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어‧귀촌에 성공한 사람들⑨] 새우양식 부안군 진서면 주효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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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어‧귀촌에 성공한 사람들⑨] 새우양식 부안군 진서면 주효민씨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09.24 07:26
  • 기사수정 2021-03-16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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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양식업에 뛰어든 귀어‧ 귀촌에 도전한 아름다운 청년어업인
일본 생활 중 알았던 선배의 도전에 자극받아 미지의 세계 개척 온힘
매일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선배어업인 집에서 숙식 … 직접 양식배운 원초적인 독종
최신 시설 갖춰 친환경양식 기법 재도전 … 야심찬 양식산업 선구자 꿈꿔
/사진=투데이 군산
/사진=투데이 군산

 

부안의 옛 어항의 영화를 간직한 곰소항 앞바다를 바라보는 평야 지대를 지나 한적한 농로로 진입했다. 인근 논들 사이의 구불구불한 들판을 달리니 양식장들이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었다.

얼마를 지났는데 예상했던 것과 달리, 앳된 청년이 자신의 양식장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말을 건네자, 자신이 부안군으로부터 추천받은 그 귀어‧ 귀촌 어업인이라고 소개했다.

그 청년이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주효민(28)씨였다.

초보 어업인이어서 그랬나.

군청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정지도와 안내를 하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냈지만, 그래도 젊은이다운 열정이 돋보였다.

인근의 한 펜션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궁금한 그의 어업인 도전기를 청했다. 처음 만난 청년과 활기찬 대화로 이끈 분은 오양수 전라북도 귀어귀촌센터장이었다.

효민씨의 애로사항을 하나씩 직접 부안군 관계자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물론 한국어항공단의 고위 관계자에게도 현장의 문제점을 전달하는 특유의 순발력까지 한껏 발휘했다.

효민씨의 고향은 본래 부안이 아니었다. 이웃 고창에서 태어나 광주광역시에서 고교와 대학 등을 졸업했단다. 컴퓨터공학은 취업이 어렵지 않은 분야였지만 전공과 다른 선택을 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그 분야가 일종의 3D업종으로 취급되고 있는 연유이다.

/사진=투데이 군산
/사진=투데이 군산

 

물론 그가 그 분야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마다한 이유는 자신의 소중한 꿈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단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대학의 선택은 꿈과 취미가 아닌, 수능점수 등에 의한 결과물이어서 전공과 동떨어진 분야를 선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얘기였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군 제대 후 복학과 휴학을 거듭하며 미래를 위해 직업을 찾아보자는 생각에서 우리 사회보다 다소 앞선 일본행을 선택했다. 미래를 구상해보자는 취지였다.

일본 오사카에서 가전제품과 화장품 등을 취급하는 무역 분야의 일을 하면서 지냈는데 뜻밖에 친하게 지내던 한 선배와의 만남이 그의 진로를 180도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선배의 요지는 “양식어업의 지식과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한 만큼 그 분야로 진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귀국해서 새우양식어업을 해보겠다는 의욕으로 활활 타올랐다.

그때의 충격은 ‘양식어업이라니…’하는 생각들로 가득 채워졌고 어느새 어떤 그 무엇에 의해 새로운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후 선배는 귀국과 함께 전남 강진군으로 돌아가 곧바로 양식업종에 뛰어들었다.

세상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무역업으로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때마침 악화되고 있는 한일관계도 자신의 진로 수정을 촉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에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청소년기에는 막연하게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해보자는 꿈을 가진 적이 있었다.

선배의 도전으로 어선을 타고 고기 잡는 일 말고도 새로운 어업인의 길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 것. 전통어업이 아닌 양식어업 분야도 있다는 사고의 대전환이 인생의 깊은 바다로 세차게 그를 내몰았다.

그의 관심은 과거 흔한 어종이었던 명태와 오징어 등의 어획량 감소 현상이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고, 식품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다소나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다. 고령화와 인구 유출 등의 어촌(또는 농촌)의 현실을 생각하면 앞이 컴컴했다.

비록 이러한 어촌 현실이지만 그는 그 벽을 뛰어넘고자하는 젊은이다운 결기를 다졌다.

효민씨도 얼마 후 그분의 새우양식장을 방문한 뒤, 마음을 굳혔다. 그의 구미를 당긴 것은 다른 분야보다 빠른 자금회전이었다.

/사진=투데이 군산
/사진=투데이 군산

 

이때가 2018년과 2019년 초.

이 일을 시작하려면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부친과 상의한 후에 3필지 9620㎡(약 3000평)의 논을 구매했으나 곧바로 새우양식어업에 뛰어드는 위험은 피했다. 다양한 정보와 경험 등을 총체적으로 모아 시작한다는 자신만의 인생 플랜을 풀 가동했다.

흰다리새우 양식을 하는 고창군 흥덕면의 한 어업인에게 양식 방법을 배우기 위해 간청, 양식장에서 무보수로 일을 했다. 때마침 그분의 건강 악화로 일손이 긴급하게 필요, 흔쾌한 수락과 함께 난생 처음 새우양식어업을 경험하게 된 때가 작년 2월이었다.

그가 배움을 시작했던 하우스 새우양식장은 약 2310㎡(700평) 규모였는데 그곳에서 숙식하면서 약 5~6개월 동안 정성을 쏟았다. 그 사장님으로부터 전문기술도 어느 정도 배웠을 뿐 아니라 새우 사료와 그 보조제 납품하는 일, 새우 유통, 양식장 시설 등을 하는 분들과도 교류했다.

그 결과 그분의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대풍작을 거뒀고, 자신감도 가득 충전됐다.

바쁜 중에도 틈을 내서 앞일에 대한 준비까지 조금씩 해나갔다.

2019년 9월 귀어 귀촌 종합교육등도 이수했다. 또한, 현장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구 다루는 법은 물론 지게차 자격증 등도 땄다.

이 기세를 몰아 새우양식 창업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새우양식장의 규모는 수(水)면적 만도 5700㎡였다.

모든 일이 그렇듯,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언제나 호된 신고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운명의 여신이 시샘(?)이라도 하듯.

청년 어촌 정착 지원사업을 준비하고 창업계획서 등과 같은 세부 내용을 하나하나 마무리했다. 서류 준비를 하면서 충분하다는 자부심까지 더해졌다. 그 결과물로 군청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한편 시련은 정보 수집 등에는 빠른 강점을 지니고 있지만, 행정기관의 업무에 대해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행정기관의 계약방식과 행정지도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고전의 연속이었다.

고비들을 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으니, 하우스 양식에 적용되는 바이오 플락과 같은 친환경 어업 양식법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놓였다.

제때 진행해야 할 절차들을 이행하지 못해 우회하는 방식을 택했단다.

자금회전이 빠른 육상 수조식에 의한 노지 새우양식을 시도했다. 새우양식장의 둑 만들기와 양식장 물 넣기(지하수 관정 확보), 바닷물에서 민물로 순차적으로 담수화하는 어린 새우 순치 과정, 양식장 내 수차 배열 및 관리 등까지 고려했다.

‘육상수조식+ 노지사육’의 새우 양식에 대한 경험도 없이 기대감만 컸다. 그의 계획상 경영수지는 매출 3억7000만원에다 이익률 37%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의 추측은 여지없이 빗나갔을 뿐 아니라 참담한 성적표였다.

어느날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치하(어린새우)의 선택과 관리가 매우 중요 포인트인데 건강하지 못한 치하 종자를 사는 우를 범한 것이었다. 전남 무안의 한 종묘상에게서 50만미의 치하를 사서 자신만만하게 새우양식에 나섰는데, 대량 폐사라는 참극으로 끝났다.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치하 종자를 취급하는 몇몇 업자들이 전국을 쥐락펴락하며 가격 담합과 함께 치하 종묘까지 무조건 밀어내는 마피아 방식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치하 종묘업자의 독과점이 빚은 최악의 구조적인 병폐였다. 그런 피해는 그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분야에 종사하는 새내기들의 업보와 같은 것이었다.

새우양식업자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치하의 종묘업자는 그대로여서 일방적으로 공급하고 있어 이런 문제들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친어(치어보다 큰 어린 물고기)의 수입 문제를 적극 검토하는 것만이 이런 구조적인 악폐를 해결할 수 있다고 관계 당국에 제안하기도 했다. 해양수산과학원은 각종 병해충의 국내 유입 등의 문제를 이유로 이에 매우 부정적이다.

이런 문제에 얼마 안 되는 경험까지 그를 어렵게 만들었다.

효민씨는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는 하우스 양식법으로 새우양식을 하고자 했으나 여러 상황이 그를 가로 막았다. 노지 양식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위험을 자초했다.

/사진=투데이 군산
/사진=투데이 군산

 

아니나 다를까.

이 방식은 새우를 키우기는 쉽고 자금회전 속도가 빠르다는 이점은 있었으나 노지의 성격상 변화무쌍할 뿐 아니라 면적도 큰 편이어서 하우스 양식의 재배 경험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당분간은 이 방식도 해볼 생각이지만 대세가 바이오플락양식과 같은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고민스럽게 만들고 있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행정지도와 현장의 차이도 새내기 어업인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년어업인에게는 곳곳이 시한폭탄이었다.

양식장 용도로 산 땅은 농지전용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했으며 거액을 투자해놓고도 하우스 양식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그가 직면한 현실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원받은 자금을 사용하려고 했더니 설계와 공사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나야 했다. 부안군청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점 때문에 지역업체의 공사 수주를 유도하고 있고 각종 계약 관련 법령 등을 들어 사회 초년생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러한 행정지도가 부안군 소재 업체를 고집하면서 가격면이나 질적인 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다른 지역 업체를 배제해야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안타깝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돈은 많이 들고 공사 수준은 떨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그래도 꿈많은 청년어업인의 바람만은 여전했다.

효민씨는 “최연소 어업인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는 만큼 지역사회는 물론 같은 업종 선배들과의 빈번한 만남을 통해 지역발전에도 적극 나서야겠다”는 초심을 간직하고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을 기억하며, 내년을 향해 내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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