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홈런왕’ 김봉연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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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홈런왕’ 김봉연 ⑤
  • 투데이 군산
  • 승인 2020.09.1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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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왕은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

국가대표 환영식 모습(오른쪽에서 두 번째 김봉연)./사진=군산 야구 100년사
국가대표 환영식 모습(오른쪽에서 두 번째 김봉연)./사진=군산 야구 100년사

 

김봉연은 대학과 실업팀(73~81)을 거치면서 계속 태극마크를 달았다.

또한, 1973년 ‘노히트노런’을 시작으로 만루 홈런, 연타석 홈런, 3연타석 홈런 등 홈런의 대명사가 되면서 한국 야구사에 한 획을 긋는 찬란한 금자탑을 쌓는다.

그렇다고 그가 투타에만 능한 선수는 아니었다. 1977년 9월 개최된 제32회 전국대학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학창 시절 달리기 실력을 발휘, 도루왕(5개)을 차지한다. 그렇듯 그는 못 하는 게 없는 만능 ‘슈퍼스타’였다.

일본 야구의 영향으로 다운스윙이 교과서로 통하던 시절, 그는 호쾌한 어퍼스윙으로 반향을 일으키며 ‘타격의 이단아’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홈런에 대해서는 누구도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 주변 눈치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분명한 색깔을 지니고 있던 타격의 이단아, 그는 프로통산 홈런 110개(7시즌)로 이만수 선수의 252개(16시즌)에 비해 극히 적음에도 홈런왕 소리를 듣는 이유에 대해 “홈런의 가치와 느낌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팀이 리드하고 있을 때 홈런과 동점이나 한 점 차이로 경기가 지루해지면서 팬들이 목마르게 기다릴 때 터지는 홈런과는 가치와 느낌이 다르다고 봅니다."

"극적인 역전 홈런은 더하겠죠."

"문득 떠오르는 홈런이 있는데요. 83년 한국시리즈 3차전(해태-MBC) 3회 말 노아웃 주자 1, 3루 상황에서 막 교체된 하기룡 투수의 초구를 빠~앙! 받아쳤을 때입니다. 날아간 공은 잠실구장 레프트 펜스 중간에 꽂히고, 관중은 모두 일어나 환호하고···. 정말 통쾌했죠."

"홈런과 뜬공 차이는 힘이 아니라 시간차, 즉 타이밍입니다."

"힘이 좋은 선수라고 해서 모두 홈런을 날리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죠. 어떻게 스윙하면 홈런이 되고 땅볼이 되는지 끊임없는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감각을 익히고, 숙달되면 자기 자신만의 스윙법이 나오게 되죠."

"군산상고 시절부터 ‘왜 그럴까?’를 되뇌면서 고민했는데요. 결과적으로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홈런왕 타이틀도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봐야겠죠.”

 

무등산 호랑이들, 부산에서 호된 신고식 치러

해태타이거즈 시절 김봉연의 스윙 폼./사진=군산야구 100년사
해태타이거즈 시절 김봉연의 스윙 폼./사진=군산야구 100년사

 

국내와 해외를 넘나들며 1970년대를 풍미했던 만능 슈퍼스타 김봉연.

그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현 KIA)에 입단한다. 당시 나이 서른한 살. 선수로는 적잖은 나이였다.

본인도 아마 시절 거의 해마다 새로운 기록을 달성하고 트로피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미련은 없었지만 2년 정도는 더 뛸 수 있겠다고 생각되어 프로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대학에 입학할 때는 국가대표가 꿈이었는데.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야구가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데 기여도 했고, 대회가 끝나면 개인 트로피를 4~5개씩 받기도 하는 등 할 것은 다 해봐서 더는 목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1981년 중반부터 프로야구 얘기가 슬슬 들려오는 거예요."

"나이 때문에 부담은 됐지만 2~3년은 가능할 것 같아 술을 절제하고 체중도 감량하는 등 몸 관리와 훈련을 병행하면서 개막전에 대비했죠.”

 

해태 타이거즈 초대 주장 김봉연(2대 김준환, 3대 김일권 이후 폐지됨)은 1982년 1월 30일 창단식에서 선수 15명을 대표해 선서한다.

2월 1일부터는 시즌 오픈에 대비 광주, 전주, 군산, 이리, 여수 등을 순회하며 훈련에 돌입한다. 3월 28일에는 부산 구덕야구장에서 롯데와 역사적인 개막전을 가진다.

결과는 2-14로 롯데의 완승.

해태는 기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무너졌다. 무등산 호랑이들이 부산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른 것이다.

김봉연은 설상가상으로 4월 8일 부산 게임(해태-롯데)에서 발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다.

발목에 깁스하고 몇 게임 결장하는 사이 백인천, 김우열, 이만수, 김성한 등은 계속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붕대로 칭칭 감은 다리를 만지면서 구경만 해야 했던 당시 심정은 그야말로 ‘참담’ 그 자체. 그래도 하루에 수백 통씩 전달되는 팬들의 격려 편지가 용기를 북돋워 줬다.

마수걸이 홈런조차 신고를 못 하고 와신상담, 때를 기다리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4월 14일 경기(해태-삼미) 9회 초 공격 때 주장 권한으로 대타를 자청한 것. 그는 인호봉 투수를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장식한다. 해태가 9-2로 앞선 상황일 때 터져 빛은 나지 않았으나 다리를 절면서 힘겹게 홈인하는 모습에 감동한 관중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그 홈런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핀치히터(대타) 홈런이기도 하다.

발목에 깁스하고도 근성을 보여줬던 김봉연은 그해 22개 홈런을 작렬시키며 프로야구 원년 홈런왕에 오른다.

79~81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던 그는 아마추어와 프로시대를 관통하는 홈런타자가 된다. 그의 홈런왕 타이틀은 박철순과 백인천 두 국외파가 투수 부문 3관왕과 타격왕을 독점한 가운데 국내파 선수들 체면을 세워줘 더욱 돋보였는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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