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마흔의 여자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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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마흔의 여자 9-2
  • 김선옥
  • 승인 2022.10.28 12:14
  • 기사수정 2022-11-05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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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에 이어)나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널따란 들판이 펼쳐지고, 산과 개울이 있던 동네였다. 시골의 풍경은 계절에 따라 모습이 아름답게 변했다. 봄이면 가득 자운영 꽃이 피고, 땅속에서 자란 보리와 들풀이 고개를 내밀었다. 모내기로 분주한 어른들의 기지개는 천지를 새파랗게 물들였고, 여름 맞이에 정신을 빼앗겼다가 고개를 들면 어느덧 푸르고, 깊은 하늘이 보였다. 가을에는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들판이 누렇게 일렁였다. 재재거리며 참새떼들이 날아드는 풍경도 장관이었고, 깡통을 달고, 허수아비를 세운 모습도 정겨웠다. 그러다가 서서히 추위를 맞았다. 아침에 문을 열면 검은 벌판이 밀가루를 뿌린 것처럼 온통 새하얗게 변해 절로 함성이 터졌으며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우물거리던 겨울의 기억들은 시리게 맑고, 차가웠다.

몇 걸음만 걸으면 수리조합에서 만든 농로가 있었다. 겨울에는 살얼음이 얼지만 여름이면 넘실대며 물이 흘렀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해가 질 때까지 첨벙거리며 더위도 잊었다. 야트막한 산에는 소나무 숲이 빽빽했고, 비가 내리는 날에는 버섯들이 군데군데 돋아났다. 소나무 밑둥치에 숨을 듯 피어난 버섯은 기막히게 향내가 좋았다. 산 너머 뒤쪽으론 외줄 기찻길이 있었고, 깊은 밤이면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나는 레일 위를 굴러가는 칙칙폭폭 바퀴 소리를 따라 나지막이 되뇌곤 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던 날엔 귓가에서 날벌레가 울었다. 그때마다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어딘지 모를 머나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나는 환상의 나라를 향해 무작정 떠나는 꿈의 열차를 상상했다. 어두운 차창에 이마를 맞대고 기차 안에서 잠이 드는 그림은 황홀하도록 짜릿했다. 늦은 밤, 공부하다가 엎드려 듣는 규칙적인 기차의 리듬에 나는 자주 가슴을 울렁거렸다.

마을은 가구 수가 많았다. 동갑인 미순이와 주호는 나와 함께 자랐다. 그 외에도 여럿 있었지만 앞뒷집에 살던 셋이서 특히 친하게 어울렸다. 삼각구도로 얽힌 미순이와 주호를 빼면 다른 사람들에 관한 기억은 희미하다. 아마도 별다른 사건이 없는 탓이었을 것이다.

미순네는 가난했다. 집은 오두막이었는데 대각선 아래로 우리 집과 마주 보이는 집이었다. 미순의 옆집엔 주호네 커다란 기와집이 있었다. 주호네 집은 선대로부터 논마지기를 물려받아 근동에서 제일 부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가 제지공장에 다녔고, 공장에서 꽤 높은 직책을 맡았다고 했다.

나 역시 미순이처럼 작고, 초라한 집에서 태어나 자랐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 살림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아버지는 뼈대 있는 가문이란 자존심을 가슴에 품은 채 나날을 버티었다. 힘든 노동으로 심신이 지쳤음에도 몰락한 가세를 자식들이 일으켜 세워 주기를 기대했던 아버지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지치도록 노력해도 살림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땀 흘려도 가난과 부의 닿을 수 없는 거리는 아버지가 좁힐 수 없는 한계였다.

동네는 협소했다. 사람들은 이웃의 사정을 손금 보듯 낱낱이 꿰뚫었다. 미순이 어머니가 한때 춤바람 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춤에 정신이 팔려 농사일도 팽개치고, 밖으로 나돈다는 말이 파다하게 퍼졌다. 남편을 발밑의 때처럼 취급한다고도 했다. 소문이 한창이던 시절에 길에서 만난 그녀는 깔끔한 옷차림에 화장을 곱게 해서 얼굴이 박꽃처럼 환했다. 일자무식이었지만 입심이 대단해 동네에서는 말을 받아 낼 사람이 없었다. 힘도 장사였다. 싸움질에서 아무도 당해낼 수 없었던 그녀는 장정과 드잡이에서도 지지 않았다.

두세 사람 몫의 일도 거뜬히 해내고, 억세던 그녀가 곁길로 샌 것은 남편 탓도 컸다. 운송회사에서 화물을 운반하던 미순이 아버지는 술에 젖어 세월을 보냈다. 그는 일꾼들과 어울려 날마다 진탕 마셔 댔다. 그는 대부분 취해서 귀가했고, 취하면 살짝 맛이 갔다. 알코올중독자인 그는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구성진 트로트 가락으로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그는 명가수였다.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미순이 어머니는 남편의 노랫가락이 들려오면 마루에 버티고 앉아 사납게 욕설을 퍼부어 댔다.

"썩어 문드러질 인사가 어쩌자고 허구헌날 술 처먹고, 저 지랄인지 모르겠네."

벼르는 아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언제나 덩실덩실 춤추며 마당에 등장했다. 그리고 들어오는 순간 멱살이 잡혔다.

“뼈가 빠지게 번 돈을 그렇게 꼴깍 마셔 대냐? 술이 그렇게 좋아?"

덩치가 좋고 힘이 장사인 아내는 몸도 가누지 못하는 남편을 마당에 예사로 패대기쳤다.

“오살헐 놈, 가솔들은 손가락이나 빨고 살라는 건지 날마다 술타령이여. 퍼마셨으면 곱게 꼬꾸라져 잠이나 잘 일이지, 왜 노래는 허고 지랄이여"

악다구니로 사람들의 잠을 깨운 미순이 어머니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지 바닥에 퍼질러 앉아 신세를 한탄하며 통곡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어쩌자고 주정뱅이한테 걸려서 내가 쭈그렁 쪽박신세가 되었는고.”

아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멱살이 잡혀 나뒹굴어도 그는 허허웃기만 했다.

“여편네 단속 못 하는 인사나 집 내팽개치고 돌아다니는 여편네나 도찐개찐이여."

체면을 중히 여기는 내 어머니는 미순네 집에서 난리가 일어날 때마다 냉소를 지으며 눈을 찌푸렸다. 반박할 여지가 없게 미순네 집은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목숨을 잃을 때까지 술버릇을 고치지 못한 남편과 아내의 바람기가 계속된 탓이었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편집자의 사정에 따라 금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게재합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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