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어‧귀촌에 성공한 사람들③] 어선어업 군산 옥도면 이기영씨
상태바
[귀어‧귀촌에 성공한 사람들③] 어선어업 군산 옥도면 이기영씨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09.09 1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내기 어업인에서 ‘꽃게 작업 달인’ … 중앙부처 우수 귀어‧ 귀촌인 수상 예고
직접 개발한 간장 이용해 간장게장 판매 새로운 소득원 개발
현장 고객 긍정적 평가와 지인 판매 확대‧ 온라인 판매 준비 본격
최종 목표 지역 특산품 지정 마을 공동발전 기대

 

고향이 어촌이라 해서 귀어‧귀촌하는 일이 쉽다는 생각은 정말 큰 오산이다.

섬이 고향이고 부모님들이 어촌생활을 해오신 분들이라고 말하니, 그냥 일종의 세습경영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안정적인 회사원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30대 후반의 초보 어업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에게 늘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어업인 1.5 세대쯤으로 폄훼한다. 부친(이석환씨)이 30년 이상 어업에 종사해왔고 그곳에서 이장 등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토박이 어업인이었다는 점에서 그를 정상적인 ‘초보 귀어‧ 귀촌인’이라 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서운하지만 그렇게 보는 시각도 상당했다.

옥도면 무녀도 2구의 이기영(39)씨는 어느 정도 이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즉흥적인 결정은 곳곳에 위험만 노출되어 있다면서 낭만적인 예비창업 어업인들이라면 적극 만류한다. 나이나 경험이 많아서 이 같은 조언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씨도 다른 이들의 선망 속에 시작했지만 벌써 여러 차례에 걸쳐 시행착오를 했었고, 귀어‧귀촌의 어려운 현실 속에 여전히 살아가고 있단다.

‘무엇이 그렇게도 어렵다는 말인가’하는 말을 이해하려면 그의 귀어‧귀촌의 깊은 속내를 더 들여다 봐야 할 것 같다.

그가 아는 고향 마을 어촌의 풍경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어도 얼핏 아는 것이 적지 않다. 이런 점이 그의 귀어‧귀촌을 앞당겼을 것은 분명하다.

10대에는 학업 때문에, 20대에는 어촌 일보다 회사원의 삶을 동경, 대학을 졸업한 후 안정된 의료분야 업체에 취업해 지점장으로 승진까지 하는 서울 생활을 했었다. 그 기간만도 얼추 13년쯤 됐단다.

이씨는 자신이 10여 년의 서울 생활을 쉽게 접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적성보다 일에 자신을 맞춘 결과 때문”이라 진단한 뒤 자신에 맞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에 결단을 내렸단다.

그뿐이겠는가.

그런 이씨의 고민은 보통 샐러리맨들의 일반적인 서글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마음 깊은 곳에 감춰진 그의 생각들을 속 시원하게 털어내 보자.

 

 

서울 생활의 반복된 일상과 지루한 하루하루는 어떤 이에게는 돌파구를 찾는 차원에서 낙향과 귀어‧ 귀촌 등을, 다른 이들에게는 자영업 등 새로운 삶을 도전하는 꿈을 꾸곤 한다.

이씨의 고민도 그 언저리에서 시작됐다.

성실한 나의 노력이 회사의 돈벌이를 해주는 수단이자, 객체로 변한 것은 아닐까. 숱한 고민과 번민 등을 거쳐 무녀도로 귀향,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꿈을 꿨다. 물론 초기에는 현실적인 측면이라기보단 막연히 시작했다.

그 막연함은 부모님이 어업에 종사하고 새만금방조제 준공 등으로 관광산업이 좋을 것 같아 그 분야에서 일을 시작해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고향의 변화는 막연히 오가며 본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아니, 예상이 빗나갔다는 말이 더 정확한 답일 것이다.

서울 생활을 접고 돌아온 이씨에게 고향의 분위기는 다소 생경했다.

“왜? 내려왔지.”

전부는 아니어도 상당수는 또 다른 의미의 경쟁을 해야 할 상대가 온 것이 아니냐는 그런 느낌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처럼 생각됐을 정도인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고향의 풍경은 낯설기도 했었지만 착실한 준비를 통해 결심했던 생각이 흔들리지 않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하는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그래 보란 듯이 해내자고!

‘1년 열두 달 365일’의 조류의 흐름부터 꼼꼼히 알아야 했고 귀어‧ 귀촌인의 기본 조건이라 할 수 있는 바지락 작업 시기와 암꽃게 및 숫꽃게 포획 시기 등을 파악하느라 시간을 쏟아야 했다.

육지에서 도시 생활의 기본인 자동차 운전을 해야 하는 것처럼 어선 다루는 일부터 시작했다. 마을주민 어선의 승선으로 조업 기술 습득에 여러 날을 보냈고, 부모님의 그물(자망 어구) 투하를 하는 작업에도 늘 따라다녔다.

동네 분들끼리 서로 돕는 전통인 품앗이 조업에는 말할 것도 없이 말이다.

물론 귀어 귀촌 종합센터의 각종 프로그램을 이수한데 이어 자금지원프로그램 등에도 관심을 쏟으면서 새내기 어업인으로서 준비하는 일에 충실했다.

귀어‧ 귀촌 프로그램 중에 여러 가지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미래에 더 적합할까’를 생각하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고견도 깊이 새겼다.

이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어선어업 분야’였다. 만반의 준비를 한 끝에 2017년 귀어‧ 귀촌인 지원(자금)결정도 났다. 이듬해인 2018년에 어선어업에다 관광형 민박 사업을 추가하기로 하고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을 신축했다.

 


문제는 생각과 달랐다.

같은 고군산군도의 섬이었지만 장자도‧ 선유도와 자신이 사는 무녀도의 여건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고군산군도의 끝자락이자 경관 등에 앞선 두 섬을 중심으로 행정적인 지원은 물론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아뿔사!”였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평가는 본격 어업인으로 살다 보니 모든 일이 그렇듯, 결과물이 말해주는 것 같아 매사에 신경이 쓰였다. 열심히 일하며 앞으로 다갔다.

새내기 어업인이었지만 멘토인 부친(이석환(68)씨)의 조언을 들어가며 조류 흐름과 어종변화 등에 깊은 관심과 연구를 쏟았다.

이 과정에서 어선(1.46t)을 구입했다. 새로운 어선을 건조하려 했지만, 신규허가가 나지 않아 차선책으로 중고어선 구입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수온 상승 등과 같은 전반적인 지구의 기후변화가 바다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과거와 같은 특정 어종의 수확철이 달라지는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 더욱 그랬다.

당장 작년의 꽃게와 올해 수확한 꽃게의 씨알(크기)이 다르거나 더 작은 씨알들이 잡히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는가 하면, 과거에는 한번 풍어를 하면 다른 해에는 해갈이 하는 현상도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흐름도 있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버렸다.

어떤 해에는 문어와 오징어 등 난류성 어종까지 수확되기도 하는 등 예상과 전혀 다른 양상이 계속되고 있어 바다 속의 생태계 변화가 곳곳에 감지되고 있어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의 상황을 예측하기란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지 무엇이겠는가.

그래도 그에겐 남다른 자산이 있었다.

전문어업인 부친이 곁에 계셔 도와주고 있는데다 부친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뱃일 선배와 일하고 있어 가변적인 어촌환경에도 4년 차 새내기 어업인의 하루는 희망이 가득하단다. 특급 도우미들이 자신을 보살펴주고 있으니 무슨 걱정이랴!

첫해에 봄꽃게 잡을 땐 먼바다로 나가지 못했지만, 차츰 배를 부리는 실력이 나아지면서 5000~6000만원씩의 수입을 올렸다. 남들이 고생하는 선원 구하기도 부친 덕분에 피해갔다. 물론 다른 어선들의 경우 코로나 19 여파로 전남 등으로 선원 유출되는 등의 어려움은 적지 않다.

어선의 크기 때문에 꽃게만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적지 않아 위기 돌파를 고민은 거듭하고 있다.

그물망 수를 확대해서 더 부지런한 몸놀림을 해야 함은 물론 꽃게 요리에 대한 판매망을 확대에도 관심을 쏟기로 했다.

그가 꽃게 요리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가격변동과 수확량 여부에 따른 채산성 악화 때문에 아이디어를 짜낸 것이다. 우선 어머님의 꽃게요리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했다.

꽃게는 수확량이 많으면 가격이 떨어지고 적게 잡히면 전반적인 수익 악화로 이어지는 구조여서 어머님의 ‘재래식 간장게장 요리법’에 손을 내밀었다. 동네에서 소문난 요리 솜씨 때문에 그동안 지인들에게만 인기리에 판매됐다. 일종의 틈새시장이자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었다.

문제는 시스템이 아닌 지인 위주의 전략이어서 규모를 키워 수입을 늘리는 것에는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잡은 꽃게의 신선도와 물량 확보 등에 있어서 유리한 만큼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냉동창고를 만들었다. 꽃게 가격이 떨어질 때는 그곳에 곧바로 저장 보관하고 가격이 오를 때 판매하는 전략과 함께 이 신선한 재료를 이용한 간장게장을 가공 판매하면서 어느 정도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됐다.

그의 냉동창고가 협소해서 향후 냉장 및 냉동창고시설을 신축해야 하는 문제는 중장기적인 과제다. 제품의 안전성과 질적인 수준을 높일 해셉(HACCP)시설 마련하기 위해선 새로운 장소와 예산 등의 면에서 고민거리로 등장, 다음을 기약해야 할 형편에 놓여 있다.

 

 

무녀도는 꽃게잡이 이외에도 경쟁력이 있는 곳이다.

바지락과 굴 등의 대량 생산지라는 점에서 알만한 이들은 다 안다.

이들 해산물이 많이 생산되는 이유는 무녀도 인근에 펼쳐져 있는 상당한 규모의 갯벌 단지 때문인데 이곳은 어촌계에서 공동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만 해마다 5000~ 6000만원의 수익을 올릴 정도니, 그곳 주민들의 숨은 캐시 카우라 하겠다.

특히 어민들의 알토란은 바지락이다.

무녀2구에서 생산되는 바지락은 천하제일이라 할 만큼 좋은 제품이어서 전량 일본에 수출되는 특산품 중에 특산품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좋은 물건이 나온 이유는 해류의 흐름과 깊은 연관이 있는 등 서식환경과 일조량이 풍부하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무녀1구도 뒤지지 않는다.

무녀 2구에 바지락이 있다면, 1구에는 질 좋은 굴이 생산되는 곳이어서 양 지역의 특산품을 규격화 또는 산업화하는 문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에 어르신들보다는 기영씨가 활동하는 청년회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아직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지만….

고향으로 내려온 이래 수년 동안 바다 농사를 해본 결과, 무녀1구와 2구의 유기적인 소통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양 지역은 같은 섬이지만 교류가 빈번하지 못해 서로를 이해하는데 벽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앞서 무녀도에서 생활을 해왔던 50세까지의 청년 20여 명이 수 년 전부터 힘을 모아 ‘무녀도 청년회(회장 송기영)’를 새로 조직하며 지역발전에 나서고 있다.

당연히 기영씨도 내려오자마자 합류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활동하기에는 중‧고 시절부터 (군산)시내에서 생활해온 바람에 서먹서먹함이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교류가 충분하지 않았던 데에서 연유된 것이기도 하다.

그가 합류하자 지역 선후배들의 관심이 쏟아졌고 얼마 되지 않아 사무국장으로 추천받아 어느새 3년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이가 차이는 있지만 서로 간의 소통이 계속되면서 지역발전 등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면서 장애물이 어느 정도 걷혔다.

 

 

기영씨가 활동하는 무녀도 청년회는 불법 해산물을 채취하려는 외지 어선들로부터 지역 어장을 지킴이에서부터 지역의 현안 해결에 앞장서는 활동 등을 하면서 새로운 중추적인 조직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렇다고 귀향 4년 차인 기영씨의 고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의 첫 고민은 꽃게 어판장 운영이 불합리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에 대한 해결책 찾기다. 선유도에도 꽃게 위판장은 있지만, 운영상 문제로 비응도 수협위판장으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대기시간만도 2~3시간 이상 소요되면서 지역 어민들의 불편과 불만은 가중되고 있다.

“가까운 선유도 위판장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시간적인 면에서 좋지만, 가격 등에서 불리해 어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이곳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비응도 위판장은 긴 대기 때문에 바쁜 어업인들의 돈과 시간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기영씨는 이 광경을 보고 분개했다.

어민들을 위한 수협에서 이런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면 절대 안된다는 생각에 항의와 문제 제기를 수시로 해왔지만 도돌이표였다.

지역민들을 위해서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굳혀 대안을 지역청년회와 힘을 합쳐 수협위판장 문제를 해결하는데 향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귀어‧ 귀촌에 3~4년 동안 힘쓴 결과 주변의 평가가 우호적으로 변했고 얼마 전 그의 활동 등에 대한 사례발표까지 했다. 해양수산부에서 호평을 받아 조만간 우수 귀어 귀촌인으로 선정된다는 희소식도 있다. 이 발표에 주목한 KBS의 6시 내고향이란 프로의 관계자로부터 섭외요청까지 받아 조만간 방송 출연까지 예고돼 있다.

기영씨는 기존 어선으로는 전문어업인으로 성장하는데 어렵다고 보고 새로운 분야의 진출도 꿈꾸고 있다.

아버지 석환씨도 아들의 부지런함과 열성적인 활동 등에 한껏 기대감과 함께 든든하게 뒤를 지켜주고 있어 꿈의 부자어업인 시대가 활짝 열려 즐거움에 차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