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마흔의 여자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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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마흔의 여자 9-4
  • 김선옥
  • 승인 2022.11.12 05:20
  • 기사수정 2022-11-12 0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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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에 이어)주호는 미순이와 판이하게 성장했다. 주호네는 뿌리 깊은 기독교 집안이었다.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는 모두 장로의 직분을 받았고, 부모는 교회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갔다. 그들은 특별히 신에게 선택된 사람들이었지만 이웃들과는 보이지 않게 벽을 쌓았다. 선이 그어진 세계에서 괜찮게 어울렸는지 몰라도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과 친근히 지내지 못했다. 그들은 동네에서 유일하게 겉도는 집이었다.

미순이 어머니는 그런 주호네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려고 집 앞을 지나가는 주호네 뒤에서 들으라고 큰소리로 비아냥거렸다.

“밥걱정 없는 누구네는 좋겠다. 한가하니까 예배당도 댕기네. 목구멍에 풀칠하느라 쎄가 빠지는 우리네 겉은 사람들은 어림도 없는다. 뉘 집 새끼는 잘 먹여서 지름기가 번지르르 허고.”

의기양양하게 딴지 걸며 소리치는 어머니 뒤에서 미순이는 언제나 울상을 지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주호는 귀공자였다. 비싼 옷에 메이커 신발방, 그가 쓰는 소지품들은 싸구려가 아니었다. 고급으로 치장한 그는 공부도 제법 잘했다. 예의 바르고 싹싹한 성품인 그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귀여움까지 독차지했다. 주호는 아이들이 선망하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나는 주호와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 어쩌다 가까워졌다. 성장하는 속도만큼 우리의 관계도 깊어졌다. 그렇게 지내던 우리는 연인의 사이로까지 발전했다. 교육열이 대단했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했고, 공부에 미련을 두지 않았던 주호는 시험에 떨어졌다. 그는 결국 대학을 포기했다. 그때부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다니던 교회마저 팽개치고 작정한 듯 그는 막가는 인생들과 어울렸다. 다른 세계로 눈을 돌리면서 젊음을 헛되이 보내기 시작한 그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의 허송하는 인생이 안타까웠던 나는 어떻게든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를 바랐다. 그래서 자주 잔소리를 했다.

"니가 내 마누라라도 되냐?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솔직히 너도 내가 지겹지? 나도 지겨워서 죽겠는데 너라고 견디겠냐?"

조언하지 않을 때도 그는 자주 깐죽거렸다.

“대학생인 니가 건달인 나와 어울리기나 하냐? 쪽팔려서 같이 다닐 수 없지? 너 만나는 것도 이젠 징글징글하다."

자책이 서린 말로 걸핏하면 심하게 내 심사를 긁었다. 주호는 점점 내게서 멀어졌다

"너랑 잘 어울리는 새끼나 찾아봐. 되도록 빨리 니가 떠나야 나도 마음 편하게 살지.”

주호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언젠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지만 갈수록 태산이었다. 그에게 가깝게 다가서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내 심경을 읽지 못한 그는 계속 비뚤어졌다. 우리는 최악의 연인이 되었다.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보이던 그는 험악하게 인상을 쓰는 일이 잦아졌다. 행동이 거칠어지고 사나워진 말투의 그의 모습에서 나는 자주 미순이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주호는 작정한 것처럼 나를 찾았다. 그의 얼굴에서 내게 중요한 할 말이 있음을 나는 쉽게 읽었다. 딱딱 요란하게 소리 내며 껌을 씹는 표정엔 지겨움이 넘실댔다.

“요새 미순이 만난다. 우리 서로 트고 지내는 사이야."

어머니의 성화로 돈벌이에 나서야 했던 미순이는 여고를 중퇴하고, 다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학교보다 적성에 맞는다고 했다.

"너보다 내게는 미순이가 더 어울려 만나면 기분이 좋고 부담스럽지 않거든. 사람은 만날 때 마음이 편해야 하잖아? 그 애가 마음이 좀 넓어야 말이지."

은근히 미순이를 자랑하는 그의 심사가 보였다. 주호는 일부러 나를 자극하려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얼굴이 예뻐서 집적거리는 남자들이 많았다. 주호도 그런 남자들 중의 한 명이 되었던가, 나는 잠시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걔랑 잤어."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

“내가 원하면 뭐든지 해 주겠다고 했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기특하니? 장난삼아 엉켜 봤는데 환장하면서 덤비지 뭐냐.”

속이 끓었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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