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5] 군산여고‧ 호원대 유치원‧ 옛 부윤관사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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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5] 군산여고‧ 호원대 유치원‧ 옛 부윤관사 주변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02.02 12:44
  • 기사수정 2022-01-17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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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공간 여성교육의 요람 우뚝… 105 년의 역사 자랑하는 군산여고
고인 유지 이어 받은 호원대 부속 유치원 탄생… 고 강정준 백화회장의 고택 희사
‘명예는 한성부운, 돈은 군산부윤’란 말 낳은 옛 군산부윤 관사도

동국사를 거쳐 서쪽방향으로 틀면 월명로의 산자락에 전북 최초 근대여성교육기관이었던 군산여고가 있다. 군산여고에서 명산동 네거리 방향으로 조금 걷다 보면 일제강점기 때 위용을 자랑한 옛 군산부윤 관사가 길가에 남아 있다.

월명공원 쪽을 바라보면 공원과 인접한 클래시움 아파트와 호원대 부설 유치원 등이 성곽처럼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월명공원 자락은 봄철이면 흐드러진 벚꽃 군락지 광경과 꽃내음이 일품이다. 그야말로 온갖 산자락을 향기로 뒤덮을 정도여서 봄철의 주민들은 물론 외지 관광객들도 이 향기에 반해 산행을 하루면 몇 번이고 반복할 정도란다.

군산부윤관사는 비교적 양호한 형태로 남아 있다.

한때 고기 전문점이 들어선 적도 있다.

 

 

옛 군산부윤 관사
옛 군산부윤 관사

당시 군산부윤의 직책은 ‘명예는 한성부윤, 돈은 군산부윤’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그 위상이 대단했다.

다시 말해 당시 돈방석에 앉으려면 군산부윤을 해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망하는 자리였다.

정원에는 석등이 있어 일본식 정원의 형태를 엿볼 수 있고, 내부에는 목조계단을 통해 2층의 방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에 대한 문화재급으로 관리하는 것도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됐다.

 

전북 최초 근대여성교육기관 ‘군산여고’

과거에는 없었지만 십수 년 전 건설된 월명터널 방향으로 가다 보면 군산여고가 있다.

1916년 4월 1일 공립군산실과고등학교(2년제)로 개교한 군산여고는 1921년 4월 1일 공립군산고등여학교(4년제)로 승격됐다.

1945년 11월 10일 국립군산여학교(4년제)로, 1947년 4월 1일 군산공립여자중학교(6년제)로 개편됐다. 1952년 9월 1일 학칙 변경으로 중·고(3년제)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위치에 들어선 것은 1923년.

교훈은 '성(誠) 참되고, 애(愛) 사랑하며, 지(智) 슬기롭게'이다. 3학년 30학급으로 편성되어있으며 연극부, 관악부, 락밴드, 방송부 등의 학생 동아리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학교 출신 유명인사로는 오양순 전 국회의원, 이경실 탤런트, 설혜심 연대교수, 신연희 전 강남구청장, 안이실 영광학교법인 이사장, 유귀옥 동창회장(전국여약사회장), 김현숙 전 새만금개발청장 등이 있다.

 

월명터널
월명터널

 

과거에는 이 학교와 인접한 국궁 활터인 진남정이 있었지만 장소가 비좁은데다 민원 발생 등을 이유로 개정면 발산리 최호 장군 유지 동편으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진남정은 호남 7정 대회를 주도적으로 창설한 오랜 전통의 명문사정(射亭).

진남정의 만들어진 얘기는 다소 차이는 있지만 1921년 경암동에 만들어졌다는 얘기와 일부는 구암동(현 하구뚝부근)에 시작됐다는 말도 있다.

이는 아마 같은 장소인데 당시 행정동의 개념이 오늘날처럼 명확하지 않아 생긴 오해로 보여진다.

포털에 나오는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경포천변에 건립했다가 하천범람으로 약 6~ 7년간 운영하다가 1928년 월명동 35-2일대에 위치한 월명공원 부지로 이전했다는 내용으로 정리돼 있다.

새롭게 사정이 만들어질 당시 공원부지였던 진남정의 과녁터 부근에 한국 전쟁 이후 주거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수차례에 걸쳐 당국의 양성화 조치에 따라 활터 부근 일부 토지가 개인소유로 변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잦은 민원이 발생, 활터 운영이 어렵게 돼 이전을 적극 추진하게 된 것.

이에 2006년 최호 장군 유지(遺址)의 동편으로 이전했고 본래 월명동 부지는 군산시에 기부채납(寄附採納), 현재는 공원부지로 변했다.

군산여고에서 조금 더 가면 거의 붙어있는 월명터널이 있다. 1세기 전에 사람이 다시 온다면 이곳의 변화는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이 터널은 월명동에서 해망동을 연결하는 해방 후 만들어진 첫 터널이다. 터널 접속 도로를 포함하여 총연장 1250m이다. 터널은 연장은 300m이고, 총폭은 22m이다. 월명터널은 2008년에 준공됐다.

인근의 클래시움아파트는 당시에는 일반화되지 않은 ‘숲세권’의 개념이 도입된 사례지만 고도제한 등 환경훼손 논란도 적지 않았다. 이곳을 건축한 기업인 C씨는 절찬리에 분양되는 바람에 승승장구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몇 년 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해당 아파트 건축에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재미나는 숨은 돈(?) 얘기가 무성했다. 이 아파트 단지는 2004년 5월 15층 규모 3개동 총 373세대로 이뤄졌다. 군산지역에서 보기 드문 월명공원과 인접한 숲세권을 자랑하고 있다.

 

호원대 부속 유치원 ‘설립 비화’… 인당 강정준(작고) 선생 고택의 변신

고 강정준 백화회장의 고택 기증으로 변화된 호원대 부속 유치원
고 강정준 백화회장의 고택 기증으로 변화된 호원대 부속 유치원

 

이 아파트에서 산자락이 있는 곳으로 향하면 일반 유치원과 달리 호원대 부속 유치원이 있다.

이곳에서 유치원이 들어선 데는 사연이 있다. 그 당시 재벌급의 경제인이 살았던 곳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유치원에 입학하려면 엄청난 경쟁률을 통과해야 한다.

전북과 군산 경제거목인 인당 강정준(작고) 선생의 육영의지가 대학설립에 이어 유아교육에까지 뿌리내렸다.

호원대는 2003년 11월 월명동 고인의 옛 고택부지에 대학 부속 유치원을 만들었다. 다음해 3월 정식 개원한 이 유치원은 2640여㎡의 부지에 4층 규모. 어린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시설과 강당, 독서실, 실내수영장 등을 고루 갖췄다.

외부에는 자연 속의 놀이 시설과 실외수영장도 구비되어 있다.

호원대 부속 유치원의 설립은 의미가 남다르다.

2001년 작고한 강정준 선생의 교육사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널리 알려져 있다. 30대인 1945년에 백화양조를 설립, 기업인으로서 성장을 거듭한 그는 군산상공회의소 회장을 내리 3번이나 역임하는 경제 거두였다.

1977년 사재 전액을 출연해 설립한 정은학원은 현재 1만여명의 학생들이 둥지를 튼 중견 사학 호원대로 성장했다.

눈을 감기 직전까지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고인은 생전에 못다 이룬 꿈나무 교육을 위해 자신이 살던 집을 유치원으로 희사하라고 후손들에게 당부한 것이다.

나라의 동량은 기초적인 인격 소양이 있어야 하고 이는 온전한 유치원의 교육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는 교육철학이 밴 유언이었다.

고인의 셋째 아들인 강희성 호원대 총장과 그 가족들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고택을 학교법인에 기꺼이 기증했다. 유치원으로 변하는 일화도 있다.

이 시기 강 총장은 (사석에서)필자에게 이곳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냐고 물어 유치원 설립안에 대한 의견을 냈다.

그 내용인 즉, 대학마다 유치원을 특화해서 활용하고 있는데 관련 학과도 있는 만큼 그 인적자원을 활용, 운영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총장과 그 가족들이 이를 수용해서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의 호원대 부설 유치원. 그 시기에 배석한 이가 당시 비서였던 S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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