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92] 법조타운(3)…취재로 만난 법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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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92] 법조타운(3)…취재로 만난 법조인들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3.01.03 11:07
  • 기사수정 2023-04-13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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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당시 만남 자제한 전통 때문에 한정된 인사들과 접촉
방극성· 정재규 부장판사 등 지원장群… 고교 동창 오기두 부장판사
고 김길준· 김귀동· 이형로· 유경재· 조영보 등 지역 변호사
법원 거리/사진=투데이 군산 DB
법원 거리/사진=투데이 군산 DB

군산법조타운의 얘기는 약 20년간의 취재 경험에서 비롯됐다.

특히 과거 도내 일간지 J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엔 법조타운 곳곳을 활발하게 드나들었고 그후 10년 가까이 판사와 검찰, 변호사, 그곳 근무자 등 법조인사들과 교류해왔다.

법조타운 인사들과의 작은 인연을 다룬다는 점에 대해선 조심스럽지만 아무래도 스케치하듯 다뤄야 할 것 같다.

이들 중에는 전국적인 인사로 부상한 법조인들도 있었고 필자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겨진 이들도 있다.

특별한 인연때문에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이들도 있다.

법원의 경우 군산지원장 및 부장판사 등 판사들은 공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재판에 임하는 까닭에 일반인은 물론 기자들과도 스스로 만남을 자제하는 분위기여서 제한적인 교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후편에 다룰 검찰인맥에 비해 양적인 면이나 내용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있을 것같다.

# 군산지원의 사람들

김귀동, 이형로, 방극성, 조영보. 김의종, 유경재 변호사(시계방향)

1999년 5월1일 군산에서 언론인으로 생활하던 때 처음 만난 지원장은 조병훈(30대 지원장) 부장판사였다. 장애 속에서 자신을 개척한 인사로 온후했지만 단호함을 지닌 법조인으로 기억된다. 조 지원장은 보성고와 단국대 등을 졸업했다. 동병상련의 한 정치인에게 아름다운 판결을 내려 당시에 회자되기도 했다.

다음으로 전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유연만(31대 지원장)과 방극성(32대 지원장) 당시 군산지원장은 도내 인사로 전북이 고향이란 점에서 몇 차례에 걸쳐 만났던 이들이다.

지금은 두사람 공히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유 전 지원장은 도내일간지 근무시절 회사선배와 고교동창이어서 대화를 몇 차례 나눴다. 당시 군산정치권을 뒤흔들었던 해사야적장 사건 등과 관련된 내용을 취재한 적도 있다.

방극성 변호사는 왕성한 활동력을 바탕으로 전주지법과 광주고법 등을 거쳐 향판(鄕判)으로서 보기드물게 광주고등법원장으로 승진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사시 22회와 사법연수원 12기로 문재인 전대통령이나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도 동기였다.

그의 제주도 시절에는 호남인맥 중 전북인맥들이 그곳에서 상당한 응집력을 발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원동력이었다는 게 그곳에서 근무했던 한 선배의 기억이다.

그를 보좌했던 법원의 고위 일반직으로 근무했던 친구 K는 기관장으로 근무하던 중 그의 원칙과 의리에 대한 높은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제주지방법원장을 지낸 이후 광주고등법원장으로 근무하던 때 풍부한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한 폭넓은 시각과 부드러운 성품으로 후배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는 평이다.

여러 인사들도 있지만 정재규 지원장과의 인연은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전주출신인 정 부장판사는 전북대 사대부고와 전북대 법대 등을 졸업한 법조인으로 필자와의 인연은 약 40년에 이른다. 오랜 인연 때문에 만남과 교류는 물론 서로 존중하는 선후배이기도 하다.

광주와 순천, 전주, 군산 등에서 판사로 근무해온 그는 군산 및 순천지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창원과 대전 등지에서 부장판사로 재직한 바 있다. 사시 32회와 사법연수원 22기인 그는 대학 은사인 고 허영민 전북대 교수의 사위이기도 하다.

그의 겸양은 주변은 물론 지인들조차 높이 평가한다.

이밖에 법조인은 아니지만 일반직으로 근무해온 군산지원 사무과장과 전주지법 사무국장 등을 엮임한 김동환 전 특허청 사무국장도 이곳을 거쳐간 인물이다.

ㆍ고교 동기 오기두 부장판사(인천지법)와 인연

고향이 남원인 오기두 부장판사는 고교 1년 때 같은 반을 했던 고교 동기다.

그를 기억한 내용 중에는 1981년 군산제일고 교지 ‘경암’에 그의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담은 글이 먼저 떠오른다. 어려운 환경속에 학창시절 악바리라 할 만큼 기숙사 도서실에서 날을 지새운 그였기에 더 그렇다.

서울대를 졸업한 그는 사시 31회(연수원 21회)로 합격한 후 평판사일 때 전주지법과 정읍 지원 등을 근무했다. 추미혜 전 법무부장관과 전주지법에서 근무했는데 그 시절에 근무하던 회사와 껄끄러운 상황을 원만하게 마무리했던 이가 오 부장판사다.

이때 서울대 법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당시 법조출입 선배에게 그 사실을 알려 기사화됐다. 당시로는 확실한 논문제목을 기억에 가물가물하지만 첨단분야라 할 수 있는 전산정보화 분야였다.

그후 서울중앙지법 등을 거쳐 부장 판사로 2007년 군산지원 부장판사로 부임했다.

과거 인연으로 집무실에 들렀고 안부를 전했다. 약 15년만에 조우였다.

원칙주의자인 오 부장판사는 그때 운전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핸드폰이 없었을 뿐 아니라 골프도 치지 않았을 정도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고교 동창들과 만남도 극도로 자제했지만 그의 인간미를 기억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그는 과거에 얽매지 않을 정도로 강단은 있는 법관이지만 ‘군산지원 사형선고 못한 재판부의 고뇌(2007년 4월21일)’가 보도될 정도로 인간의 존엄성을 고민하는 그였다.

전주지법 군산지원이 20일 주부이자 약사로 평범하게 살고 있는 40대 여자를 납치해 강간하고 살해한 뒤 사체를 암매장한 살인범들에 대해 숱한 고뇌 끝에 법정 최고형인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군산지원 형사1부(재판장 오기두 부장판사)가 이날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에 대해 법정에서 세세히 그 이유를 밝히면서 고뇌의 단면을 드러낸 것은 이례적이고 인간적이었다는 것이 방청객들의 대체적인 여론이다.

재판부는 우선 “피고인들은 대낮에 부녀자를 납치해 금품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성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두려움에 떨고 있는 피해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뒤 암매장까지 한 것은 인간이라면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반인륜적인 범죄”라면서 “이들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기 위해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 범행 수법과 수단의 참혹성으로 볼 때 사형에 처해야 하지만 (재판부가) 숱한 토론과 고민 끝에 그들의 성장과정 등 모든 양형조건을 고려해 생명만은 보전해 주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가가 극악무도한 범행에 대해 응보의 가치를 실현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저항할 수 없는 판단욕구를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이 재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고백했다.

전북일보 및 연합뉴스 보도-

전주지법 군산지원을 떠나 수원과 서울, 청주, 인천 등지로 옮겨가 현역 판사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 인천지법에 근무하면서 첫 원격 영상재판을 시도했는가 하면 “점당 200원 고스톱은 오락- 법원 “친목관계·도박 경위·시간 등 고려 무죄” 선고 등과 같은 전향적인 판결도 내리기도 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전자증거의 증거 능력’이란 논제를 법률신문에 기고할 정도로 학구파이기도 하다.

# 법조타운 지킴이들

군산에서 기억나는 내용으로는 변호사, 전북대와 군산고 선후배간의 도의원 대결로 유명했던 기사(1994년 3월25일 보궐선거)가 첫 번째 기억물 중 하나다.

그 화제의 인물이 신문식(군산고 38회) 변호사와 이형로(군산고 50회) 변호사다. 사시 25회인 신 변호사는 차와 휴대폰, 컴퓨터가 없는 ‘3무(無) 변호사’이고 이형로 변호사는 대학 선배이자 고교 동창의 친형이다.

이 변호사는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로 널리 알려진 인사다.

99년 5월부터 군산에서 활동하면서 만난 첫 번째 변호사는 아무래도 고 김길준 시장이었다.

당시 김 시장은 율사출신 국회의원 등을 경력 때문인지 몰라도 유종근 도지사와 세풍 F1 그랑프리를 놓고 입장차이를 보였다. 재야출신인사이자 율사출신 시장답게 당시 DJ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유 지사와의 법리적인 다툼이 적지 않았다. 친 시민단체적인 입장 등을 견지, 당시 지역유지라 할 수 있는 인사들과의 대결에 선봉이 되기도 했다.

김 전시장과 만남은 자연스럽게 김귀동 변호사([군산을 걷다 # 90] 참조)에게로 이어졌다.

재단법인 100주년 기념장학회 설립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기금(장학금)관리의 치밀성과 함께 지역발전과 정치개혁 등을 위해 무소속으로 시장에 출마했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군산경실련 공동대표 등 지역시민사회단체를 알차게 이끌어온 원로 변호사다.

틈나는대로 등산을 통해 지역민과 교류하는 한편 지역교육과 대학 발전에도 힘써온 애향인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기억되는 인사는 조영보 변호사다. 중앙고와 서울대 법대(84학번)를 졸업한 그는 사시 39회(연수원 29회)로 지역에서 성실한 평가를 받고 있는 중견 변호사다. 군산지회장을 맡고 있다.

이곳을 거쳐간 한 판사는 냉철한 법리로 무장한 변호사라면서 조용한 성품에도 부조리와 싸움은 물러서지 않는다고 평을 하기도 했다. 조 변호사는 지역봉사와 시민사회단체 활동에도 열성적이다.

유경재 변호사는 제일고와 전북대 법대(83학번)를 졸업한 따뜻한 법조인으로 잘알려져 있다.

사시 44회(연수원 34회)인 유 변호사는 필자의 1년 후배(대학과 고교)여서 교류를 해온 법조인이다.

익산출신 김의종 변호사는 전주고와 성대 등을 졸업한 필자의 중학교(이리중) 선배다.

전 김도종 원광대 총장의 친제이기도 하다. 김 변호사는 사시 31회(연수원 21회)다.

이밖에 오치원 변호사는 오랜 교류해왔을 뿐 아니라 잘아는 인생 선배였다.

개인사로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변호사로 재개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고와 성대 등을 졸업한 그는 사시 29회(연수원 19회)로 지역에서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열념을 보였다.

한편 군산과 익산시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은 총 53명에 이른다. 물론 이들은 전북변호사회의 군산지회 소속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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