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여덟 번째 이야기: 영화의 거리 핵심 ‘초원사진관과 히로쓰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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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여덟 번째 이야기: 영화의 거리 핵심 ‘초원사진관과 히로쓰가옥’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02.23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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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인 영화촬영의 메카 우뚝”… 150여 편 촬영
1948년 이후 대표작… 장군의 아들 시리즈, 타짜, 8월의 크리스마스 등
해망굴‧ 한일옥‧ 동산중 골목길‧ 수목원‧ 중소기업은행 군산지점 등 눈길
초원사진관
초원사진관

 

월명공원과 인접한 곳에 위치한 월명동의 한 골목길엔 군산에서 독보적인 공간 중 하나가 영화의 거리일 것이다.

이곳은 70․80년대를 연상케 하는 골목길과 각종 일제강점기 건물 등이 수두룩해 국내영화제작자들의 관심과 일반 관광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있는 영화촬영의 보고(寶庫)다.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곳인데…. 그 유명한 일본집은 어디에 있습니까. 또 초원사진관은? ”

구영의 여러 골목길들과 중앙로를 교차하는 공간에는 최근 코로나 19로 예전과 같지 않지만 젊은이들은 여전히 20년째 그곳으로 가는 길을 묻거나 찾고 있다.

물론 대부분은 앱으로 찾아서 방문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같은 질문을 받으면 은근히 군산에 대한 자부심과 애향심이 저절로 발산된다.

가장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곳이 신흥동 일본식 가옥(보통은 히로쓰 가옥으로 불리운다: 근대문화유산 제183호)과 그 인근에 초원사진관과 해망굴(등록문화재 184호) 등이다.

물론 히로쓰가옥에 대한 소개는 이전에 다뤘지만 구체적인 영화와 관련해서 언급하는 것은 영화의 거리와 연결하기 위해서다.

주변에 맛집과 구수한 음식점들이 이어져 있어 군산의 멋과 맛을 한꺼번에 알릴 수 있는 대표 관광지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 지역은 영화 ‘장군의 아들 시리즈’, ‘타짜(2006년)’,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 , ‘최종병기 활(2011년)’ 등을 촬영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월명동 주변에는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란 푯말들을 다수 볼 수 있다.

1925년 건립된 이 가옥은 일제강점기 때 포목점으로 부를 일군 일본인 히로쓰 게이사브로가 건축한 주택으로 주변은 당시 지역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유층 거주지였다.

해방 후 구 호남제분의 이용구사장 명의로 넘어갔던 이곳은 얼마 전까지 한국제분의 소유로 남아 있었으나 시가 근대유산의 의미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소유주를 적극 설득, 매입에 성공했단다.

이곳은 장군의 아들 시리즈는 물론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 수많은 근대 배경 한국영화의 산실이자 세트장 역할을 톡톡히 했던 곳이기도 하다.

구영2길에 있는 삼성애육원에는 주변에서 촬영됐던 영화 설명과 포스터와 같은 화보형 영화장면 사진들이 10여 곳이 남아 있다.

이곳의 정문 쪽 담에는 유명 시인들의 작품들로 수놓아져 있다.

히로쓰 가옥 때문에 주말이면 교통체증이 날 정도로 심각해진 명신슈퍼도 주변에 오래된 골목길과 70‧ 80년대 배경 때문에 여러 편의 영화에 단골로 나왔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 건물에서 약 150m 떨어진 곳에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 작품)의 주요배경이 됐던 초원사진관이 오래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방문코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심은하와 한석규라는 걸출한 스타들의 아름다운 영화 장면으로 군산이 오늘날 유명영화촬영지로 각광을 받게 한 초원사진관.

본래 건물 대신 개보수한 초원사진관과 서초등학교 주변에서 대부분 촬영을 했던 이 영화는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해설사가 배치돼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직접 사진을 찍어주는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이곳은 주말이든 공휴일이면 자신들만의 인증샷을 남기는 장면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본래 영화의 장면에 나온 아름드리 플러타너스 한 그루가 있었는데 수년 후 매입한 초원사진관의 인근 부지에서 사라졌다. 이에 정취를 살리기 위해 다시 한 그루를 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배경을 되살리기에는 오래 전 공직자의 노력이 주효했다.

이곳에 인접한 동산중으로 가는 돌담의 골목길은 이요원과 안성기 등 화려한 캐스팅과 제작비로 화제를 모았던 ‘화려한 휴가’의 거친 추격신을 찍었던 곳이기도 하다.

중앙로와 연결된 서초등학교를 지나면 군산에서 대박났던 이들 영화촬영지와 가까운 곳에 있는 해망굴이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축항공사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근대건축물이다.

1926년에 완공된 해망굴은 물자수송을 쉽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한국전쟁 중에는 인민군 지휘소와 인접한 곳이었다.

해망굴의 전체길이 131m, 높이 4.5m의 반원형 터널로 1920년대 중반 이후 군산부청 등의 공공청사가 옛시청자리로 이전하면서 시의 중심공간이 변화되는 과정의 산물.

인근의 서초등학교는 해방 전후 해군기지가 있었다고 적힌 비만 남아 있다.

먹는 방송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한일옥은 조만간 초원사진관과 마주하는 자리로 이전했고 인근에 한미옥 등에도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단재미를 보고 있다.

한일옥은 일본식 가옥으로 발산에서 유명한 어느 전통탕집(?)이 이전해와 영업하다가 사업 부진으로 폐업한 뒤 지금의 주인에게 넘겨졌다.

인근의 월명토건(주)의 사옥은 옛 한전건물이란 이름으로 알려졌지만 일제강점기 때 남조선전기주식회사가 있었던 곳이다.

1919년 5월 군산전기주식회사는 본래 장소의 바로 앞에 있는 신창동의 현 건물을 건축, 다시 개업했다.

1928년 9월 군산전기주식회사와 전북전기주식회사가 합병한 후 남조선전기주식회사 군산지점이 됐다.

해방 후 한국전력 군산지사가 이를 그대로 이용했다가 이전하자 지역 유수의 건설업체인 월명토건 (주)(1997년 1월 창업)이 이를 사들여 1999년 2월부터 사옥으로 활용했었다.

다만 군산시가 역사적인 가치가 평가된 이곳을 매입하는 바람에 월명토건과 옆 건물을 임대하고 있었던 서해환경(주)은 2020년 말 자매회사가 있는 현 비응도동 사옥, 미성동으로 각각 이주했다.

이 회사의 자매회사인 ㈜월명유람선은 2001년 4월 설립돼 지역해상관광을 주도해왔다.

이밖에 한때 극장으로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명화극장은 이미 폐지돼 교회와 커피점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의 ‘반찌’라는 커피숍은 실내에 각종 화초 등으로 실내를 장식, 단골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무슨 일인지 몰라도 문을 닫았다.

필자는 인근에서 활동하던 때에 이곳을 빈번하게 이용했는데 내부의 분위기는 화려하지 않아도 제법 운치 있는 공간이었단다.

중소기업은행 군산지점 후문에 있는 수목원은 일본식집을 개축해 커피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수목원은 일본식 정원이 마당 안쪽에 있어 다녀간 인사들의 뇌리에 오래 남게 하고 있다.

오랫동안 운영하던 여주인 대신 젊은 청년이 그곳에서 영업하고 있다.

중소기업은행 군산지점은 오랫동안 지역 중기발전과 환경단체가 입주했고, 야구박물관으로 활용하자는 여론도 적지 않다.

 

군산서만 4대째 한의원 ‘지산한의원’…8대째 가업 승계

 

월명동에서 눈길을 끌고 있는 곳은 8대째 이어온 ‘허준의 후예’인 월명동소재 구영5길에 있는 지산한의원(원장 안재규)이 있다.

지산한의원은 안재규(80) 원장의 증조부 때부터 시작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 원장의 아들 동선씨가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직에 뛰어들어 8대째 가업이 사실상 이뤄진 셈이다.

특히 안 원장의 아들 동선씨가 얼마전부터 이곳에서 부원장으로 일하고 있어 지역의 가장 오래된 한의원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안 원장의 형제 한의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친동생 안재길 원장은 대전에서 지산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안 원장의 가업은 본래 고향이었던 남원시 대강면에서 7대조부터 4대조까지 한약방을 열어 의생(醫生)으로 가업을 이어왔다.

이곳에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안 원장의 집안이 1945년 당시 군산경찰서장으로 있던 친척의 권고로 군산으로 이주하면서 비롯됐다.

고향을 등진 것은 해방정국의 혼란 등 당시 복잡한 사회상에 기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산한의원의 ‘지산’이란 이름은 군산에서 한의원을 새롭게 열었던 증조부(고 안종술 원장)의 호에서 따온 것.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한의사로서 활동해온 안 원장은 대한한의사협회장과 세계약침학회장, 한국민족문화협의회위원장 등을 역임해온 한의사업계의 유명인사다.

하지만 그가 서울 활동을 접은 것은 아버지가 작고(2006년)하는 바람에 낙향과 함께 60여 년 전통의 한의원을 이어받았다.

이 한의원은 벌써 70년을 훌쩍 뛰어넘어 80년의 역사로 향해 달려가고 있다.

특히 안 원장의 오랜 가업이 눈길을 끈 것은 200여 년의 세월 못지않게 군산에서 진료부(치료 차트)를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차트에는 과거 군산인들의 질환과 관련된 치료 내용들도 자세히 수록돼 있다. 이는 근‧현대 지역민들의 병리학에 연구에도 소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에는 월~ 금요일까지 한의원을 열어 주민과 동네 단골 등을 치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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