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4] 동국사‧군산체육관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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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4] 동국사‧군산체육관 주변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01.11 16:34
  • 기사수정 2022-01-17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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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시인 고은 선생 흔적 남아 있는 동국사’
군산의 역사‧ 문화적 공간 거듭 …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등 눈길
지역복싱인들의 실질적인 메카… 군산체육관, 지역문화재로 만들자는 여론도
고우당 새로운 군산 명소로 부상․ 관광 인파 몰려
동국사
동국사

 

길을 보면

나에게 부랴부랴 갈 데가 있다

신영리나 내리마을을 보면

나에게 저 마을을 지나서 갈 데가 있다

…<중략>

나는 가야한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말아라

…<중략>

남북 삼천리 모든 길

나는 가야한다

…<중략>

- (고은 시인의 ‘길’이란 시 일부분) -

 

명산사거리에서 옛 전북은행 명산지점을 지나 월명로(월명터널) 방향으로 가다 보면 동국사길이 있다.

인근에는 동신교회(월명산 등산로)와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 동국사, 오래된 군산(복싱)체육관, 산돌학교, 고우당, 이곳과 접해 있는 군산항쟁관 등이 있다.

동국사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을 따라 몇 발짝 가노라면 군산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이란 간판을 단 2층 건물이 있다.

이 건물 맞은편에 있는 산돌학교는 2007년 3월 미인가 대안학교로 출발, 발달장애청소년의 요람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 학교의 교장 홍진웅씨는 지역시민사회단체와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삶에 매진하고 있는 인사다.

여인숙은 1950년대부터 2007년까지 삼봉여인숙으로 영업해왔으나 방치된 것을 2010년 문화공동체 感(감) 대표이자 미술 작가인 이상훈 대표(디렉터)가 인수, 비영리 전시 겸 창작공간으로 개조했다.

옛 삼봉여인숙의 외곽면은 살리고 여인숙의 방 30여 개의 방을 개조, 1층 전시 공간(갤러리), 커뮤니티 공간, 사무실, 작업실과 숙식 공간으로 만들었다.

2011년 3월 문을 연 여인숙의 의미는 ‘여러 이웃이 모여 뜻을 이루다’는 의미인데 한글 이름만 보고 숙박시설로 오인해 여행객들이 방을 달라고 하는 일도 간혹 생긴다고 한다.

군산체육관
군산체육관

 

‘지역복싱의 메카’ 군산체육관

복싱 참스승 김완수 선생 오롯이 60년 동안 지켜와

이곳을 지나 월명산 방향으로 몇 발짝을 가면 동신교회와 지역복싱체육관으로 약 60년의 역사를 지닌 군산체육관(관장 김완수)이 있다.

김완수(90) 관장이 권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일본 오사카 관서 프로권투선수권자로 활동하다 해방과 함께 귀국해 1946년 군산에 복싱도장을 차린 고 손용 선생으로부터 소질을 인정받으면서 그의 복싱 인생이 본격 시작됐다.

군산권투의 상징이자 살아있는 전설과 같은 인물인 그는 군산고와 중앙대 권투부 등 아마추어선수로 명성을 날렸고, 20대 중반 지도자로서 둔율동과 영화동 등에 복싱체육관을 열었다가 1966년 월명공원 입구로 이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완수 관장은 복싱체육관을 설립한 이후 박구일, 서상영, 황영일, 이원석, 김세일 등 전국적인 복서들을 발굴하고 조련한 인물이다.

이런 공로로 김 관장은 복싱인 최초로 신동파(농구) 등과 함께 1968년 제6회 대한민국체육대상을 수상했다.

또 제1회 아시아 아마복싱대표팀 코치와 대한아마복싱연맹 이사 등으로 활약하는 등 한국아마복싱의 중흥에 이바지한 복싱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이곳에서 연마한 복서들은 박구일(작고: 제5회(1966년) 방콕아시안게임 라이트월터급 금메달), 이원석(아시아선수권 플라이급 금메달 : 65년 프로 전향, 밴텀급 동양챔피언), 서상영(65년 아시아선수권 밴텀급 금메달, 제5회(66년) 방콕아시안게임 은메달, 68년 멕시코 올림픽 대표), 황영일(65년 아시아선수권 밴텀급 금메달) 등이다

또한 곽동성(제6회 킹스컵 국제복싱대회 밴텀급 우승‧ 당시 한국간판 복서인 황철순과 대결에서 판정승)‧ 김현호(82년 아시아선수권 슈퍼헤비급 금메달‧ 제9회(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동메달)‧ 김의진(82년 아시아선수권 라이트 미들급 금메달)‧ 오영호(제13회 킹스컵 국제복싱대회(1987년) 라이트플라이급 금메달)‧ 전진철(제11회(90년) 북경아시안게임 동메달: 군산제일체육관 관장) 등이 전국구급으로 뒤를 이었다.

이곳 출신 복서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아시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만 금메달 13명과 은메달 6명, 동메달 3명 등 모두 20여 명의 메달리스트들을 배출했고 전국복싱대회에서 약 400명에 달하는 입상 성적을 기록했단다. 이는 2000년 기준(군산시사)이다.

군산복싱의 상징적인 인물인 김광선도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권투에 입문했지만 중고시절 서울로 이사하는 바람에 상징적인 관계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출신 복서들은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군산과 서울 등 전국에서 후배양성에 힘을 쏟고 있단다. 이곳을 거쳐 간 수련생들은 약 1만5000여명에 이른다.

 

동국사와 평화의 소녀상, 그리고 고은 시인

이곳을 지나 주말이면 수 많은 인파들이 몰리는 동국사가 있다.

입구로 향하는 담벼락에는  ‘군산이 낳은 대문호’ 고은 시인의 시들로 한때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요즘은 다소 변화된 모습이다.

개항과 함께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군산 시내에만 6곳의 일본인 사찰이 들어섰는데 해방 후 4곳은 사라졌고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동국사(옛 금강사)와 흥천사(옛 안국사)다.

동국사는 1913년 일본인 승려 우치다 대사에 의해 건립됐고 입구의 대리석 대문 기둥이 서있는데 기둥 양편에는 금강사라는 옛 사찰 명칭과 일본 연호가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한때 이를 지우려다 흠집을 내는 바람에 앙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동국사가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은 군산이 낳은 대문호 고은 시인이 출가한 곳인데다 국내 유일 일본식 사찰이라는 점 때문.

여기에다 최근 일제강점기 그들의 만행을 참회하는 비석이 일본 불교인들의 손에 의해 세워져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다.

특히 동국사는 고은(88) 시인이 젊은 시절 출가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의 본명 고은태.

1951년 당시 기승으로 알려진 혜초스님을 은사로 동국사에서 출가한 그는 승려의 길을 걸으면서 시인으로서 맹렬히 활동하는 한편 민주화 운동 등 사회참여에 앞장, 세계적인 시인의 반열에 올라 수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거론돼 그의 고향에 대한 관심이 큰 반향을 일으켰을 정도다.

그나마 정확한 내용을 아직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미투사건으로 그의 명성은 다소 흠이 갔다.

그는 이곳에서 당시 지역문화인들은 물론 전국적인 명사들과 교류, 문학적인 양분을 만들어낸 도량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몇 년 전 동국사는 또 다시 전국적인 이슈가 집중됐다.

동국사 평화의 소녀상. 뒤에는 참사문비
동국사 평화의 소녀상. 뒤에는 참사문비

 

일본 불교의 대표종단인 조동종(曹洞宗) 스님 10여 명은 2012년 9월16일 오전 10시 동국사 창건 제104주년 다례제에 참석, 참회 법회를 했다.

동국사 앞뜰에 가로 3m, 높이 2.3m 크기로 제작된 비석에는 일본어 원문과 한글 번역문이 함께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해외 포교를 핑계로 일제가 자행한 야욕에 수많은 아시아인이 인권 침해, 문화 멸시를 당했다.

이는 불교적 교의에 어긋나는 행위다.

석가세존과 역대 조사(祖師)의 이름으로 행했던 일은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다. 진심으로 사죄하며 참회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참사문'비 건립은 조동종 승려가 회장으로 있는 '동지회(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에서 주관했으며 건립비용도 일본 불교계에서 부담했다.

이 참사문비의 앞에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공간은 위안부의 아픔을 나타내는 평화의 소녀상.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평화의 소녀상’이 군산 동국사 경내에 건립됐다.

군산평화소녀상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이승우· 김부영)는 광복절을 사흘 앞둔 2015년 8월 12일 동국사에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가진 바 있다.

이날 제막식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와 군산 동국사 주지(당시) 종걸스님, 문동신 군산시장, 진희완 군산시의장, 김관영 국회의원, 이진원 군산문화원장을 비롯한 시민단체 관계자와 종교계 인사,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평화의 소녀상이 사찰 경내에 조성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군산 평화의 소녀상은 국내에서 11번째로 건립됐다.

이 소녀상은 2012년 9월 자국이 행한 과오에 대한 불교적 참회와 사죄의 뜻을 담아 일본 불교 종단인 조동종이 군산 동국사 경내에 세운 참사문비 앞에 세워졌다.

이번 소녀상 건립에는 자국의 잘못을 참회하는 일본인들이 성금을 보태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전북 출신의 고광국 작가가 제작한 소녀상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당시 17세 전후 여학생 사진 300여 장을 검토해 키 158cm의 청동 조각상으로 제작됐다. 한복 차림에 맨발로 서 있는 앳된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소녀상 주변으로는 77개의 검정 타일을 사용해 대한해협을 상징하는 사각 연못을 제작해 소녀상의 얼굴이 비치도록 설계했다.

태양의 각도에 따라 연못에 비친 소녀상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경관 디자인은 군산대 김병옥 교수와 동국사 주지 종걸스님의 재능기부로 조성했다.

이 작업을 처음 주도했던 당시 종걸 동국사 주지스님은 “ 참사문비는 20여 년 전 일본 조동종에서 발표한 참사문을 명문화한 것으로 이번 일은 의식 있는 스님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추진됐다”고 말했었다.

조동종은 1945년 일제 패망 당시 한국에 160여 개의 사원과 포교소를 거느린 거대 종단이었다.

군산 동국사는 1909년 이 종단의 스님에 의해 창건됐다. 현재 이 사찰의 소조 석가여래 삼존상, 복장 유물, 대웅전 등이 보물과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군산국악원과 명창들

월명동의 군산국악원은 본래 유곽시장이 있던 명산동에 있었고 창(唱), 가무 등을 배우는 실기반과 취미로 배우러 다니는 동호인반으로 운영됐다.

당시 사람들은 동호인을 ‘한량’이라 불렀다. 동호인은 기관장이나 회사 경영진, 사업체 사장 등 돈 많고 나이가 지긋한 유지급들로 이뤄졌다. 이전에는 권번 출신 기생 등도 초기 국악발전과 안착에 도움이 됐던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군산국악원(군산국악연구회)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일제 민족말살정책으로 군산에서 국악의 맥도 끊길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해방 후 지역인들이 나서 오늘의 기반을 닦은 것은 동호인들이었다.

이들은 1948년 기금을 모아 군산국악연구회를 설립한 뒤 기악부, 창악부, 무용부 등을 두고 국악의 맥을 확고히 했다.

특히 1967년 박환준 국악연구회장의 사재 쾌척과 군산시청의 보조를 받아 창성동에 조그만 건물을 장만했다.

여기에는 강의실과 실습실 등을 갖춰 군산국악원이라는 현판까지 내걸었다.

이를 계기로 국악인들간 친목은 물론 판소리와 장구춤 등 다양한 레퍼토리의 국악제를 해마다 개최해 명실상부한 국악원으로 입지를 굳히면서 국보급 국악인들이 다수 탄생했다.

(사)한국국악협회이사장 등을 거친 이영희(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예능보유자) 명인을 비롯한 김수연(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성운선(전북지방문화재 2호) 명창, 임화영 명창(전 익산국악원장), 김금희 명창, 김경숙 명창 등이 이곳에서 예인의 꿈을 키웠다.

또 당시 전국 최연소 원장으로 군산국악원장을 맡았던 김갑식 (사)금강문화예술원장과 남춘배 군산국악원장 등도 지역 국악발전에 힘쓴 인사들이다.

직접적으로 배우진 않았지만 군산에서 활동했을 뿐 아니라 지역국악발전에 앞장선 최란수(전북무형문화재 2-5호: 작고)선생 등의 공도 적지 않다.

특히 고인이 된 최란수 선생은 한국 판소리보존회 군산지부장을 맡으면서 한평생 제자 양성하는 일에 앞장서 왔을 뿐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군산을 지킨 참예술인이었다.

 

고우당
고우당

 

고우당과 근대역사체험공간

동국사에서 월명터널로 가는 대로를 막 지나면 100여m 떨어진 곳에 근대역사체험공간이 만들어지면서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들어섰다. 바로 이곳이 고우당.

특이한 일본식 건물과 싼 커피 때문에 가족 단위 또는 연인, 친구들이 찾고 있단다.

월명동에 세워진 근대역사체험공간 ‘고우당’이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곱다’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인 ‘고우당께’를 표현하면서 동시에 ‘오랜 친구의 집’이라는 아름다운 뜻을 가진 곳이다.

군산시는 관광객들이 좀 더 실감나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월명동에 군산근대역사체험공간을 조성했다. 2012년 조성된 고우당은 그중 일부를 일본식 가옥을 체험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을 친환경 소재 다다미방으로 개조해 관광객을 맞고 있다.

객실은 게스트하우스, 원룸, 펜션 등 구조와 정원에 따라 모두 6개로 나뉜다. 연못을 중심으로 별채와 사랑채, 봄․ 여름․가을․겨울 등의 이름이 붙은 객실이 조성돼 있다.

근대건축물 40여 채를 매입해 1930년대 건축 당시 원형을 살린 근대 건축 집중화권역으로 시대형 숙박체험관 5개동(21실), 근린생활시설 4개동이 있다. 숙박체험관 5동은 게스트하우스 7실, 2인용 10실, 가족형 4동 등을 갖추고 있으며 카페테리아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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