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1] 프롤로그…옛 시청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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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1] 프롤로그…옛 시청광장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12.06 21:53
  • 기사수정 2022-01-17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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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과거-현재- 미래’ 생생한 공간 속 신관광지 부상
군산 골목길 시작 ‘옛 시청사 부지’ 탄생과 소멸, 그 이후
약 1세기간 정경(政經) 중심 우뚝… 중앙로 시대 영광 누려
1910년(수덕산자리) - 1928년(옛 시청사 이전)- 1996년 말까지

골목길은 도시의 작은 동맥이자 다른 도로와 연결하는 통로다.

길을 따라 사람의 움직임이 쉼 없는 교류가 이뤄지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공간이다.

주택과 아파트 주변에는 음식점, 카페, 술집 등을 자신의 영역 안에 두고 쉴새 없이 변화를 꿈꾸는 공간의 중심이 골목길이다.

이 때문에 골목길은 인간의 생로병사처럼 과거, 현재, 미래에도 소멸과 생성, 발전을 거듭하는 사람들의 터전이다.

골목길은 영역 확대를 꿈꾸는 속성을 지닌 것처럼 작은 도로와 주요 도로처럼 커지거나 사라지는 등의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 지역 공동체의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다.

이런 골목길의 역사는 곧 도시와 한 지역의 역사이자, 도시발전의 흐름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군산의 골목 곳곳을 걸으면서 군산의 과거- 현재- 미래를 얘기하는 장으로 삼으면 엄청난 이야기꽃들이 쏟아져 나올 것은 분명하다.

그 시작이 근‧ 현대기 동안 군산의 중심지로 역할을 해왔던 옛 시청사 부지 주변에서 첫걸음을 내딛는 이유다. 이곳의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고 그 과정의 역사와 기억해야 될 사건, 일화, 건물, 인물 등의 정겨운 얘기를 담아보고자 한다.

이에 <투데이 군산>은 신축년을 맞아 지역 사람들의 생생한 얘기를 담고자 골목의 생성과 성장, 발전 등을 다룰 ‘군산을 걷다’편을 연재하고자 한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군산. 사람들의 살아 숨 쉬는 얘기와 새로운 트렌드를 보여주는 골목길 곳곳의 풍경을 담아보련다.

<편집자주>

 

 

80년대 옛  시청 청사
80년대 옛 시청 청사

 

 

군산의 골목길 첫 출발점… 옛 시청사 과거- 현재 이야기

군산을 언급하면서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 것인지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공간을 찾아내 스토리 텔링을 하거나 스토리 메이킹을 하려면 최고의 상징적인 공간이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이런 성격을 담은 곳은 아무래도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온 군산시청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것도 지금의 시청보다는 옛 시청에서 군산의 지나간 100년 역사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상당할 듯싶다.

본래 군산은 옥구현과 임피현 등을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였던 까닭에 정상적인 행정 중심지라기보단 일종의 지명으로 출발했다.

‘군산(群山)’이란 말은 오늘날 일정한 영역을 총칭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단어의 시작은 고군산지역(또는 군도)에서 비롯됐고 지금처럼 전체가 아닌 극히 일부분을 지칭했다.

물론 군산이란 단어는 족히 9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의미에서 군산의 시원은 개항기를 거쳐 강제합방이란 민족사의 아픔 속에서 비롯됐다.

개항 직후 일본인들이 정치 경제적인 침탈을 본격화하기 위해 조계지를 중심으로 하나둘씩 건물(가옥)과 각종 공공시설 등을 세우면서 옛 임피현 및 옥구현 중심의 지역 역사와 주도적인 발전 흐름을 바꿨다.

군산이란 새로운 지역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앞서 조선시대 수군이 주둔하는 군사기지였던 군산진과 조운창고 등을 끼고 있었던 수덕산과 그 인근에서 오늘날 군산의 뿌리가 내려졌다. 이전 시대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대변화였다.

이곳의 큰 변화가 시작된 때는 개항과 함께 군산진이 자리하고 있던 수덕산 한곳에 일본영사관 공관이 자리 잡으면서 확장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이사청 건물이 신축된 후 부청(府廳) 건물로 상당 기간 이용됐고, 1928년 도시가 확장되면서 군산 부청이 중앙로의 옛 시청사부지로 이전했다.

오늘날 군산시가지의 원형이 본격화된 것이다.

중앙로 사거리로 이전한 군산 부청은 2층의 적벽돌 건물로 신축한 후 1996년 말까지 군산의 정치 및 경제 중심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물론 조촌동으로 청사는 이전했지만, 한동안 그 역할을 수행했다.

군산의 개략적인 역사는 이렇다.

조선 시대인 1400년(태조 9)에는 수군 요새로 병마사 관직을 두어 현의 행정을 겸했고, 1423년(세종 5년)에 병마사를 첨절제사로 바꿨단다.

이 시기에 군사적인 필요성에 의해 선유도에서 원도심의 수덕산 주변으로 군산진이 옮겨오면서 오늘날의 군산을 배태했다.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 고군산군도이란 지명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다.

1895년(고종 32년)에는 옥구현이 옥구군으로, 임피현이 임피군으로 개칭됐고, 1899년(고종 36년) 5월 1일 ‘군창’이라는 칭호의 개항장이 되어 옥구군에 소속됐다.

1906년 10월 1일 칙령 제48호(1906년 9월 24일 공포)로 옥구군이 옥구부로 개칭됐다가, 1910년 10월 1일 칙령 제7호(공포)로 군산부가 창설되고 옥구부는 옥구군으로 다시 변했다

1914년 3월 1일 군면(郡面)의 통‧ 폐합에 따라 설치된 지방자치 행정기관. 당시 고군산군도와 충청남도의 개야도, 부안의 비안도 등을 병합해 옥구군이 됐다.

1932년과 1940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옥구군의 상당 지역이 군산부로 편입됐다.

1949년 8월 15일 군산부가 군산시로 개칭했다. 1995년 1월 1일 군산시와 옥구군이 통합해 도농복합형의 새로운 군산시로 탄생했다.

이 시기에 군산시의 팽창 방향은 조촌동 행정타운이었던 까닭에 옛 시청 건물은 과거의 고루한 것으로 치부되면서 청사 이전은 속도를 냈다.

이 청사 이전이 완료된 때는 1997년 1월이었다.

당시 대우그룹이 대우자동차 군산공장 대규모 건립 등과 같은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면서 울산처럼 군산을 대우자동차의 도시로 만들어야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IMF 사태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룹 해체와 지엠과 타타그룹 등으로 매각되면서 형체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군산시와 대우건설은 옛 시청 건물과 그 부지를 매입하는 조건으로 지금의 청사를 건립했다.

그 시기에는 일제강점기 건물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나 재해석을 할 정도로 사회적 역량이 축적되지 않아 버려진 시설로 평가절하당하는 상황이 됐다.

이곳을 인수한 대우건설은 1999년 10월 철거작업을 시작, 유료주차장으로 만들었다가 후에 로데오거리를 계획했지만 큰 실패와 우여곡절 끝에 광장과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옛 시청사의 무분별한 철거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군산시가 이곳을 재매입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남겨뒀다는 점이다.

군산의 탄생을 장황하게 언급한 이유는 골목길의 추억담을 한껏 안고 있는 출발점과 같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역사를 담아낸 숱한 스토리들은 가가호호를 연결하는 담장들 사이의 골목길에서 사람들의 애환과 에피소드, 음식들의 전설들에서 비롯됐다.

이런 점에서 그 기대감은 무궁무진하다 하겠다.

오래전 골목길에선 동네 아이들은 물론 아낙과 중장년 등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정겨움을 가득히 담고 있는 아이들의 놀이터였기도 했다.

첫 출발점은 아무래도 옛 시청사와 거의 역사를 같이해온 이성당 주변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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