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의 음식을 브랜딩하자 ⑤] 군산의 갈비 맛 최고…‘향토 맛’ 살려 해외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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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음식을 브랜딩하자 ⑤] 군산의 갈비 맛 최고…‘향토 맛’ 살려 해외 진출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10.20 12:48
  • 기사수정 2020-11-05 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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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 + 고기 숙성’ 맛의 절정… 지역 갈비 맛 극대화 성공 프랜차이즈시장 개척
△ 1세대(해방 전~ 1980년대) △ 2세대(1990년대) △ 3세대 (2000년대)로 진화
2대째 영업 중인 요리집 다수 … 지역 맛 홍보 통한 관광자원 새롭게 거듭 나야
△ 떡갈비… 완주옥‧ 진갈비‧ 우리떡갈비 △ 갈비 … 더갈비‧ 명월갈비

 

군산의 갈비 맛이 지역과 전국을 넘어 세계인의 맛을 사로잡고 있는 단계로 발전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떡갈비와 일반 갈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지역의 갈비 음식이 발전, 맛의 도시 군산을 알리는 숨은 관광자원으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물론 떡갈비와 일반 갈비는 성격이 달라 같은 음식처럼 동일화하는 것은 맞지 않겠지만 같은 뿌리라는 점에서 함께 다뤄도 무방할 듯하다.

군산의 갈비 원형은 우리나라 갈비 발전 역사를 고려할 때 1930년대 이후에는 어느 정도 대중화 단계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는 1920년대를 지나 요정 등과 같은 당시 고급 요리집에서 주로 만들어진 음식이었다는 기록들을 종합해 볼 때 일제강점기 전국 3대 항구라는 경제사적인 위치를 고려할 경우 군산에도 자연스럽게 안착했을 것은 분명하다.

떡갈비의 시대별 발전 상황에 따르면 초기에는 해방정국 등에서 일부 요리전문가들에 의해 전해지다 한국전쟁과 산업화 시기에 접어들어 경제적인 면에서 상대적으로 풍요했던 군산에서 꽃을 피우고 새로운 형태로 진화, 발전해왔을 것으로 보인다.

군산의 갈비에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떡갈비의 독창성(또는 전국적 맛 주도)과 세계시장의 개척 및 교두보 확보가 그 주된 군산의 음식에 대한 브랜딩의 소재로 삼는 까닭이기도 하다.

 

군산의 떡갈비/ 탄생

향토음식 떡갈비와 갈비 중 어떤 분야가 군산에 상륙했는지, 유래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군산만의 고유한 갈비는 아무래도 떡갈비가 좀 더 토속적이란 점에서 더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은 운명처럼 보여진다.

떡갈비의 살아있는 박물관은 완주옥(1976년)이고, 진갈비(1991년), 우리떡갈비(1993년), 내갈비(1994년) 등이 2세대격이다.

나머지 떡갈비 음식점들은 2000년대와 2010년대에 생긴 음식점인데 이 시기의 갈비는 1990년대 불어온 갈비 열풍으로 대중화되는 시기를 거쳤다.

그 후 갈비집들은 어느 집의 독특한 그 맛이 아닌, 프랜차이즈와 같은 성격의 맛으로 변해 지역 음식발달사에서 의미를 부여할 정도는 아니다.

군산의 떡갈비를 얘기하면서 특정 음식점을 원조(元祖)로 지칭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 흐름을 말한다는 점에서 완주옥의 의미는 특별한 지위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원조론이 분분한 것은 완주옥의 옛 세프의 직계가 이어받아 오늘에 계승되지 않고 그곳의 찬모와 주방장, 또는 외손 등 그 제자격 또는 혈통을 내세우고 있어 더욱 그렇다.

이런 점 때문에 ‘원조라는 왕관’을 누구도 자청할 상황은 아닌 듯하다.

떡갈비와 달리 일반 갈비의 흐름도 의미가 적지 않다.

명월갈비는 숯불갈비라는 특성과 자칭 60년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해외시장으로 진출한 ‘더 갈비’는 지역에서 보기 드문 토종 프랜차이즈로 첫 해외시장을 개척한 신기원을 이뤄 눈길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 완주옥의 후예들… 옛 완주옥 전통 방식 계승

군산의 떡갈비 역사는 위에서도 강조했듯이 완주옥과 그 이후로 구분할 만큼 완주옥의 족적은 대단하다. 일반적으로 공부상 개업과 달리 오래전에 문을 연 완주옥의 원조 세프는 어느 음식점에서 근무해왔을 것이고 그 이전 군산의 어느 세프의 세프에게 요리법을 전수받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군산에 첫 진출 또는 등장한 떡갈비는 아마도 해방 전부터 당시 지역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을 것은 분명하다.

* 내갈비- 완주옥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이모씨가 독립, 처음에는 88맨션 부근에 내갈비를 차렸고 1990년 중반 중앙로에서 조촌동으로 이전했다가 2000년대 초 나운동 유원아파트 근처로 옮겨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우리떡갈비 및 진갈비- 문화동에서 영업 중인 우리떡갈비는 영화동 소재 진갈비와 맛이란 측면에서 유사하다.

우리떡갈비는 옛 완주옥 홍모 할머니(작고)가 외손자를 도와 개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완주옥의 창업자격인 홍 할머니가 자신의 외손주를 도와 기술 전수를 주도했고 현재에는 그 외손이 음식점을 운영 중이다.

진갈비는 얼마 전에 시설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 뒤 활발한 영업을 벌이고 있다. 진갈비는 영화동의 갈빗집으로 다른 군산의 갈비집들처럼 시루떡 모양을 닮고 있다.

파무침과 백김치 등은 수준급이고 갈빗살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등심 덧살(가브리살)과 양지살 등을 섞어서 사용, 약간 달달한 느낌을 주고 있다. 다만 미리 재워두지 않아 연탄불에 10분가량 굽는 뒤 갈비가 나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다양한 방식에도 오늘날의 원조격인 완주옥의 전통이나 방식을 차용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 또 다른 흐름의 일반 갈비 음식점

군산에서 갈비란 음식을 주재료로 만들어 영업 중인 갈빗집들은 상당하다.

떡갈비가 강조되는 바람에 군산을 대표하는 갈비의 입지가 생소하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명품갈비 중 하나는 명월갈비(1984년 3월)다.

공부상 영업시기와 다르지만 1970년대 문을 열어 2대째 영업중인 군산 숯불갈비의 좌장이자, 일반 갈비집의 원조격이다. 메뉴는 양념 소갈비뿐이다.

주인장 백권용씨는 명월갈비의 맛 비법에 간장과 그 소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갈비양념장은 멸치, 물엿 등을 넣어 만든 소스라 할 수 있다. 몇 년 전 모방송국에 60년 전통을 자랑한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명월갈비와 역사는 다른 한 갈비집은 군산갈비의 맛으로 강력히 무장,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국내시장을 넘어 중국 등 해외로 진출해 기염을 토했다.

더갈비가 그 주인공이다.

비좁은 중소도시 골목상권에서 경쟁하는 대신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무대로 뛰는 새로운 음식 한류의 개척자다.

이 갈비집은 국내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토종 브랜드의 경험 등을 살려 군산에서 2008년 개업한 이래 지역 내 가맹점을 잇따라 내면서 국내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이후 중국과 베트남 등에 진출, 새로운 도전을 거듭해 그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군산의 떡갈비는 ‘맛과 관광지라는 오묘한 동행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스토리텔링이 절실한 대목이다.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떡갈비의 관광자원화에 지역과 행정당국, 지역 세프들의 아이디어를 모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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