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홈런왕’ 김봉연 ⑥-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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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홈런왕’ 김봉연 ⑥-끝
  • 투데이 군산
  • 승인 2020.09.1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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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된 김봉연이 팬들에게 답례하고 있다./사진=군산야구 100년사
1983년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된 김봉연이 팬들에게 답례하고 있다./사진=군산야구 100년사

 

1983 한국시리즈 우승, 라면으로 자축

해태 타이거즈는 1983년 10월 2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코리안시리즈(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MBC 청룡을 8-1(4승 1무)로 누르고 낙승, 한국 프로야구 2대 챔피언으로 등극한다.

V10에 빛나는 ‘해태 왕조’가 시작된 것.

MVP는 야구기자단 투표에서 5게임을 통해 19타수 9안타(4할 7푼 4리) 8타점을 올리면서 맹활약한 김봉연이 차지한다. 그럼에도 그는 기쁨을 동료들과 함께 나누지 못하고 단골 구멍가게를 찾아간다.

 

“동료들은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칵테일파티를 벌이는데, 저는 호텔 뒷골목 단골 구멍가게로 갔습니다. 조용히 혼자 자축하기 위해서였죠."

"주인아저씨에게 라면 하나 끓여달라고 했더니 달걀까지 풀어주면서 ‘오늘 대한민국에서 최고 멋진 남자가 됐는데 왜 이러느냐’며 의아해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 몸과 마음은 지금 하늘만큼 행복하고, 라면 국물이 맥주보다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고 했더니 빙긋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김봉연은 그해(1983) 전기 리그를 우승으로 마감하고 전남 여수로 가족여행을 떠났다가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술 담배를 못할 때였다.

의식을 3일 만에 찾았고, 얼굴과 머리 부위를 314바늘이나 꿰매는 중상이었다. 그 와중에도 30일 만에 그라운드에 복귀, 홈런을 날리고,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된 것.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오늘의 영광을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뜬 친구 부인에게 바치고 싶다”고 해서 지역 팬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였다.

 

자신의 은퇴 소식, 연습장에서 신문 보고 알아

김봉연은 가장 불행했던 시절을 ‘탈모왕’ 별명을 얻었을 때라고 회고한다.

홈런에 욕심이 앞서다 보니 스윙 폭이 커졌고, 헛스윙 때마다 헬멧이 자꾸 벗겨졌단다.

그때 깨달은 게 ‘공심타법’, 그는 마음을 비우는 타법으로 1986년 타격 3관왕(홈런왕, 타점왕, 장타율)을 차지하면서 그해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제 몫을 다한다.

그럼에도 1988년 시즌을 끝으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1988년 10월 2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한국시리즈 6차전(해태-빙그레)에서 3-0으로 이기고 있던 8회 초 승부에 쐐기를 박는 2루타로 1점을 보태면서 해태의 4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한다.

그럼에도 그는 “이듬해(1989) 연습하러 나갔다가 신문을 보고 은퇴 소식을 알았다”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빙그레와의 6차전이 마지막 경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다.

은퇴 후 2001년까지 해태 코치로 후배들을 지도했던 김봉연.

지금은 극동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6년 전부터는 충북 음성에 복숭아밭을 사들여 아내와 채소도 가꾸는 등 농사에 푹 빠져들었다.

야구장에서는 체력의 200%를 발휘했는데, 밭에서는 20%도 어렵다며 허허롭게 웃는 왕년의 홈런왕. 그가 건네준 명함(ID ‘homerun’)에서 홈런왕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 멘트에서도 야구에 대한 애착이 진하게 묻어났다.

“프로팀 감독요? 기아(KIA)든 삼성이든 불러만 준다면 당장 교수직 그만두고 가야죠!”

(김봉연 편 끝)

※ 등장인물의 나이와 소속은 2014년 기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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