집사는 1963년 여한중화기독교 소속 군산중화교회를 설립하는데 공헌했다.

이곳이 영화동소재 9의1인 지금(구영6길)의 군산중화교회다. 이 교회가 들어섬에 따라 군산화교들의 종교적‧ 문화적 중심로 거듭나게 된다. 교회가 문을 열었을 때 첫 부임한 이는 대만에서 청빙된 리원빈 목사였다.

그후 화교가 줄어듦에 따라 내리막길을 걸었는데 1992년 한중 수교로 유학생과 선원, 노동자 등의 유입으로 활로를 찾고 있단다.

 

조선과 근‧현대 연결한 최고의 영화동 거리

오늘날 군산의 원형은 조선시대 군산진과 군산창을 중심으로 한 중앙로, 영화동, 월명동으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원도심이다. 조선과 개항 이후 근대, 해방 이후 등으로 군산의 특징을 지울 수 있다.

특히 영화동은 조선시대에는 구영리와 강변리 라는 이름의 촌락들이 있었던 곳이다. 구영리는 오늘날 구영1~ 7길의 말이 나온 본류다.

당시 군산창과 금강 입구를 지키던 조선의 수군 주둔지인 군산진과 접하고 있어 이곳의 사령 및 군졸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침략과 함께 더욱 번성한 공간이 된 것이어서 우리 근대기의 아픔과 현대를 사는 이에게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보여주는 ‘하나의 테’를 이루고 있다면 지나치게 낭만적인 표현일까.

군산개항과 함께 군산의 원형은 크게 변화할 뿐 아니라 새로운 일본의 식민지 교두보로 전락한다.

인천, 군산, 마산 등 서남해안의 항구를 개항하면서 일제는 호남의 평야의 최대 해창이 있었던 군산에 마수를 뻗친다.

금강의 입구에 있을 뿐 아니라 내륙교통의 요지인 당시 이곳은 조선시대 조운창고와 수군기지가 있는 곳이어서 일제의 침략야욕의 1번지가 된다.

개항된 조계지역 총면적은 57만2000㎡(17만3000여평) 중 중앙에 위치한 대부분의 지역이 영화동이었다. 즉 구영리와 강변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대거 조계지 밖으로 강제 이주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일인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영화동거리에는 일본식 2층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선 식민도시였는데 이들 중 일부가 오늘에 이르고 있고 대부분은 사라졌다.

현재의 김이빈후과에서 과거의 코렉스마트에 이르는 곳이 전주통으로 당시 최고의 상업 및 행정 중심지였다.

해방 직후 군산에 진주한 미군과 미군 군정청 관리들이 군산초등학교를 숙소로 이용됐고 일부는 미군들을 상대로 한 유흥주점 등이 무수히 들어섰다. 또 영어와 외래어로 된 간판들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당시 생필품이 부족한 군산에는 많은 양복점과 미군 PX에서 나온 각종 물품 등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 이곳은 도내 최고급의 생필품 판매가 이뤄지는 곳이었고, 여전히 영어와 당시 외래어를 쓴 가게들이 남아 있을 정도다.

영화동은 한국전쟁을 거쳐 60년대 들어서 행정중심지로 우뚝 섰고 오랫동안 영화를 누렸지만 유흥업소 집단이주에 이어 시청과 법조건물 등 행정타운이 조촌동으로 이전하면서 쇠락을 거듭해왔다. 이 유흥업소 집단촌이 오래 전에 이전한 미성동 국제마을(아메리카 타운)의 원조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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