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2015년 도란도란 공동체 설립… 150m구간 ‘우체부 아저씨’ 조형물 설치
주민주도 전국 첫 시도… 경관협정 체결, 포토존 설치, 내집 앞 청소만 약 30주째
쇠락하는 원도심의 한 거리가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새롭게 피어났다.
이야기의 중심공간은 군산 우체통거리.
이곳은 본래 이름은 개복동과 신창동을 잇는 거석길과 중정길이 교차하는 곳이었지만 한때 군산행정타운의 중심권에 있었던 북적북적한 거리였다.
최소 약 100년 동안은 엄청난 영예를 누렸다. 군산우체국은 물론 시청과 경찰서, 법조타운 등이 인접한 곳이었을 뿐 아니라 극장가까지 즐비해서 중소도시에서 보기 드물게 빅토리아호텔(지금의 서해대 기숙사)이 들어설 정도였다.
그야말로 군산의 명동거리였고 다운타운이었다.
그 영광은 딱 여기까지였다. 이곳은 90년대 후반 조촌동으로 행정타운의 대이동(?) 이후 한적한 동네이자 조용한 거리로 변했다. 이 여파로 많은 음식점들과 가게 등이 이곳에서 하나둘씩 떠나갔고 극장들까지 문을 닫으면서 밤이면 칠흑같은 곳이 됐다. 주변상권의 위축은 심각, 그 자체였다.
한때 서광(瑞光)이 비추는듯했다. 2014년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기대감이 피어올랐지만 밋밋한 흐름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지역주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 동네를 스스로 가꾸고 개발하자는 자발적 의지를 살려 2015년 ‘도란도란공동체’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지역주민이 사업을 기획하고 예산확보, 사업추진, 그 결과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주민주도 도시재생사업의 불씨가 모락모락 살아난 것.
가장 시급한 것은 예산이었는데 이를 주민들이 처음부터 자체 회비로 충당하며, 재생사업의 모우멘텀을 살리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냈다.
이 과정에 만들어진 참신한 아이디어가 군산우체국 본점 50여 년 역사와 110년 군산우체국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려 스토리텔링한 ‘군산우체통거리 조성사업’이었다.
주민들이 회원이자 행동주체로 나서면서 서울과 인천, 남원 등 전국을 돌면서 총 40여 개의 폐우체통을 직접 수거했고 지역문화단체 ‘미술공감 채움’의 도움으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 첫 시도 중 하나가 작품 ‘우체부 아저씨’ 조형물이었다.
그 중심지역이 거석길과 중정길 약 150m의 거리 양쪽으로 각양각색의 우체통들이 들어서게 된 것.세계의 우체통까지 선보이고 있다.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의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은 2017년 거리활성화를 위해 ‘군산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를 조직, 적극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어 군산시와 경관협정을 체결했을 뿐 아니라 전북지방우정청과 우체통거리를 활용한 문화관광 홍보 콘텐츠를 만들자는 협약까지 맺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반적인 ‘경관협정’이란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지역 경관을 관리하자는 제도인데 운영 주체는 지역주민이다. 협정의 주요 내용은 건축물, 광고물, 공작물, 외부공간 등과 관련한 주민들 간 약속이자 다짐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자체 교육과 토론을 통해 주민 단합과 역량 강화에 힘을 쏟는 한편 주변 거리 미관을 살리기 위해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빗자루를 들고 거리 청소에 나서고 있다. 또 수시로 만나 서로의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하려는 마을공동체를 만드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전국적으로 주민주도사업으로 이뤄진 도시재생사업은 적지 않다. 여기저기에서 유사한 사업들을 전개하는 것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주민들이 기획하고 주도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도시재생사업의 첫 사례는 아마 군산우체통거리가 으뜸일 것은 분명하다.
이 거리의 변화는 경관협정 체결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다.
의존적인 기존 사업과 달리 시가 상가 주변 주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감동, 이곳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단초는 이렇다.
오고 가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신호등이 설치됐는가 하면 오랫동안 방치된 폐가가 정리되기도 했다. 또한, 적극적인 행정지원을 통해 벤치와 태양광 가로등의 설치를 비롯해 홍보책자와 엽서 등에 이르기까지 지원과 협력 사업은 지속되고 있다.
사거리 주차장 담장에 우체통거리에 포토존 ‘손편지 만나는 곳’을 마련했고 거리명(名)도 기존의 거석길과 중정길이란 이름에서 ‘우체통거리 1길’과 ‘우체통거리 2길’로 변경했을 정도다.
우체통거리 도시재생사업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손편지 축제’다.
손편지 축제는 2018년 추억을 만들자는 주제로 열렸는데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특히 우체통의 의미를 잃고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는 추억의 편지쓰기 열풍을 만들어냈고 외국인 유학생 등에게 고국과 가족들의 사랑을 연결하는 큰 촉매제 역할을 했단다.
실제로 군산에 유학온 베트남 한 여학생의 사모곡을 담은 편지는 베트남 현지 언론에 소개돼 대서특필됐을 정도였다.
이런 반향은 1년이 지난 지난해 8월 말 손편지 축제에 그대로 투영됐다. 2500여명이 다녀갔을 뿐 아니라 김현미 장관 일행의 내방으로까지 이어질 정도로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올해 손편지 축제(8월 7~ 8일)는 코로나 19사태 속에 치러지는 행사여서 관광객들을 유치하기보다는 부모와 자녀들의 추억만들기 축제로 컨셉을 잡고 향후 더 발전된 행사를 기약하고 추진하고 있다.
이번 축제기간 동안 가장 눈길을 끄는 행사는 ‘군산우체통거리 (주민자치) 홍보관’ 개관이다.
이 홍보관은 한 주민이 건물을 무상 기증한 것이어서 전국적인 사례에서도 매우 드문 경우여서 주민들은 물론 시민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고 있다.
이런 주민들의 열정이 결실을 맺으면서 그동안 공실로 남아 있던 가게들이 대부분 채워지면서 주변 상권도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과거와 같은 핫한 상권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우체통거리의 성공 원인은 주민들의 헌신과 군산우체통거리 경관협정 운영회(운영회장 배학서‧ 안경점대표) 간부들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 여기에다 주민들의 노력을 관심 있게 지켜본 군산시(도시재생과)의 협력도 큰몫을 했다 하겠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군산우체통거리는 ‘국토교통부 2020 도시재생사업 30선’에 선정됐을 뿐 아니라 ‘2020 전라북도 지역특화형 마을축제’로 지정되는 등의 기염을 토하고 있다.
배학서 군산우체통거리 경관협정 운영회장은 “침체된 우체국 거리를 스토리텔링해서 군산우체통거리라는 하나의 전국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적극적인 주민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