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원조 大盜’ 김일권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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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원조 大盜’ 김일권 ①
  • 투데이 군산
  • 승인 2020.09.1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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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용정시~명동촌 중간 지점의 ‘동량리 어구’.

이 곳은 1920년 1월 4일 무장독립조직 철혈광복단원 6명이 군자금 마련을 위해 일제의 만주철도 부설자금 운송차량을 습격, 거금 15만 원을 탈취했던 역사적인 현장이다.

이 사건은 2008년 7월 개봉되어 불황에 허덕이던 한국 영화계를 뜨겁게 달궜던 액션영화 <놈, 놈, 놈>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다.

2010년 8월 현장을 찾았을 때 가이드는 ‘15만원 탈취사건’ 기념비를 가리키며 “거금 탈취 기념비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며 허탈해 했다.

순간 왕년의 도루왕 김일권 선수가 생각났다. 그가 프로야구 최초로 300도루를 달성하고 동료들에게 했다는 농담 중 “대한민국에서 도둑질 잘했다고 상 받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는 대목이 떠올라서였다.

<'군산 야구 100년사' 저자 조종안 記者 생각>

 

‘원조 대도’ 김일권./사진=군산 야구 100년사
‘원조 대도’ 김일권./사진=군산 야구 100년사

한국 프로야구 원년(1982) 도루왕 김일권(59).

그는 해태 타이거즈(1982~1987), 태평양 돌핀스(1988~1990), LG 트윈스(1991) 등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1982년 7월 18일 광주구장(해태-OB) 경기에서 프로야구 최초로 한 경기 개인 최다 도루(5개) 기록을 작성한다.

사흘 후(21일)에는 인천구장(해태-삼미) 경기에서 7회 초 ‘홈스틸’을 성공, 4-4 균형을 깨고 결승점을 올리는 수훈을 세운다. 이는 1982년 전게임을 통해 유일한 ‘단독 홈스틸’이기도 하다.

1983년 9월 26일 인천구장(해태-삼미) 경기에서 6회 초 안타를 치고 1루에서 2루를 훔침으로써 프로통산 최초로 100도루(82년 53개 포함)를 달성한다.

이 기록은 자신의 시즌 100번째 안타를 등에 업고 세운 기록이어서 의미를 더 했다. 이날 경기는 그의 발만큼이나 빠르게 끝나 최단시간(1시간 47분) 경기 기록을 세우기도.

종전 기록은 대전구장(삼미-OB) 경기로 1시간 52분이었다.

3년 후인 1986년 8월 21일 광주구장(해태-삼성) 경기에서 6회에 중전안타를 치고 2루를 훔쳐, 시즌 19개째 도루를 성공하면서 프로야구 최초로 통산 200도루 기원을 세운다.

1987년 7월 3일 광주구장에서 벌어진 라이벌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 1회 말 공격에서 좌측 담장을 넘기는 통렬한 만루 홈런을 터뜨려 해태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는 그의 프로야구 첫 번째 만루 홈런으로 해태가 8-6으로 승리하는 데 주역이 된다.

유니폼을 태평양 돌핀스로 바꿔 입은 1988년. 그해에는 규정타석을 채우고도 삼진을 8개밖에 당하지 않았다. 이는 프로야구 시즌 최소 삼진 기록으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대망의 300도루는 1989년에 달성한다.

그해 9월 7일 인천구장(태평양-해태) 경기에서 5회와 7회 도루를 감행, 프로야구 최초로 300도루 기록을 작성한다. 경기 결과는 2-5, 태평양은 득점에 모두 연결된 두 개의 도루에도 불구하고 패한다. 그는 그해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시즌 최다 도루(62개) 기록을 세우면서 ‘대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아마 시절 ‘작은 탄환’으로 불리며 한 게임 한국 최고 도루(6개) 기록을 세웠던 그는 프로통산 단독 홈스틸 두 개(1982, 1985)를 기록하고, 도루왕을 5회(1982, 1983, 1984, 1989, 1990) 차지한다.

프로야구 10시즌 동안 842경기에 출장(0.253), 도루 363개의 금자탑을 쌓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통산 364득점을 기록, 도루 성공은 대부분 득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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