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82] 새들공원과 군산문인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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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82] 새들공원과 군산문인의 거리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2.08.11 10:44
  • 기사수정 2022-08-11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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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공원(옛 옥산공원의 새이름)… 옹벽에 군산문인의거리 조성
전쟁직후 만들어진 토요동인회… 이병기 시인 등 유명 문인들과 교류
전쟁기 군산문학 활짝 … 피난살이한 반달의 윤극영도 활력제 작용

 

군산예술의전당이 들어선 새들공원은 도심 공원으로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백토로를 넘어 수송동으로 조금 들어서면 수송로변에 있는 새들공원의 옹벽에 지역출신 문인들이 소개되어 있고 그 약력과 작품들까지 소개되어 있다.

이곳이 ‘군산문인의 거리’다.

도대체 이곳과 문인들이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굳이 유추하자면 예술의전당이 위치한 공간적인 의미를 살린 것이라고 밖에 없다는 추정해볼 수 있다.

군산의 문인들은 군산에서 태어난 사람만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이주해서 이곳에서 활동해온 인사들까지 포함하는 것일까.

이곳에 소개된 이들로만 문인의거리를 채우는 것에는 뭔가 어색해보인다.

이들 중에는 군산에서 활동하다 다른 곳으로 이주한 이도 있고, 군산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떤 문인은 군산에서 오랜 시간동안 활동해온 인사들도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이들보다 지명도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은 고은 시인도 제외돼 있고, 군산문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문인들도 대거 빠져 있다.

이곳의 입지문제는 ‘말해 뭐하겠는가’ 할정도로 시민들을 갸우뚱하게 하고 있다.

이런 논란을 뒤로 하고 군산문인의거리의 역사를 살펴보자.

# 군산문인의 거리와 지역문인들… 고은 시인 등 왜 빠졌나 논란

군산문인의거리. / 사진=투데이군산
군산문인의거리. / 사진=투데이군산

시는 2017년 ‘군산시 공공디자인 진흥조례’를 제정하고 처음으로 전북도에서 주관한 경관디자인 공모사업에 선정돼 ‘걷고 싶은 명품거리’를 만들었다.

이곳에 총 7억 여 원을 넘게 투입, 군산예술의전당 테마가로 조성사업을 통해 조성한 것이 ‘군산문인의 거리’의 시작이다.

이 거리에는 지역을 대표한다는 문학인들의 사진과 생애, 작품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는 백릉 채만식(1902~ 1950)을 비롯한 고헌 시인(1924~ 2001), 김기경 시인 겸 수필가(1931~ ), 문효치 시인(1943~ ), 심호택 시인(1947~ 2010), 이병훈 시인(1925~ 2009), 이양근 시인(1942~ ), 이원철 시인(1940~ ), 채규판 시인(1940~ ) 등이 소개되어 있다.

지난해 사업 응모 당시 군산시는 ‘군산예술의전당 테마가로 조성’이라는 기획 아래 군산예술인 중 가장 명성을 얻고 있었던 고은 시인을 테마로 한 군산문학인의 길을 제출해 선정된 바 있다.

하지만 이 거리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고은 시인이 당시 미투 사건문제로 사회문제화되면서 제외했고, 자문위원회가 긴급하게 구성돼 지역 대표 문인을 선정하기는 했지만 생존 인물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적합성 여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지적되고 있다.

군산문인의거리의 작품. / 사진=투데이군산
군산문인의거리의 작품. / 사진=투데이군산

여기에다 사업 시행 초기 문학가 선정 시비부터 디자인의 적절성 등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킨 바 있었는데 의미있는 공간으로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여전한 고민거리다.

# 군산문학의 황금기…토요동인회와 군산문인협회

군산은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문화예술의 꽃이 피어났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 현상이지만 특히 문학의 경우 백릉 채만식 이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토요동인회의 탄생이다.(2000년 제작한 군산시사 참조)

토요동인회는 전쟁 직후인 1953년부터 1957년까지 5년간 활동했는데 이 회원들의 맹활약으로 전북뿐 아니라 중앙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모임은 군산만의 모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주에서 신석정, 백양촌, 최승열, 조두현(시조시인), 때론 서울의 가람 이병기(익산), 김수영 시인까지 가세하면서 군산의 문학창작에 전기를 마련했다. 이들은 시화전 7회, 비평회 30회, 문학강연 1회 등을 통해 오늘의 전북은 물론 군산문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토요동인회는 호남고무회사의 정윤봉과 송기원 회장이 큰 역할을 했지만 이들이 광주로 옮기면서 광주에도 새바람을 일으켰을 정도다.

이들 이외에도 김순근, 원형갑, 이병훈, 고은, 고헌, 김신웅, 원용봉, 정연길, 권오동, 김기경 등이다.

이런 흐름에 의외의 인물이 피난살이로 군산에 내려왔는데 그가 동요작가 윤극영이다.

그의 군산활동 내용은 최영의 군산풍물기와 오마이뉴스의 조종안 기자 등의 취재자료에 근거한다.

윤극영(1903~ 1988년)은 동요 ‘반달’을 작사· 작곡한 대한민국의 동요 작곡가이자 동화 작가이다. 별명이 ‘반달 할아버지’라고 할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는 한국전쟁 때(1950~ 53) 군산으로 피난, 구형택시 4대를 가지고 중앙로에서 택시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는 첫 만남에서 고은이 시를 쓴다는 얘기를 듣고 “항구에는 시인이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항구가 쓸쓸하지”라고 격려한다. 그 후 두 사람은 매일 만나다시피했고, 그는 고은에게 하얼빈과 동경 유학 시절 경험담을 들려준다.

고은은 손님들에게 ‘솔베이지’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다방에 자주 다녔다. 전원다방은 열아홉 고은이 군산북중학교 국어·미술 교사로 특채됐던 현장이기도 하다. 윤극영을 만나러 매일 다방에 나오던 고 이종록(전 광동학원 이사장) 선생이 약관의 고은에게 교사로 와달라고 제의했던 것.

고은 이 시기에 국민 동요 반달을 작곡한 윤극영 선생을 우연히 만나 문학적인 새로운 기(氣)를 받았고 그 교류의 장소가 주로 전원다방이었단다.

한편 일간지였던 군산민보를 중심으로 군산문인협회가 1948년 발족됐고 이 모임을 주도한 김호연과 권오동, 이병권, 박희선, 이병훈, 장윤철 등이었단다.

# 새들공원 탄생… 원래 옥산공원(1967년 도시근린공원 으로 시작)

수송로변의 새들공원의 전경. / 사진=투데이군산
수송로변의 새들공원의 전경. / 사진=투데이군산

군산시 수송동(과거 옥산면) 옥산공원의 명칭이 2009년 6월 ‘새들공원’으로 바뀌었다.

시는 그때 “옥산공원의 명칭을 옛 지명의 뜻을 살려 새들공원으로 변경하기 위해 도시관리계획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시는 옛 지명인 옥구군 옥산면 지곡리 신평마을의 뜻에 맞게 한자의 새로울 ‘신(新)’과 들 ‘평(坪)’의 첫 글자를 따 ‘새들’로 명명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옥산공원이라는 명칭은 1967년 도시 근린공원으로 결정되면서부터 사용해왔으나 이 시기에 시민들이 부르기 쉽도록 순 우리말 이름으로 변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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