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11] 옛 제3청사와 ‘구영1~3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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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11] 옛 제3청사와 ‘구영1~3길’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03.16 07:55
  • 기사수정 2022-01-17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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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식당, 영화식당, 진가네, 한주옥 등 유명 맛집 즐비… 식도락가들 ‘이목집중’
옛 시 3청사, 광주항쟁 기린 영화 ‘화려한 휴가’ 속 등장한 세트 영화관 아로새겨져
홀로그램 활용한 근대역사문화체험관으로 변신… 道등록문화재 제600호 지정

구영1길부터 구영 3길까지 골목길들은 그동안 근대의 모습으로 치장됐으나 오늘날 군산의 원형과도 같은 권역이다.

이 공간 주변을 전편에서 다뤘으나 일부 내용이 빠진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스케치 형식으로 덧붙였다.

고지도(수영지, 전라우도군산진지도)/출처=군산근대역사박물관
고지도(수영지, 전라우도군산진지도)/출처=군산근대역사박물관

현재의 영화동에 있었던 군산진(수군기지)과 군산창(조운)이 조선시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이었다.

군산진은 옥구현 북면에 자리했고 1872년 당시 북면지역은 가구수 741호에 2834명이 거주하는 옥구현 8개면 중 가장 큰 면이었다.

군산진은 본래 왜구를 막기 위해 선유도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고려 말 선유도를 우회하여 금강에 침입해오자 조선 세종 초 영화동 수덕산 기슭에 군산진성을 옮겨오면서 오늘날의 군산이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조선시대 군산진의 정확한 위치는 장미동소재 현 한전 군산지점 인근.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군산은 옥구현 북쪽의 진포에 자리하고 있는데 전함이 중함 4척, 별함 4척, 수군 461명, 초공(조운선의 선장으로 추정) 4명 등이 있다.

군산진의 관리는 종3품인 수군만호다’라 적고 있다. 후에는 직제가 다소 바뀌었다.

1872년 전라우도 군산진 지도를 보면 ‘군산진의 산기슭에는 아청과 아내, 책당, 군기고 등이 모여 있고 조금 남쪽으로 이청, 조복청, 장청 등의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구영리와 강변리라는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지도(수영지, 전라우도 군산진지도)/출처=군산근대역사박물관
고지도(수영지, 전라우도 군산진지도)/출처=군산근대역사박물관

옛 군산의 원 모습을 찾는 지표 중 하나는 ‘군산창’.

옛 지도를 보면 군산진과 다소 떨어진 군산창은 중종 7년인 1512년에 정식으로 설치됐다. 18세기 만들어진 해동지도 옥구현 지도를 보면 전북지역 칠개 읍인 전주, 태인, 금구, 임실, 진안, 장수, 옥구의 미곡을 군산진창에서 모아 실어 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연유로 군산창을 일곱 개 현의 쌀이 모인다고 해서 ‘칠읍해창’이라 불렸단다.

군산진의 방어시설은 노인성과 군산진성이라는 두 개의 이름이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상 한 곳을 지칭하는 이름 다름 아니었다. 본래 노인성이 존재했지만 군산진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다시 축성돼 빚어진 혼용된 지명이다.

옛 간이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있는 ‘군산진사적비’는 수덕산과 군산해경청사가 있었던 곳이 중심지이기 때문에 다소 거리가 떨어진 곳에 세워진 것이라는 게 지역 향토사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 때문에 군산창길과 구영(舊營)리가 오늘까지 전해 그 옛날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구영리와 군산창길이 새주소에 의해 구분되어 있지만 조선시대란 배경을 감안할 경우 공간적인 위치가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은 군산창이 서해안 최고의 쌀 창고(조운)였다는 점을 간파하고 쌀을 실어 가기 위한 항구로 활용하기 위해, 즉 경제적인 침탈을 목적으로 군산개항을 집요하게 요구했을 것은 분명하다.

이런 영향으로 각 수군영에 대한 폐지령이 내려졌다.

1895년 7월5일자 승정원일기에 존재하는 내용이다.

이때 군산진도 폐진 수순을 밟게 됐고 이곳의 마지막 첨사가 최건수다. 그는 1861년 무과에 합격한 뒤 서울과 함경도 등지에서 무관으로 근무했다가 이곳으로 와서 폐진까지 지켜본 인사다.

이런 점에서 일제는 군산진과 그 주변을 중심으로 조계지를 요구, 그들의 침략 전진기지로 삼은 것이 근대 군산의 모습이 만들어진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토착 음식과 새로 들어온 일본의 음식과 중국음식 등이 결합, 오늘날의 지역 대표 음식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구영1길에서 떡갈비로 잘 알려진 ‘진가네(영업개시일 1991년 4월)’등이 유명 맛집이다.

특히 시설을 새롭게 리모델링한 진가네는 떡갈비 맛을 업그레이드, 전주에 영업점을 낼 정도로 활발한 영업을 벌이고 있다.

박가네와 마주하고 있는 한신88 맨션은 1970년대 당시 쌍두마차 중 하나였던 백화가 이곳을 사들이기 직전까지 고려주조장과 삼양사이다란 회사가 가동됐었단다.

된장국을 만들기로 유명한 영화식당은 지금도 맛깔스러운 음식 때문에 여전히 단골들이 즐겨 찾곤 한다. 오미정의 곰탕도 지역의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구영1길이 있는 군산대중목욕탕은 문을 닫았고 1층에는 썬마트가 영업하고 있다.

이 길과 마주하고 있는 건물에는 군산JC가 입주, 지역 청년들의 대표적인 활동 공간이다.

군산JC는 1965년 7월 20일 창립, 올해로 56년 맞았을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하며 지역 대표적인 청년조직이다. 해외교류는 물론 동서교류를 통해 지역사회의 영역을 국내외로 넓혀가고 있다.

중앙로에서 구영2길로 향하면 인근에 있는 옛 월명동사무소와 옛 제3청사 자리에 입주한 군산시 차량등록사업소, 평생학습관 등이 과거 행정타운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주변의 위치한 시 행정동우회는 1987년 4월 설립, 약 10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옛 3청사를 활용해오다 몇 년 전 새롭게 건물을 만들어 독립해 나갔다.

구영2길에 있는 낡은 정주상회와 영화시장, 성환식당, 항운노조 건물, KT&G 군산지점 등도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온 이웃들이다.

성환식당 물메기탕/사진=투데이 군산
성환식당 물메기탕/사진=투데이 군산

 

성환식당(1992년 9월30일 개업)은 물메기탕 등에 있어서 숨은 맛집이다. ‘먹방(먹는 방송프로그램)’에서 출연해줄 것을 요청받고 있으나 고집스러울 정도로 거부하고 있다.

방송에 출연했을 땐 효과도 있지만 지역의 단골들을 잃을 수 있다면서 애써 피하고 있다는 게 주인장의 얘기다.

이들 길에서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70여 년이 된 3청사 건물이다.

 

변신한 옛 시청 3청사… ‘화려한 휴가’ 속 극장 세트장 활용

위 사진은 최근 변신한 시청 3청사(사진=투데이 군산), 아래 사진은 영화 '화려한 휴가'속 장면 캡쳐.
위 사진은 최근 변신한 시청 3청사(사진=투데이 군산), 아래 사진은 영화 '화려한 휴가'속 장면 캡쳐.

 

옛 시청 3청사는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건물로 추정됐지만 1950년대 사진 자료에서 조달청사 건물로 기록되어 있을 뿐 얼마 전까지 구체적인 이력이 없어 설이 무성했다.

이 건물이 본의 아니게 가장 눈길을 끌게 된 것은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 에등장해서다.

그 일부분이 1994년 증축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창호와 내부 마감 등도 수리되고 교체되었으나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 및 평면, 구조 등은 초기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 관한 구체적인 이력이 나타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2016년 동국사에서 진행된 일제강점기 문화유산현황 조사과정에서 조선총독부 곡물검사소 군산지소 신축공사 개요가 적힌 엽서가 발견되면서다.

이 자료에 따르면 조선총독부 곡물검사소 군산지소의 청사 위치는 군산부 전주통 42번지로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군산부 대화정 18외 1필지) 위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 자료에 대한 연구를 해온 김영신 학예사(군산시)에게 문의해본 결과 옛 지번을 나타낸 곳과 바로 인접한 곳의 경우 지번 명칭만 다를 뿐 사실상 한 공간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기공은 1937년 8월21일, 준공은 1939년 6월20일로 각각 표기되어 있다.

그 당시 이미 전북곡물검사소가 군산내항에 위치해 있었지만 종전의 도지사 권한에 따라 지방비로 실시하던 곡물검사를 총독의 권한에 따라 전국통일적인 검사로 전환하면서 조선총독부 곡물검사소 군산지소를 신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가 전시 식량 확보를 강력한 통제의 일환으로 1943년 조선식량관리령을 내리고 종합적인 식량관리시스템을 구축하며 조선식량영단을 만들었고 군산곡물검사소가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로 바뀌게 됐다.

이후 미군정기인 1946~ 48년까지 조선생활품영단으로 사용됐다가 대한식량공사, 임시외자관리청 군산사무소, 외자청 군산사무소, 조달청 군산사무소 등을 거처 군산시청 제3청사로 이용됐다.

이 건물은 여러 관공서로 바뀌면서 내부 수리 등으로 변형이 이뤄졌고 건축 당시 기록이 없어 건축사적인 가치 부여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최근 관련 자료 확보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

이에 따라 2014년 9월 전라북도 등록문화재 제600호로 지정받았다.

이 건물이 평가받고 있는 것은 건축물의 공간구성이나 외관형태 등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중심으로 건축물의 건축양식을 나누어 보면 일제강점기 동안 지어졌던 건물들은 일제 초반 서양의 고전적 경향을 모방하던 양식주의 경향에서 점차로 모더니즘 경향으로 변화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콘텐츠 설비를 지난해 말 마친 만큼 올 상반기를 지나면 홀로그램을 활용한 내부공간이 일반에 공개될 전망이다. 1층은 쌀 수탈 관련 전시공간이며 2층은 근대문화역사체험관이다. 개관은 코로나 19 때문에 늦추진 것이란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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