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홈런왕’ 김봉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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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홈런왕’ 김봉연 ②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08.31 08:03
  • 기사수정 2022-01-14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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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 앞두고 전국에서 스카우트 제의 들어와

군산상고 전경./사진=군산야구 100년사
군산상고 전경./사진=군산야구 100년사

 

영어교사였던 큰형의 권유로 참고서 <삼위일체>를 달달 외우며 영어 공부에 푹 빠져 있던 2학년 말쯤 전주북중 야구부가 해체된다.

이유는 선수들이 연습하느라 시험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때 마침 야구를 계속 하겠다고 서울로 올라갔던 작은 형도 그만뒀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주변이 어수선하게 돌아갈 즈음 큰형을 통해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

 

“어느 날 형님이 군산남중에서 등록금 면제, 기숙사 제공 등을 제시했다며 묻는 거예요."

"11남매가 북적이는 집을 벗어날 최고의 기회여서 망설일 것 없이 '예, 갈게요!'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무명 선수였고, 군산에 대한 호기심도 작용했죠."

"그런데 아버지는 '공부하는 놈이 무슨 야구냐!'며 반대하시더군요."

"그래도 어머니와 형님 도움으로 이듬해 3월 군산남중으로 전학했습니다.”

 

아래는 1970년을 전후해 군산남중 영어교사로 재직했던 이진원(79) 군산 문화원장의 회고다.

 

“3학년 때(1969) 전학을 왔는데, 촌놈처럼 덩치만 커가지고 엄벙하게 생겼더라구."

"검게 탄 농부 아들처럼 말이야."

"내가 영어를 가르쳤는데 착하고 공부도 잘했지, 의리도 있었어."

"졸업 후 잊고 지냈는데, 1982년 해태에 입단하고 그해 연말 송년 인사가 적힌 엽서를 보냈더라구."

"‘살다 보니 별놈 다 있네!’ 하고는 한쪽에 치워놓았지."

"그런데 여중 3학년이던 딸내미는 ‘홈런왕 김봉연이 보내준 엽서’라며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녔더라구··.(웃음)”

 

이 원장은 “김봉연이 스스로 찾아와 야구를 하겠다며 받아달라고 사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은 전주지역 체육계 소식 정보통인 전주북중 출신 체육교사 홍성면 선생이 스카우트해서 군산으로 오게 된 것”이라며 “전주 중앙초등학교 선수 시절부터 눈여겨봤던 홍성면 선생은 김봉연이 대형 선수로 성장할 것을 예측했었다”고 부연했다.

전북지역, 그것도 몇몇 체육인에게만 실력을 인정받았던 김봉연. 군산남중 졸업을 앞둔 그에게 선린상고, 대구상고, 경북고 등 전국 각지 우수 고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

하지만 그는 군산상고(야구부 3기)를 선택한다.

 

예산 아끼기 위해 최소 인원만 출전

군산 제일극장에서 열린 제52회 전국체전 우승 환영식(1971년 11월)./사진=군산야구 100년사
군산 제일극장에서 열린 제52회 전국체전 우승 환영식(1971년 11월)./사진=군산야구 100년사

 

김봉연이 군산상고에 입학하던 1970년, 식욕이 왕성한 시기의 선수들에게 최대의 적은 ‘배고픔’이었다.

그해 운동장 확장공사를 했는데 공사비가 부족해 선수들이 나서야 했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점심은 국수로 때웠다. 쌀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김봉연은 “당시 선수들은 항상 허기진 몸으로 연습에 임했고, 이용일 야구부 후원회장(당시 경성고무 사장)의 학교 방문을 손꼽아 기다렸다”며 고달팠던 시절을 떠올렸다.

 

“(이용일) 회장님이 오시면 선수들에게 곰탕으로 포식을 시켜주셨죠."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그때를 얘기하려니까 침이 넘어가네요."

"전국대회 본선에 진출하면 고기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예산을 아끼기 위해 최소 인원만 시합에 나갔습니다."

"그래서 함께 고생한 동료 몇몇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이 회장님의 지원과 재학생, 시민들의 따뜻한 격려가 있었기에 선수들이 배고픔을 이겨내고, 집념과 투지로 뭉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봉연을 안타깝게 했던 것은 야구선수들의 수업 불참을 당연시하는 풍토였다.

그러한 분위기는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려는 그를 곤혹스럽게 했다.

전주북중 야구팀 시절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교장의 다그침과 ‘야구를 해도 책을 가까이하라’는 큰형의 권언이 생각나 영어와 부기 수업을 받으려고 교실에 앉아 있으면 선생님들이 의아해했다.

그럼에도 그는 ‘나부터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며 낮에는 훈련을, 밤에는 타격연습과 독서를 열심히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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