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마흔의 여자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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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마흔의 여자 9-5
  • 김선옥
  • 승인 2022.11.19 08:27
  • 기사수정 2022-11-19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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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에 이어)"몸매 하난 끝내주더라. 얼마나 근사한지 네가 봤어야 하는데, 가슴도 빵빵하고 정말 죽여준다니까. 꼬장꼬장한 너하곤 질적으로 달라. 남자 다루는 방법을 너무 잘 알거든. 그 애는 나를 천국으로 보내 줘.”

"천국 같은 소리하고 있네. 나쁜 자식"

그가 뱉어 낸 싸구려 문장들에 나는 욕지기가 일었다. 흠집을 만들기 위해 휘두르는 언어들은 상식을 뛰어넘게 끔찍스러웠다. 그는 천하에 몹쓸 연인이었다.

"질투하니? 존심 너무 세우지 말고 조금만 더 들어. 그래서 얘긴데 나는 미순이와 궁합이 잘 맞는 거 같아. 너는 별로였는데 그건 너도 잘 알잖아?"

허접하게 뱉어 내는 노골적인 야유에 잠시 휘청거렸지만 나는 최대의 인내심을 발휘해서 버텼다.

"나머지도 들어라. 듣는 게 너한테 약이 되니까."

“충고라면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꼴에 참을성도 없구나. 넌 그게 문제야. 남의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거. 너는 너무 잘났어. 여자는 너무 잘나도 재미없지."

그는 건들거리며 단숨에 말을 뱉었다. 나를 깎아내리려고 벼른 모양이었다. 쏟아 내는 언어들은 나를 상처 주기 위해 연습한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깐족대는 언어들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날카롭게 꽂혔다. 언어의 마디엔 빼내기 힘든 가시들이 단단하고 촘촘히 박혀 있었다.

“앞으로는 여자 냄새 좀 풍겨라. 안 그러면 평생 남자 구경은 못할 거야. 궁상맞게 너 혼자 폭삭 늙으면 내 속이 얼마나 쓰리겠냐."

위험한 언어는 끝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이어졌다.

“우리 그만 이쯤에서 찢어지자."

치명타를 날린 후에 그는 이별을 선언했다. 그는 일방적으로 사랑을 팽개친 것이다.

"헤어지자는 거야?"

"그래. 빚진 게 없으니 피차 잘됐지. 설마 울고불고 난리 피우는 일은 벌이지 않겠지."

"어떻게 그리 쉽게 이별을 말해?"

"헤어지는 마당에 쉽고, 어려울 게 뭐 있어."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내가 했던 얘기 지금껏 듣지 않았어? 충고, 귀담아 들으라니까. 목석처럼 뻗대면 누가 좋아하겠냐. 꼬리를 내려야지. 내 앞에서처럼 이러면 사내자식들 지레 기겁하고 내뺄 거야. 병신새끼 아니면 누가 너처럼 잘난 여자에게 배겨나겠냐? 현명하게 살려면 내 말을 가슴에 담고 새겨서 들어. 참고로 다음 남자한테는 잘난 척 적당히 해라. 이건 보너스야."

그는 남은 내 자존심마저 잔인하게 으깨고 짓밟았다.

"아참! 다음에 만날 땐 서로 아는 척하지 말자. 피차 곤란하니까."

예전에 알던 주호가 확실한지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분명히 그였는데 표정도 변하지 않고 상처를 주었다. 대꾸를 잊은 나는 멍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력하고 한심한 순간이었다.

“이만 갈게. 내가 충고한 것들 명심하고 마지막으로 잘 먹고, 잘 살아라. 지긋지긋했는데 이쯤에서 끝내니까 시원하다."

그는 날카로운 칼날을 마지막까지 거세게 휘둘렀다. 그동안의 관계가 지긋지긋했다고 매도하고, 나를 흉물스럽게 절단냈다. 그가 떠난 한참 뒤에야 자리에 주저앉아 나는 구역질을 해대며 하염없이 울었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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