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의 금강 진출 저지 위한 상륙작전 ‘대승(大勝)’의 해병대 주역
한국전쟁 당시 해병대가 처음 참전한 군산·장항·이리지구 전투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전쟁기념관이 최근 이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당시 부대장 ‘고(故) 고길훈 해병 소장’을 올해 7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하면서다.
‘군산·장항·이리지구 전투’는 군산에서 매년 해병대 등의 자체 기념행사로 치러지기는 했지만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른 것은 고 고길훈 해병소장 덕분.
이 전투의 개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1950년 7월 초 충청남도 천안을 점령한 북한군 제 13연대가 호남 지역으로 남하할 때, 7월 16일 군산에 상륙한 해병대가 북한군의 금강 진출을 저지하고자 상륙작전을 전개했다.
당시 전투에 참가한 해병대 ‘고길훈 부대’는 소련제 탱크(T-34) 2백여 대를 앞세운 북한군에 후퇴만 하던 1950년 7월 16일 상륙 작전을 전개, 장항을 점령한 북한군 6사단의 금강 진출을 저지하며 격파했다.
이 부대는 3일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승리, 북한군의 공격을 지연시켰을 뿐 아니라 정부미 1만3000가마와 주요 물자반출작전에도 큰 공을 세웠다.
또한 병력과 화력이 열세임에도 적군 사살 62명, 부상 311명, 포로 5명 등의 전과도 올렸다. 반면 이 부대는 전사 36명, 부상 31명의 손실을 보았으나 최초의 승리로 무적 해병 신화의 시발점이 된 것.
이 전투로 자신감을 얻은 해병대는 낙동강 전선 상륙 작전에서 ‘귀신 잡는 해병’ 신화를 창조한다.
한편 고(故) 고길훈 해병 소장은 1922년 7월 10일 함경남도 영흥군에서 태어나 1944년 일본 메이지대학 문과를 졸업하고 광복 후 귀국해 1946년 5월 해군에 입대했다. 그는 1949년 4월 15일 해병대 창설에 참여해 초기 해병대의 체제 정립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군산·장항·이리지구 전투’에 참가,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그는 인천상륙작전에서도 연희고지 전투를 큰공을 세웠다. 해병학교장, 제1해병연대 부연대장 등을 역임했고, 전쟁 후에는 제1여단장과 제1상륙사단장 등을 역임한 후 1963년 12월 해병소장으로 예편했다. 1981년 2월 60세를 일기로 타계해 서울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