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싱 중흥기 이끈 군산체육관을 지역문화재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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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복싱 중흥기 이끈 군산체육관을 지역문화재로 만들자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10.14 11:24
  • 기사수정 2021-03-10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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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마추어 복싱계 핵심 공간… 아시아대회 금메달 13명 등 각종 메달 22명 입상
지역복싱의 메카 …전국복싱대회 입상자만 370여명‧ 수련생만도 1만5000여명 달해
1966년부터 한곳 지켜… 홈 커밍 데이‧ 수련생 등 재경 권우회 모임까지 열 정도
/사진=투데이 군산
/사진=투데이 군산

 

‘지역 복싱의 성지’ 군산체육관의 영광과 역사를 기리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특히 군산체육관은 군산의 복싱 역사와 같은 공간이자 대표적인 권투인을 배출하는 상징적인 공간인 만큼 이곳을 지역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군산은 스포츠의 도시다. 야구와 복싱‧ 테니스‧ 탁구‧ 축구‧ 배구 등 다양한 스포츠들이 군산에서 꽃피우고 전국적인 인물들 배출한 곳이다.

그중에서 야구가 군산상고를 기반으로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했었기 때문에 군산을 대표하는 스포츠로 입지를 굳혀온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와 내용적인 측면에서 복싱도 그에 못지않다.

복싱이 군산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은 이유는 긴 역사도 역사지만, 보통 중소도시와 달리 전국 권투계를 아우를 정신적 스승의 건재와 유명 권투선수들을 많이 배출해왔던 까닭도 있다.

그 복싱 성지가 월명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군산체육관.

군산체육관의 벽면에는 흑인 복서가 그려져 있고 입문 방법들까지 수십 년 동안 아로새겨져 있다. 이 흑인 복서는 토머스 헌즈로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웰터급 복서 중 하나이자 7번 세계 챔피언을 지냈다.

군산체육관은 세월의 흐름 속에 시설은 낡고 초라해 보이기도 했지만, 과거 지역 복싱의 산실로 이곳을 거쳐 간 많은 선수들의 수상 이력들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곳은 과거 배고프고 힘든 시절, 그 현실을 극복하고 성공을 위해 복싱을 시작한 선수들을 보듬고 돌봐주는 참 스승이 있었다.

이런 노력의 결실은 80년대 한국복싱 부흥기를 이끈 주춧돌 역할을 했다.

시대가 변하고 복싱 입문자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최근엔 다이어트 운동으로 전락, 과거의 영광은 빛바랜 사진 속에 남아 있다.

이곳 출신 수련생들은 서울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느 초‧ 중‧ 고의 졸업 후 홈 커밍 데이(졸업 30주년)처럼 모임을 열고 있을 정도다.

/사진=투데이 군산
/사진=투데이 군산

 

이곳에서 연마한 복서들은 △박구일(작고: 제5회(1966년) 방콕아시안게임 라이트월터급 금메달) △이원석(아시아선수권 플라이급 금메달 : 65년 프로 전향, 밴텀급 동양챔피언) △서상영(65년 아시아선수권 밴텀급 금메달, 제5회(66년) 방콕아시안게임 은메달, 68년 멕시코 올림픽 대표) △황영일(65년 아시아선수권 밴텀급 금메달) 등이다

또한 △곽동성(제6회 킹스컵 국제복싱대회 밴텀급 우승‧ 당시 한국간판 복서인 황철순과 대결에서 판정승) △김현호(82년 아시아선수권 슈퍼헤비급 금메달‧ 제9회(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동메달) △김의진(82년 아시아선수권 라이트 미들급 금메달) △오영호(제13회 킹스컵 국제복싱대회(1987년) 라이트플라이급 금메달) △전진철(제11회(90년) 북경아시안게임 동메달: 군산제일체육관 관장) 등이 전국구로 뒤를 이었다.

이곳 출신 복서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아시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만 금메달 13명과 은메달 6명, 동메달 3명 등 모두 20여 명의 메달리스트들을 배출했고 전국복싱대회에서 370여 명에 달하는 입상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2000년 기준(群山市史)이다.

이곳 출신 복서들은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군산과 서울 등 전국에서 후배양성에 힘을 쏟고 있단다. 이곳을 거쳐 간 수련생들은 약 1만5000여명에 이른다.

군산체육관이 이 같은 명성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김완수(1931~ ) 관장의 자애로운 지도력 덕분.

홍성 출신 김 관장은 1955년 둔율동 영광여고 주변 어느 사회복지시설 내부에 복싱체육관을 설립한 이후 박구일, 서상영, 황영일, 이원석, 김현호 등 수많은 전국구급 복서들을 발굴하고 조련한 인물이다.

이런 공로로 김 관장은 복싱인 최초로 신동파(농구) 등과 함께 1968년 제6회 대한민국체육대상을 수상했다.

또 제1회 아시아 아마복싱대표팀 코치와 대한아마복싱연맹 이사 등으로 활약하는 등 한국아마복싱의 중흥에 앞장서온 복싱계의 살아있는 전설과 같은 존재다.

1960년대 초 영화동에 있는 군산종합체육관을 거쳐 1966년 지금의 월명동소재 군산(복싱)체육관 자리로 옮겨 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김완수 관장이 고령으로 은퇴한 이후 이곳은 상징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고, 여전히 권투영화의 주된 촬영코스로도 이용되고 있다.

복싱의 대를 이어온 둘째 아들은 군산대 주변에서 군산체육관 2관을 운영하고 있고, 다른 제자들도 군산과 전국각지에서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며 스승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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